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는 물고기가 산다 ?

목탁 목어 등 佛具에 물고기 다수
사찰 벽화·장엄에도 물고기 상징
중앙亞 거쳐 전래되며 본격적 활용?
범어·오어·만어 등 사찰명 유래도

밀양 만어사 전경. 수많은 고기떼가 화석으로 변했다는 전설을 안고 있다. 또한 부처님 법으로 나찰녀를 교화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전통사찰 중에 물고기 ‘어(魚)’자가 들어가는 사찰이 세 곳이 있다. 범어사(梵魚寺), 오어사(吾魚寺), 만어사(萬魚寺)다. 세 사찰 모두 물고기와 관련된 전설이나 설화를 하나씩 갖고 있다. 

이렇게 사찰 이름에 ‘물고기 어(魚)’ 자가 들어가는 것은 아주 특이한 경우다. 반면에 사찰 장식 중에는 가장 흔한 생물 중 하나가 물고기다. 불교를 상징하는 사자나 코끼리보다 흔하고 연꽃만큼 지천이다. 

사찰의 다양한 물고기 상징
불구(佛具)를 살펴보자. 우선 목탁이다.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면 입, 눈, 머리, 몸통, 꼬리가 자연스레 보인다. 목탁의 확장판은 목어다. 범종, 법고, 운판과 함께 불전사물에 속하는 목어가 수중생물에게 깨달음의 소리를 전하기 위한 것이라는 건 절에 안 가본 사람도 아는 얘기다. 그런데 불전사물 ‘소품’ 중에 물고기가 한 마리 더 있다. 바로 종을 치는 당목이다. 고래라 엄밀히 말하면 포유류지만 어쨌든 바다에 사니 물고기라고 해두자.

범종각을 지나 탑 앞에 서도 물고기를 볼 수 있다. 요즘은 흔하지 않지만 원래 탑의 층층마다 사방에는 풍탁(풍경)이 달려 있었다. 풍탁 안에서 흔들리며 소리를 내는 것도 바로 물고기다. 

이제 법당 앞에 섰다. 현판 좌우에 나란히 용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데 이들이 입에 물고 있는 게 또 물고기다. 예천 용문사 대장전처럼 물고기를 물고 있는 게 용이 아니라 귀신 형상(귀면)인 경우도 있다. 

외벽의 벽화 중에도 물고기가 가끔 보인다. 제천 신륵사 극락전 외벽 박공에는 물고기가 물고기를 토해내는 그림이 있다. 흔히 ‘토어도(吐漁圖)’라고도 불리는데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토해내고 작은 물고기가 또 더 작은 물고기를 토해내는 그림이다. 부처님이 전생에 보살행을 닦을 때 큰 물고기에게 잡아먹히는 작은 물고기를 가엾게 여려 큰 물고기를 잡아 멀리 보내고 작은 물고기들의 걱정을 덜게 했다는 전생담에서 취한 그림이다. 최근의 것이지만 해인사 대적광전 뒷면에는 등에 나무가 자란 물고기 그림이 있다. ‘목탁’의 유래를 담은 벽화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 보자 사찰 불단에도 물고기가 빠지지 않는다. 환성사 수미단이나 운흥사 수미단의 물고기는 유명하다. 법당에서는 고개를 숙일 줄만 알지 고개를 쳐드는 경우가 적어 놓친 물고기도 많다. 대표적인 게 완주 송광사 대웅전 천장이다. 물고기 천지다. 물고기 사이사이로 게나 토끼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또 김해 은하사 대웅전 대들보에는 물고기에서 이제 막 용으로 변하려는 모양의 그림이 있다. 중국의 고사 어변성룡에서 취한 그림이다. 

완주 송광사 대웅전 천장. 물고기 등 동물이 새겨져 있다.

사찰에 물고기가 사는 이유
그런데 사찰에는 왜 유독 물고기가 이렇게 흔할 것일까?
 
우선 초기 경전에 물고기 얘기는 없지는 않지만 흔치 않다. 전생담(자타카)에 나오는 물고기 이야기 정도가 다다. 그런데 전생담의 경우 ‘부처님의 친설’이라기보다는 당시 내려오던 여러 설화와 이야기를 취합해 만든 경우가 발견돼 온전히 부처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자신이 없다. 

그런데 차차 물고기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게 되는 계기가 있으니 불교가 인도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이나 티베트로 넘어오면서부터다. 대승불교가 발전하면서 ‘새’ 경전들이 심심찮게 출현하게 되고 물고기도 자주 등장하게 된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어람관음이나 아미타어 전설 같은 것들이다. 

33관음 중의 한 분인 어람관음은 나찰, 독룡, 악귀의 해(害)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분이다. 경전에는 물고기를 담은 어람을 들고 있다고 나와 있고, 그림으로는 바구니에 고기를 넣고 있거나 큰 물고기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아미타어 이야기는 좀 길어서 지면에 모두 소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물고기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이 불단의 조각 등으로 나타나면 아미타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하튼 중앙아시아와 중국이라는 필터를 거쳐 이 땅에 자리 잡은 ‘절’에도 물고기 문양이 자연스레 자주 등장한다. 

이런 물고기 문양이나 조각에 대한 해석은 다음의 몇 가지가 있다. 물론 어떤 위치에 어떤 모양으로 그리거나 조각되었는지 차이는 있지만 대표적인 내용 몇을 소개한다. 

첫 번째, 아마 불자라면 귀에 딱지가 앉히도록 자주 들었던 이야기일 것이다. 바로 밤낮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의 모습에 빗대어 쉼 없이 정진하라는 의미를 담았다는 것이다. 목탁을 설명할 때 더 자주 듣는 말이다. 등에 나무가 난 목어 그림은 ‘게으른 비구’의 후회를 상징하지만 그 나무로 만든 목탁이 ‘경책’의 의미를 담았다는 건 아주 그럴 듯하다. 

두 번째, ‘어번성룡(魚變成龍)’과 관련한 설명이다. 잉어가 황하의 용문이라는 거센 협곡을 뛰어 오르면 용이 된다는 고사성어가 ‘어변성룡’이다. 이 내용을 절집에서 따다가 범부도 수행을 하면 깨달아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앞에도 얘기했지만 김해 은하사 대웅전 대들보 등에 이런 그림이 보인다. 

세 번째, 만사형통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물고기 어(魚)는 중국로 여(餘)와 발음이 같다. 또 이 여(餘) 자는 같을 여(如)와도 통하는데 우리가 흔히 여여(如如) 하시냐고 안부를 묻는 것처럼 한결같고 변함이 없다는 뜻과 맞닿아 있다. 

네 번째,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민간의 염원을 담았다는 설명이다. 수미단 조각이나 벽화에 그려진 물고기는 다산과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다. 많은 알을 낳는 물고기가 다산을 상징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림들이나 조각들은 대부분 조선 중기, 임진왜란 이후 자주 나타난다. 조선 시대는 교리나 수행이 꽃을 피웠던 시기가 아니다. 사찰 입장에서는 생존 전략이 필요했던 때이고 사람들 입장에서는 위로가 필요했던 시기다. 이때 민간에서 유행하던 여러 그림이나 상징이 절집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다산이나 풍요를 상징하던 물고기가 자연스레 절집으로 대거 진입하게 됐다는 것이다. 불교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하고 즐거움을 주자는 의미에서는 가능한 얘기다. 

다섯 번째, 화재예방을 목적으로 했다는 설이다. 목조 건물에서 가장 금기시 되는 것이 바로 불이다. 강과 바다의 기운으로 화재를 예방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불교적으로 다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삼계는 모두 화택이니 물고기를 통해 그 고통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이밖에도 사찰에 물고기가 살고 있는 이유는 더 다양하게 설명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추렸다. 

은하사 대웅전 내부. 대들보에 어변성룡 그림이 있다.

물고기 이름 사찰들
서두에 밝혔지만 전통사찰 중 ‘물고기 어(魚)’ 자가 들어가는 사찰이 셋 있다. 범어사(梵魚寺), 오어사(吾魚寺), 만어사(萬魚寺)다.

그 중 범어사의 유래는 이렇다.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이야기기다. 

“우리나라 남쪽에 명산이 있어 그 산 꼭대기에 높이 50여척의 큰 바위가, 그 바위 한 가운데 샘이 있으며 그 물빛이 금빛이다.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물속에는 범천으로부터 오색구름을 타고 온 금빛 고기들이 헤엄치며 놀고 있다하여 산 이름을 금정산(金井山), 절 이름을 범어사(梵魚寺)라 하였다.”

오어사의 이름은 원래 항사사였다. 절 이름에 ‘물고기’를 집어넣은 연유는 혜공 스님과 원효 스님의 유명한 일화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만어사다. 오어사 유래와 마찬가지로 그 유래가 <삼국유사>에 장황하다. 

“만어사가 자리잡은 만어산에는 다섯 명의 나찰녀(여자 악귀)가 있었는데 독룡과 오가며 사귀었기 때문에 때로 번개가 치고 비가 내려 4년 이래 오곡이 잘 되지 않았다. 왕(수로왕)이 주문으로도 이를 금할 수 없어서 공손히 부처님께 설법을 청하였더니 나찰녀들이 오계를 받고 후에는 이런 폐단이 없었으며 동행의 고기와 용이 이 골짜기 속에 가득찬 돌로 화하여 저마다 악기소리를 냈다.” 

이밖에도 <삼국유사>에는 만어사의 유래에 대한 다양하고 장황한 설명이 이어진다. 여하튼 지금도 만어사 앞에는 검은 돌들이 절에서부터 산 아래까지 수만 개는 될 듯한 숫자가 흩어져 있다. 

이렇게 각자 사연은 다르지만 절집에는 물고기와 관련한 다양한 전설 그리고 그에 묻어나오는 다양한 상징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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