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지관 스님 2

 

<서신 1>

대원성에게

16일 편지 잘 받았습니다. 진주 강화 등지로 다니면서 오랜 기간에 정성껏 기도하였다니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우리들은 본래 무한한 힘을 가졌지만 무명의 먹구름 때문에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힘을 빌리지 않으면 모두가 뜻대로 되기가 어렵습니다. 추운 날씨에 감기 들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이곳은 별일 없으며 종정스님도 편안하십니다. 아무쪼록 부처님의 품안 광명속에 살면서 보람된 삶을 가지길 바랍니다. 언제 기회 있으면 한번 오길 바랍니다. 나도 부산 가는 길 있으면 한번 갈까 합니다. 진포 2동 항도중학 뒷산 감로사 주지스님이 바로 나의 사형입니다. 끝으로 대원성의 건강을 바라면서 오늘은 이만. 다음에 또. 1969. 1. 21. 해인사에서 지관 회답

<서신 2>

8일 편지 잘 받았습니다. 모처럼 찾아 온 기회에 추수에 바빠 부득하게 17일 아침 일찍(6시) 농장에 오게 되어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노 처사님도 함께 무고한지? 지난번 불교신문에 결혼의 안내가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이젠 그전과 다른 위치이며 의무도 한 가정의 주부로서 무거워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人生行路(인생행로)에 겪어야 할 불가결의 과정입니다. 아무쪼록 二身同志(이신동지)가 되어 苦樂(고락)을 함께하여 단란한 가정을 이룩함과 동시에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불자의 의무를 다하는 길입니다. 현실에 만족하며 또한 현실을 극복하여 거기에 다시 불국토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들 불자가 하여야 할 일입니다. 이만. 1969년 12월 14일 해인사에서 이지관

지관 스님은 1967년 부산불교 청년수련회에서 처음 뵈었다. 인연을 짓고 난 후에 부산에 오실 때면 늘 찾아주셨다. 연꽃모임에 각별히 마음을 써주셨다. 회원들의 법명도 많이 지어주셨고 연꽃모임 특별법회 때에도 법문을 해주셨다. 새로 나온 책이나 공부가 될 만한 것들이 보이면 연꽃모임 회원들에게 그때그때 부쳐주셨다.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셨다.

스님은 처음 뵈었을 때부터 특별한 인상이었다. 항상 한 손에는 펜을 들고 계셨다. 늘 글을 쓰고 공부하며 사셨다. 항상 뵐 때마다 좋은 법문 주시려고 애쓰셨다. 무엇이든지 부처님 말씀으로 이야기해서 대중을 부처님 가까이로 데려다 주셨다. 짧은 서신이지만 서신 한 번 주실 때에도 늘 짧은 법문 한 줄이 빠진 적이 없었다. <서신 1>은 해인사 수련대회 후 진주 응석사와 강화 보문사 기도를 마치고 부친 서신에 대한 답신이다.

스님이 동국대 총장으로 계셨을 때, 일타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지관 스님은 끊임없는 노력과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 그래서 오늘날 동국대학교 총장 자리에 있는, 그야말로 자격이 있는 스님이야”

스님은 우리 부부가 불교청년회에서 만났다는 것에 늘 각별한 마음을 써주셨다. 해인사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길목에서 스님을 만난 적이 있다. 옷에 잔뜩 흙을 묻히고 논에서 혼자 울력을 하고 계셨다. 날이 저물어 돌아가려는 참이었다고 하시며 반갑게 맞아 주셨다. 격의 없는 모습에 마음이 훈훈했던 기억이 난다. 스님께서는 결혼한 후부터 더 많이 마음을 써주셨던 것 같다. 늘 우리 부부의 행복을 기원해 주셨다. 말이든 마음이든 늘 부처님 법으로 전해주셨던 스님의 모습이 그립다.

1981년 연꽃모임에서 법문하는 지관 스님. 항상 뵐 때마다 좋은 법문 주시려고 애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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