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문인의 차 생활
원나라 지배전 고려후기 문화는
풍요롭고 화려한 왕실귀족 대변
‘찻물’로 유명한 샘물엔 줄서기도
문인들, 물·불 가치 명확히 인식

초의선사 16나한도 중 6.

고려 시대 차 문화를 주도한 그룹 중에는 관료 문인들이 있다. 이들은 차를 향유하는 즐거움과 차의 고결한 가치를 서정적이며 철학적인 어휘로 표현하여 이 시대의 차 문화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들의 차에 대한 찬미는 대개 시로 표현되었고, 문집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 같은 문헌에 수록되어 있으며 대략 12~4세기로 편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13~14세기는 무신정권의 득세와 몽골의 침략을 겪던 시기이다. 대몽항전은 1231년부터 30여 년간이나 혼란을 겪어야 했다. 국가가 풍전등화에 놓여있는데도, 고종 19년(1232)에 최우가 강행한 강화 천도는 왕실을 지키기 위한 명분이었지만 백성의 고통은 컸다. 당시 최고의 권력자 최우는 많은 반대 세력을 억누르고 천도한 것인데, 이는 고려 왕실이 몽골의 재침을 방어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위란의 상황에서도 최우의 사치는 식을 줄 몰랐으며, 왕족이나 귀족들도 백성들의 고통은 안중에 없었다. 이들은 강화에 저택과 사원을 짓고 팔관회와 연등회 등을 호화롭게 열었다. 고려 왕실이 다시 개경으로 환도(1270)한 후 무신정권은 몰락하지만, 원의 지배하에 들어가 몽고풍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13세기 후반 원의 지배를 받기 이전의 고려 후기 차 문화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기를 살았던 김극기(?~1209)는 승려들과 교유하며 차를 즐긴 문인으로 다시(茶詩)를 통해 차를 노래했다. 그의 시는 격조가 맑으며 내용이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무신 정권기에 사대부로서 왕실의 안위와 백성을 걱정하며, 전원으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보였는데, 이는 정치적인 혼란기에 사대부의 처신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특히 그가 지은 〈박금천(薄金川)〉은 평양부에 위치했던 샘물의 이름이다. 차를 다리기에 좋아 온종일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는 사실은 당시 사람들의 차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라는 점이다.

한 줄기 날낸 샘물, 처음 발원한 곳은(一道飛泉始發源)
인가가 끊어진 유산의 뿌리라.(紅衢斷處乳山根)
달고 서늘한 기미가 차 다리기에 적당하여(甘凉氣味宜烹茗)
힘들게도 도성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길어가네(苦被都人汲引喧)
이 물은 어느 곳에서 발원한 것인가.(一水來從何處源)
유산 아래 흰 구름 피어나는 바위라.(乳山山下白雲根)
차를 다리려고 처처에서 서로 길어 가니(試茶處處人相汲)
오가는 사람들로 온종일 시끄럽네.(人去人來盡日喧)

윗글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권51 ‘평양부’에 수록된 김극기의 시다. 평양부에는 차를 아는 이가 많았는지 박금천을 길어가기 위해 하루 종일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차는 물이 중요하다고 말한 논서가 많다. 그만큼 물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차의 색향기미는 물에서 피어난다. 더구나 물이 생명의 근원임에랴. 그러므로 물은 차의 근원이라 인식한 셈이다. 무엇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평탄하게 해 주는 차의 본질을 다 드러내기 위해서는 이에 걸맞은 물이 필요하다. 당나라 육우(陸羽)가 물을 평가하여 20여 종으로 분류한 연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정한 물의 기준은 후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그의 〈이십탕품(二十湯品)〉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육우가 물의 등급을 말한 것은 대략 20종인데, 여산의 강왕곡수렴수를 첫째로 쳤고, 두 번째가 무석 혜산사의 석천수를, 기주의 난계석 아래 물을 세 번째로 쳤다. 네 번째가 협주의 선자산 아래 하마구수를 쳤고, 다섯째가 소주의 호구사 석천수를, 여섯째가 여산 초현사 아래 방교의 담수를, 일곱 번째가 양자강 남영수를, 여덟 번째를 홍주 서산의 폭포천을, 아홉 번째를 당주 동백현 화수원을, 열 번째를 여주 용지산령수를, 열한 번째를 단양현 관음사의 물을, 열두 번째를 양주 대명사의 물을, 열세 번째를 한강 금주 상류 중에 영수를(물이 쓰다), 열네 번째를 귀주 옥허동 아래 향계수를, 열다섯째를 상주 무관 서락수를, 열여섯째를 오송 강물을, 열일곱째를 천태산의 서남봉 천장폭포수를, 열여덟째를 유주의 원천수를, 열아홉째를 동려 엄릉탄수를, 스무 번째를 설수로(눈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하다. 너무 차다.)정했다.

(陸羽論水次第  凡二十種 廬山康王谷水簾水第一 無錫惠山寺石泉水第二 嚬州蘭溪石下水第三 峽州扇子山下蝦鏶口水第四 蘇州虎邱寺石泉水第五 廬山招賢寺下方橋潭水第六 揚子江南零水第七 洪州西山瀑布泉第八 唐州桐柏縣淮水源第九 廬州龍池山嶺水第十 丹陽縣觀音寺水第十一 揚州大明寺水第十二 漢江金州上游中零水第十三(水苦)歸州玉肯洞下香溪水第十四 商州武關西洛水第十五喬淞江水第十六 天台山西南峰千丈瀑布水第十七 柳州圓泉水第十八 桐廬嚴陵灘水第十九 雪水第二十(用雪不可太冷)

윗글은 명대의 〈속다경(續茶經)〉에 수록된 내용이다. 육우가 찻물로 적합한 천하의 물들을 분류하여 20곳을 지정한 것이다. 이에 무석의 혜산사 샘물과 양자강의 남영수는 후대에 좋은 물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차에 밝았던 승려나 문인들은 육우의 이십탕품에 관해 이해했을 것이며 실제 차 생활에도 응용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고려 시대의 문인들이 논한 품천(品泉)에 대한 이해는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엄 선사를 찾아가(訪嚴師)〉에서도 확인된다.

내가 지금 산방을 찾은 것은(我今訪山家)본래 술을 마시려는 것이 아닌데(飮酒本非意)올 때마다 술자리 베푸니(每來設飮筵)얼굴이 두꺼운들 어찌 땀이 안 나겠는가(顔厚得無?)스님의 격조 높은 것은(僧格所自高)오직 향기로운 차를 마시기 때문이라(唯是茗飮耳)좋은 몽정의 차를 가져다가(好將蒙頂芽)혜산의 물로 달인 것임에랴(煎却惠山水)차 한 잔 마시니 문득 뜻이 통하고 (一?輒一話)점점 심오한 경지로 들어가네(漸入玄玄旨)이 즐거움이 참으로 청담하니(此樂信淸淡)어찌 술에 취할 필요가 있으랴(何必昏昏醉)

윗글은 혜산수가 천하의 명천으로 상징되어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확인할 자료이다. 차를 향유하는 아름다움을 가장 많이 노래한 것도 이규보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무신 정권기에도 차 문화는 간단없이 꽃피고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는 고려 후기 대표적인 다인(茶人)으로, 차를 알고 불교의 오묘한 이치를 짐작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고승을 찾아가 나눈 일담(一談)은 분명 현묘한 이치를 공감하는 청담(淸談)이었을 것이다.

그가 말했듯이 당시 차를 끓이고 마시는 일은 승방의 일과였고 수행자의 격조 있는 삶이었다. 속인 이규보가 찾아오니 술을 대접하는 수행자는 분명 승속을 초월한 경지를 지닌 걸림 없는 수행자의 모습이다. 물론 술을 좋아한 이규보야 이런 대접이 싫지 않았겠지만, 짐짓 “올 때마다 술자리 베푸니(每來設飮筵)/ 얼굴이 두꺼운들 어찌 땀이 안 나겠는가(顔厚得無썎)”라고 말했다. 이는 그의 겸손함이 함께 묻어난 절구(絶句)라 하겠다.

그런데 이 시에는 다음과 같은 첨언(添言)이 있다. 바로 “선사는 여간해서는 술을 내놓지 않았으나 나에게만은 반드시 술을 대접하였다. 그러므로 시를 지어 사양하였다.(此師稀置酒。見我必置。故以詩止之) ”라는 대목이다. 이는 뜻이 통하는 지기(知己)를 대하는 태도일 것이니 승속의 우정을 짐작하게 한다.

원래 차를 향유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은 첫째 검소하며 맑은 정신세계를 지향해야 하고, 둘째 좋은 차를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하며, 셋째 찻물을 분별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이 외에도 센 불과 약한 불(文武火)이 교차되면서 만들어내는 화후(火候)의 묘미를 터득해야한다.

온전한 차를 얻었다면 이를 잘 드러낼 물이 필요하다. 그뿐 아니라 어떤 불로 물을 끓일지도 중요하다. 옛 다서(茶書)에는 물을 끓일 때 숯불의 불꽃이 어떻게 피어야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화로에 불꽃이 모두 붉어지면 비로소 다관을 화로 위에 올려놓고 부채로 가볍고 빠르게 부치는 것이 중요하다. 탕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나기를 기다려서 점점 세고 빠르게 (부채를) 부치는데, 이것이 문무의 화후이다. 만약 문화가 지나치면 수성이 유약해지고 수성이 약해지면 물이 차를 누르게 되며, 지나치게 센 불로 물을 끓이면 수성이 매서워진다. 수성이 매서우면 차가 물을 제압하므로 모두 중화를 이루기에 부족하다.(爐火通紅 茶瓢始上扇起 要輕疾 待有聲稍稍重疾 斯文武之候也 過于文則水性柔 柔則水爲茶降 過於武則火性烈 烈則茶爲水制 皆不足於中和)

윗글에 따르면 문화는 약한 불이고 무화는 센 불이다. 문무화를 잘 다룰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셈인데, 이는 탄력이 있는 불에서만이 차를 잘 드러낼 탕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물과 차, 불은 차의 삼요소다. 이를 잘 조화롭게 운영하는 사람만이 차의 오묘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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