17. 불교이상국가론

행복국가로 꼽히는 부탄
‘가난하지만 행복하다’는
잘못된 불교인식 심어줘

불교서 말하는 행복 ‘정법’
‘중도’ 통해 정법가치 실현
???????억울함 없는 세상 나아가야

불교국가 부탄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과연 그럴까? 그들은 정말 세계에서 가장 행복할까?

행복을 어떻게 측정하는가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부탄이 세계 1위로 선정되는 행복도 조사도 있지만 2019 유엔의 행복도 조사에 의하면 부탄의 행복지수는 세계 95위이다. 언론에 부탄의 유엔행복지수가 세계1위라는 기사가 제법 보이지만 잘못된 기사로 보인다. 지금이라도 인터넷에 들어가서 유엔의 세계행복보고서(WHR: World Happiness Report)를 검색하면 행복랭킹이 나오는데 부탄이 1등을 한적은 한 번도 없다. 아마 유엔의 행복보고서가 아닌 다른 보고서에 1등으로 나온 것을 유엔으로 착각한 듯 하다.

부탄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인식에는 잘못된 불교관이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처님이 연기법을 설하신지 2,500년이 지나다보니 부처님의 불교와 동떨어진 불교가 지구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불교 아닌 불교는 이미 인간의 생각 속에 고정관념화 되어 있다. 부탄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탄의 특징을 불교의 핵심 내용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부탄은 일년에 방문할 수 있는 외국인의 숫자를 제한한다. 말하자면 철저한 은둔 국가다.

부탄은 매우 가난하다. 아직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지 못했으니 돈과는 담을 쌓은 듯 보인다. 부탄은 현대사회와는 매우 거리가 있는 과거 속에서 살고 있으며 독재에 가까운 왕정국가다. 사람들은 이러한 특징을 불교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오해다.

경전은 행복에 대해 두 가지 관점을 설한다. 첫째, 경전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행복을 추구한다’고 설한다. 이러한 서술은 좋다 나쁘다의 관점이 아니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문장이다. 즉 사람을 관찰해보니 다들 행복을 추구하더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설한 것이다. 둘째, 경전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행복하여라’고 축복의 말을 설한다. 즉 행복은 좋은 것이라는 전제에 기초한 서술이다. 사람을 관찰해보니 다들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은 좋은 것이니 행복하라고 설하는 것이다.

국민을 관찰해보니 모두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지만 행복이 좋은 것이라면 민주국가는 국민이 행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국민이 행복을 추구하고 정부는 국민이 행복할 수 있도록 정치와 정책을 펴야 한다. 온 나라의 국민이 나만 빼고 모두 불행한데 나만 홀로 행복해질 수는 없다. 세상이 지옥과 같은데 나 혼자만 행복하려고 해도 행복해질 수 없다. 불교의 연기법에 의하면 나라는 존재는 없다. 나와 너, 나와 세상, 나와 한민족, 나와 세계가 있을 뿐이며 이것 또한 고정된 실체가 없다. 그러므로 행복이란 다른 사람과 세상으로부터 유리되어 나 홀로 누릴 수 있는 어떤 독립된 영역이 아니다. 우리는 오직 공동체의 관점에서 행복할 수 있으며 우리가 만든 정치적 공동체가 국가다. 우리가 진정 행복하고자 한다면 나와 다른 사람, 나와 세상이 분리되어 있다는 기계론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국가적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말은 참 좋은 말이지만 별로 도움이 안되는 말이다.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도 연기법에 어긋나는 말이다. 나와 세상은 서로 주고 받으며 흘러가는 임시적 존재에 불과하므로 나도 바뀌고 세상도 바뀌어야 한다. 내가 바뀐다는 것은 세상이 바뀐다는 의미이고 세상이 바뀐다는 것은 내가 바뀐다는 의미이다. 행복 또한 이와 같다.

국가는 국민의 행복을 위해 나라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 <증일아함경>은 ‘바른 법(정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라’고 설한다. 정법국가(正法國家)란 어떤 국가일까? <장아함경>은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려라. 부디 치우치거나 억울하게 하지 말라. 온 나라 안에 법 아닌 것이 행하지 않게 하라’고 설한다. 정법의 핵심은 치우치지 않는 것이며 국민을 억울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다.

정치와 정책은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정부의 모든 결정과 행위는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공정한 정치와 정책은 국민을 억울하게 하지 않는다. 정부의 모든 결정과 행위는 국민을 억울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정법국가는 법치주의에 의한 정치와 정책을 펴는 국가이다. 법이란 무엇일까? 경전에서 법(法)은 모든 존재를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불교의 진리, 불교 교리를 의미하는 단어로도 쓰인다. 물론 법은 나라에서 정한 실정법을 의미할 수도 있다. 정법국가를 설명하는 경전의 구절 앞뒤를 살펴보면 나라에서 정한 실정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법치국가는 실정법에 의한 국가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실정법을 넘어서 자연법의 세계에서 정법국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실정법은 나라에 따라 다르다. 어떤 경우는 악법으로서의 실정법도 있다.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고 독재자가 정한 실정법은 악법의 요소를 다분히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하여 자연법이란 인간과 사회에 보편타당성을 가지는 이성에 합치한 법이다. 이성에 의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누구에게나 어떤 국가에나 합리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법이 자연법이다.

예를 들어 남을 속여 재물을 취득하는 행위를 실정법에서 범죄로 규정하고 있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성에 의해 사회에서 남을 속여 재물을 취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러한 행위는 실정법에 의해서 범죄가 안되는 나라에서도 자연법에 의해서는 범죄이다.

불교의 진리, 불교 교리는 자연법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 불교 교리 중 인간 행위의 옳고 그름에 대한 내용은 그대로 자연법이라고 볼 수 있다. 불교의 오계는 실정법과 유사하다.

살인하지 말라, 남의 재물을 훔치지 말라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실정법으로 제정되어 있다. 살인과 절도는 실정법으로 제정되어 있지 않아도 자연법에 의해 금지되어야 하는 행위이다. 술 마시지 말라는 조항을 입법화하기는 어렵다. 미국에서는 한 때 금주법이 제정되어 술의 제조와 판매가 금지되었다. 음행을 하지 말라와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는 윤리 기준으로 존재할 수는 있어도 실정법으로 제정되기는 어렵다.

불교는 세간을 떠나 산 속이나 나무 밑에서만 통용되는 종교가 아니다. 불교의 지혜는 세상을 살아가는 중생에게 빛을 주어야 한다. 부처님이 제시하신 불교는 정치와 경제에도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진리이다. 불교 교리의 일부분이 자연법의 일부와 중복된다고 보는 것은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따라서 정법국가에서 법이란 실정법은 물론이고 자연법 나아가서 불교의 진리 중 인간의 행위를 규율하는 내용을 포함한다고 보아야 한다.

자연법 사상에 의하면 잘못된 법은 국민이 지키지 않아도 되고 악법을 강요하는 정부에게는 국민이 저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흔히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는 모든 문헌을 조사한 한 연구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그런 말을 한적이 없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사형시킨 아테네의 부당한 법에 저항하지 않고 독배를 마셨기에 이런 말이 퍼져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셨지만 악법을 용인한 적도 없으며 더구나 ‘악법도 법이다’는 말을 한적도 없다.

부처님은 악법을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경전을 보면 부처님은 나라의 법을 지키라고 말씀하시고 나라의 법을 존중하였다. 출가자가 나라의 법을 어기면 어기지 못하도록 규율을 제정하셨다. 그러나 잘못된 나라의 법은 잘못되었다라고 지적하셨다. 따라서 ‘악법도 법이다’라고 무조건 순응함으로써 독재자를 즐겁게 하는 것은 불교가 아니다. 악법은 고쳐야 하며 고쳐지지 않으면 저항해야 한다.

경전에 의하면 정법국가란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흑백논리와 이분법을 벗어나 중도를 지향하는 중도국가가 불교의 이상국가다. 시장 만능주의도 아니고 정부 만능주의에 빠져 있지도 않아야 한다. 중도국가는 양극단을 떠나 중도를 추구하지만, 중간이나 평균을 고집하는 것 또한 극단이다. 시장과 정부의 중간이 중도일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다. 때로는 양극단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으면 불교가 지향하는 중도의 또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

시장자본주의도 절반, 복지도 절반인 국가가 중도라고 볼 수도 있지만 시장자본주의와 복지가 중도적 균형을 이루는 대안도 중도라고 할 수 있다. 덴마크는 기업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고 자유롭게 노동자를 해고 할 수 있어 노동 유연성이 매우 높다.

시장주의의 극단에 치우친 것으로 보이지만 복지 혜택이 북유럽 노르딕 국가답게 세계 최고 수준이다. 노동자가 해고되어도 거의 90% 수준의 최종 봉급을 실업수당으로 지원받는다. 시장만능과 정부만능이 공존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덴마크는 알고 보면 시장이라는 극단, 정부라는 극단을 벗어난 중도국가이다.

중도국가는 국가의 모든 구성원을 동등하게 고려하여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다.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어느 한 국가에 치우치지 않지만 때로는 한 나라와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 우호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다.

중도국가는 중도적 균형과 조화, 협력적 공존관계가 특징이다. 대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 중산층, 서민이 모두 치우치지 않는 힘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화쟁의 정신으로 통합을 이루는 나라이다. 개별 국민은 자신의 이익과 전체의 이익이 조화를 이루는 자리이타를 실현한다.

온 국민은 혼자 힘으로는 빚을 낼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빚을 내는 인드라망처럼 인터넷, 모바일, IT기술을 통하여 집단지능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정치인은 국민이 선발한 평등한 국민으로서 국민의 행복을 위해 봉사한다. 불교 이상국가는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행복국가, 법의 정신으로 나라를 운영하는 정법국가,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 균형으로 다양한 힘의 조화를 꾀하는 중도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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