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초기, 후배 강의 기회 얻어
1시간 강의 위해 며칠 간 준비해

10년 지나서 행자 기본교육 담당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음을 절감
매일 매일이 이해와 인내의 과정

후학이 바로 알고 고쳐주면 ‘감동’
작은 ‘배움과 가르침’도 쉽지 않아
갑갑했을 어른 스님께 참회드린다

글의 제목을 정하며 문득 원효 스님과 사복의 일화가 떠올랐다. 사복의 어머니 장례를 지내며 원효 스님은 “태어나지 말라. 죽는 것이 괴롭다. 죽지 말라. 태어나는 것이 괴롭다”라고 법문을 하니 사복이 법문이 번잡하니 간결하게 해달라고 말한다. 이에 원효 스님은 “나고 죽지 말라. 괴롭다”라고 법문을 고쳤다고 한다. 그래서 본래 ‘제대로 배우기 쉽지 않고, 잘 가르치기 또한 어렵다’라고 생각한 제목을 고쳐 쓰게 되었다.

나는 수계 받은 다음해부터 본사의 후배 스님들에게 강의를 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고교와 대학시절 불교학생회와 청년회 활동을 열심히 했던 인연으로 당시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있던 교무 스님으로부터 새로 수계를 받는 스님들에게 청년포교에 대한 강의시간을 배정받았던 것이다. 1시간 남짓한 강의를 위해서 며칠을 고민하고 준비했는지 지금도 기억이 새롭다.

이후 출가의 시간이 10여년이 지나고 본사 교무소임을 맡아서 4년 가까운 시간동안 200명에 이르는 행자들의 기본교육을 담당했다. 초발심자경문과 염불의식을 중심으로 6개월 정도의 행자기간동안 평생 살아갈 수행생활의 기초를 잡고 기본을 다지는 교육이었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몇 번씩 배울 때의 기억을 되새겨보고, 교재와 자료를 뒤적이며 거듭해서 읽고 생각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꿈속에서 조차 강의를 준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었다. 누구를 가르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뼛속깊이 절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무아미타불’ 한 곡조 염불을 제대로 하려면 일주일은 일체의 생각을 접어두고 오롯하게 그 곡조에 전념해야 그 제대로 된 곡조를 익힐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왜 그렇게 안 되는지! 처음, 열에 한 두 명도 따라하지 못하는 상황에 얼마나 속이 상하고 좌절했는지 모른다. 또 하루 서 너 줄 정도 읽고 해석하고 암기하는 한문본 초발심자경문 공부도 생각대로 성취가 따르지 못했다. 매일매일 기다리고 이해하며 인내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기초이고 기본인 까닭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공부들이라 감당하고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옛 어른들 말씀에 ‘상좌 하나가 지옥 하나’라는 말씀이 있는데, 제자 한 명을 제대로 가르치는 일이 바로 ‘지옥’과 다름없는 고생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이라고 생각된다.
그 때 같이 공부하며 출가자의 기본을 다지던 스님들이 이제는 20년도 더 지난 중견 승려들이 되었다. 다들 원만하고 반듯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이제는 그 스님들이 산중의 후배들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다. 

주경 스님/ 수덕사 부주지

하지만 사람의 생각이 그런 것일까! 먼저 지나온 사람이 보기에 뒤에 오는 사람은 늘 무언가 허술한 구석이 보이곤 한다. 그렇다고 직접 나서서 가르치기엔 때가 아니다. 그냥 외면하자니 또 불편함이 있다. 그래서 몸으로 행동으로 열심히 보여주려고 애써본다. 흔히 하는 말처럼 ‘티 나지 않는’ 경계에서 말없는 가르침을 전해보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때론 효과가 있다. 고맙고 감사하다. 보아주고 알아주어서 그리고 바로 이해하고 고쳐 주어서. 감동스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을 때도 있다. 그렇게 몸으로 행동으로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서도 안 되면 방법이 없다. 결국 말을 해서 가르친다. 너무나 쉽고 간단한 작은 ‘배움과 가르침’이 정말 쉽지 않다.

둔한 제자들을 가르치며 속이 타고 갑갑했을 어른 스님들께 진심으로 참회를 드린다. 속 썩여서 죄송합니다. 이제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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