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닦음의 길 17

오랜 시간 사랑을 받고 있는 스테디셀러 중에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던 현대인에게 잠시 멈추면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소중한 가치들이 비로소 보인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일반인에게도 많은 인기가 있었고 저자인 출가사문을 스타로 만들기도 했다. 이 멋진 제목은 천태종의 수행체계인 지관(止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과연 멈추면(止) 어떤 것들이 보이는(觀) 것일까?

지관은 천태지의(天台智? 538~597)에 의해 확립된 수행법이다. 이 수행체계는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8정도의 정정(正定)과 정념(正念)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정정은 지(止), 고요해진 마음으로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는 정념은 관(觀)에 해당된다. 한마디로 지관은 정정과 정념을 천태적으로 해석한 수행법이다. 이는 선정(定)과 지혜(慧)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결국 한 뿌리에서 나온 수행이 문화, 종파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관은 마음을 고요하게 함으로써(止) 존재의 참 모습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觀) 수행이다. 천태 대사는 열반에 이르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지관이 가장 핵심적인 수행이라고 강조한다. 지(止)는 번뇌를 제거하는 최초의 문(初門)이자 선정의 근원이며, 관(觀) 또한 미혹을 끊는 바른 요체(正要)이자 지혜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와 관을 수레의 두 바퀴, 또는 새의 양쪽 날개로 삼아 함께 수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선정만 닦으면 어리석음(愚)에 빠지게 되고 반대로 지혜만 강조하면 미친(狂) 행위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한쪽으로 치우친 수행은 원만하지 않기 때문에 깨침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정혜쌍수(定慧雙修)는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천태종에서는 삼종지관(三種止觀)이라 해서 지관을 실천하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낮은 단계에서 시작하여 점차 깊은 경지로 들어가는 점차지관(漸次止觀)이다. 이는 마치 1층부터 계단을 하나씩 밟으면서 맨 꼭대기에 오르는 것과 같다. 첫 마음을 낸 수행자는 먼저 삼보(三寶)에 귀의하고 악한 일은 하지 않고 선한 행동을 하는 등의 계행을 실천한 다음 선정을 닦아 산란한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그렇게 점차적으로 수행이 깊어지면 마침내 존재의 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는 깨침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둘째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일정한 순서 없이 수행하는 부정지관(不定止觀)이다. 어느 때는 점차적인 단계대로 수행하다가 때로는 곧바로 깊은 경지의 수행을 하는 경우다. 사람마다 공부가 잘 될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수행자의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대처하는 공부라고 할 수 있다.

셋째는 처음부터 존재의 참 모습을 원만하고(圓) 즉각적으로(頓) 깨치는 원돈지관(圓頓止觀)이다. 이는 매우 뛰어난 근기의 수행자들만 행할 수 있는 실천이다. 마치 점차지관처럼 한 계단씩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승강기를 타고 곧장 맨 꼭대기 층에 오르는 것과 같다. 이는 중생이 곧 부처이고 번뇌(煩惱)가 보리(菩提)며, 생사(生死)가 열반(涅槃)이라는 존재의 실상을 일시에 깨치는 일이다.

천태의 지관수행은 불교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사태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오늘날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인류 역사상 경험해보지 못한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과 물자의 이동 등 많은 것이 멈춤으로써(止) 적지 않은 소중한 가치들이 보이기(觀) 시작했다.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자연과 환경이 인류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인류 문명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어디를 향해, 무엇을 위해 그렇게 달리고 있는지 말이다. 이제는 우리가 멈춰 서서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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