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법연사계(法演四戒)

오조 법연(五祖 法演, ?~1104) 선사는 송(宋)나라 사천성(四川省) 면주(綿州) 출신으로 임제종(臨濟宗) 양기파(楊岐派)에 속한다. 35세의 늦은 나이에 출가하여 유식학(唯識學)을 배우고, 호북성(湖北省) 오조산(五祖山)에서 선풍(禪風)을 일으켰으며, 조주(趙州)의 ‘무(無)’자 수행을 역설하였다. 〈법연선사어록(法演禪師語錄)〉이 있으며, 그는 ‘삼불(三佛)’로 불리는 불과 극근(佛果 克勤, 1063~1125), 불안 청원(佛眼 淸遠, 1067-1120), 불감 혜근(佛鑑 慧懃, 1059~1117) 등의 제자를 배출한 당대 고승이었다. 불과 극근[圓悟克勤]은 〈벽암록(碧巖錄)〉의 저자이기도 하다.

법연 선사의 가르침 가운데 ‘법연사계(法演四戒)’라는 것이 있다. 〈만속장경(卍續藏經)〉의 〈선원몽구요림(禪苑蒙求瑤林)〉 권 하(卷 下)에 나오는 것으로, 그의 제자 불감 혜근이 서주(舒州)의 태평사(太平寺) 주지를 맡게 되자 선사가 스승으로서 일러준 간곡하고 요긴한 당부의 말씀이다.

“불감 혜근 화상이 처음으로 서주 태평사 주지로 가게 되어, (스승인) 오조 법연 선사께 작별인사를 드리게 되었다.

법연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무릇 주지 노릇을 할 때에 반드시 지켜야 할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세력[勢]을 다 사용하지 말고, 둘째는 복을 다 받아쓰면 안 되고, 셋째는 지켜야할 규율과 법도를 (너무 엄격히) 다 시행하지 말고, 넷째는 (너무) 좋은 말만 다하지 말라. 왜냐하면 좋은 말만 하면 사람들이 쉽게 (얕)보고, 규율과 제도를 (엄격히) 다 시행하면 사람들이 번거로워 하며, 만약 복을 다 받아쓰면 주변에서 따돌림을 받고, 권세를 다 부리면 반드시 화(禍)가 미치기 마련이다.’ 불감화상이 (공손히) 두 번 절을 올리고, (스승의) 교훈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며 물러났다.”

〈禪苑蒙求瑤林 第3卷 X87n1614_0094a01-06〉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직책을 맡게 마련이다. 직책이 높아질수록, 직책에 익숙해질수록 초심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 주어진 권한을 공적인 일에 필요한 만큼만 사용해야하는데, 어느 사이에 직권을 남용하여 사익을 취하는 일이 많아진다. 직책의 상하관계를 사람의 상하관계로 착각하기도 한다.

100의 물건을 둘이 나누어가져야 할 때 객관적으로 50:50으로 나누어가지면 공평하게 나누어가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주기보다 받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떡을 똑같이 나누어가졌는데도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속담이 있는 것이다.

어린 형제에게 어머니가 먹을 것을 똑같이 나누어주어도, 심술궂고 욕심 많은 형인 경우, 힘 센 형은 동생 것이 더 커 보여, 강제로 동생 것과 자기 것을 바꾼다. 그러면 또 동생 것이 커 보여 다시 바꾼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결국 사회생활에서 고립되게 된다.

그래서 6바라밀의 첫째가 보시(布施)로 주는 연습을 시키는 것이다. 주는 기쁨이 매우 크기 때문에, 한 번 주어본 사람은 계속 주려하고, 보살정신이 배양되어 자기가 쌓은 복덕을 중생에게 모두 회향[普皆廻向]하게 된다. 지은 복을 혼자 다 누리지 않고 회향으로 나눌 때 불국토가 된다.

아무리 법도에 맞는 옳은 일일지라도, 남의 그릇됨을 강강하게 시비만 하지 말고, 때로는 관용을 베풀고 바로 잡을 기회를 줄 경우도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듣기 좋은 말만하지 말고, 따끔하게 지적을 해야 할 때도 있어야 하는데, 마냥 좋은 말만 하면 업신여김을 받을 수 있다. 법연사계는 오늘날의 세속사회에서도 꼭 새겨서 실천해야 할 훌륭한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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