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의 누각, 극락의 난간이로다

이 여름 구순 하안거 해제를 당하여 소식이 어떠하십니까.추산의 가을바람이 전설처럼 밀려오고 있습니다. 툭 터진 하늘 파도소리 아무리 요란해도 세상바다는 생기 넘치는 선불장이요, 적적한 판도방입니다.

법화경에 상자적멸상이라, 항상 스스로 고요해서 적멸상이라고 했습니다. 소리 앞에 먼저 와있는 굽이굽이 저 유유히 멋있는 산천들! 화엄경에 법계의 성품을 보라, 응관법계성 하라. 보고 듣고 응하는 이 물건을 보라고 했습니다.

경허스님께서는 “화엄경의 응관법계성이나 법화경의 상자적멸상이나 모두가 중생들의 보고 듣고 아는 見聞覺知의 이 자체바탕이다, 차별세상에 둘 아닌 이뭘까로 가닥을 잡으니, 이 자리가 미륵의 누각이요, 여기가 극락의 난간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만공 스님께서는 “참선은 부처님의 골수다”라고 하셨습니다. 참선은 이 하는 이 자체 바탕이요, 마하반야바라밀입니다. 마하는 뛸 듯이 기뻐 환희용약 하는 외마디 탄성입니다. 우주와 차별세계와 오온이 이 자체로 녹아져 둘이 아닌 알 수 없는 이뭘까 한 덩어리 의심으로 철커덕! 계합이 되었으니, 아! 이 자체의 절대절명이여, 마하반야바라밀입니다.

이 웅장한 마하반야바라밀은 해탈이요, 해탈지견입니다. 일체지견의 해탈은 거대한 생명의 향기로서 법계를 안정시켜주고 무량불법승에 공양을 올리고 모든 생명의 뿌리에 흠뻑 물을 줍니다.

이뭘까 이 한 구절은 가다듬어 계향이요, 안정되어 정향이요, 돌이켜 혜향이요, 유일무이 해탈향이요, 이뭘까 이 한 구절은 일체에 도움을 주니 해탈지견향입니다. 예불 때마다 계향 정향 혜향 해탈지견향 염불의 향기가 감동으로 사무칩니다.

해탈지견이 일상이 되는가? 만공 스님이 물었습니다.

“금일 대중은 임제의 할을 친하였는가, 덕산의 방을 친하였는가?”

벽초 스님이 자리에 벌떡 일어나

“임제의 할도 친하지 않고, 덕산의 방도 친하지 않습니다.”

“그럼 무엇을 친하였는가?”

만공 스님의 말이 떨어지자 벽초 스님이 할을 했습니다. 만공 스님이 주장자로 벽초 스님을 한 번 때렸습니다. 벽초 스님이 절을 하고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만공 스님이 “전무후무로다. 앞도 없고 뒤도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묻습니다. 만공 스님의 이 전무후무는 경책인가, 칭찬인가? 만공 스님이 주장자로 때렸을 때 그대라면 어떻게 했을까? 뜸이 잘 든 밥은 향기가 허기를 진정시킵니다. 어떻게 했으면 만공스님이 흡족해했을까? 벽초 스님의 효심이 지극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툭 건드려서 기분 나쁘면 화를 냅니다. 속 좁은 생각은 사문의 길이 아닙니다. 다 용서해라. 인색한 행동은 심장이 식어져서 신상에 해롭습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다 주어라. 확실하게 도와줘라. 도움이 되는 행동 보살행은 뿔 난 물고기의 물이오, 학이 소리치며 날 수 있는 허공이다. 이뭘까를 굴려주는 하늘의 맑은 힘이요, 바다의 싱그러운 기운이다. 도움이 되는 행동 보살행은 산하대지 두두물물이 이뭘까를 굴리는 힘으로 돌아오게 한다. 세수하고 코풀 때 이놈이 같이 굴러가면 구경원성 살반야가 아니겠는가. 끝없는 부처님의 대자대비의 한복판이다. 이 정성을 바칠 뿐이다. 명훈가피에 감사할 뿐이다. 자타가 일시에 이 자체로 녹아져 이뭘까 뿐이다.

信心不二 不二信心

可笑尋牛者 騎牛更覓牛

이 물건이 둘이 아니다, 둘 아닌 이 물건이여!
우습다 소찾는 자여, 소타고 소찾나!

만공 스님은 해제하는 날 사홍서원을 일러주셨습니다. 중생무변서원도, 끝없는 중생을 다 제도하겠습니다. 세상바다에 이 엄청난 사홍서원을 감당해서 실천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백억 부처님의 힘의 원동력 이뭘까 뿐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합니다.

노사의 이 노바심절의 경책을 걸망에 짊어지고 산문을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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