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회피와 절망

15-1 안 그런 척하고 그런 척하고 아닌 척하고 인 척한다.

우리말이 참 멋있지 않나요? 무슨 말이 이런가 싶지만 우리네 삶의 한 측면입니다.

외면에도 존재하는 원인
근본자리 제대로 살피고
근본치유로 상처 메워야


심리학 용어로 회피라는 말이 있습니다. 회피는 인지적 차원과 감정적 차원, 그리고 행동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힘든 상황을 겪고 나면 무의식적 방어가 일어나는데 먼저 괴롭고 힘든 상황을 인지적으로 부정하여 생각하지 않으려 하거나 기억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커다란 정신적 트라우마를 받으면 기억 상실에 이르기도 하지요. 감정적 회피는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반응이 정상적인 데 반해 감정적 무감각, 무감동으로 나타납니다. 행동 차원에서는 비슷한 장소나 상황을 피하고 사람들을 피하여 외출을 못하고 칩거하거나 알코올이나 약물 남용, 수면 과다나 불면증, 폭식이나 식욕부진 등으로 나타납니다. 속으로는 엄청난 상처가 있는데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거나 속으로는 괴로우면서도 아무 괴로움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게 모두 회피 반응들입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후 차를 피하고 운전을 두려워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15-2 어느 의대생이 인턴을 마치고 우수한 성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원하는 과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런데 상급 의사가 사사건건 나무래고 지적하여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하루는 술에 만취하여 다음 날 출근을 못하게 되었지요. 그런 일이 두 번 세 번 일어나자 주임 교수까지 알게 되어 경고를 받습니다. 낙심하여 의사를 포기하고 자살할 생각까지 합니다. 자신을 성찰하여 비난과 모욕을 한 귀로 흘릴 수 있다면 크게 스트레스 받을 일이 아니라 채찍질이 되었을 텐데요. 괴로움을 달래려고 술에 의존하고 자신을 비난한 상급자에게 화를 풀 길이 없자 상대를 원망하고 절망하게 된 거지요.

15-3 우리는 조금만 상처를 받아도 아프다고 괴로워하고 쾌락을 주는 것들로 도피하려 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가슴으로 보살피기 보다는 자신을 판단하거나, 무시하고 고치려 애를 쓰며 살아왔습니다. 가슴으로 느끼는 대신 머리로 따지고 평가하며 살고 있지요. 아픔을 경험하고 달래주고 보듬어주는 데 서툴지요. 그 이면에는 사랑을 잃을까 봐 겁내는 아이가 있지요. 그것을 가르쳐주는 대신 실수나 잘못을 무섭게 야단치고 체벌까지 하며 훈육한 양육 때문이지요. 그래서 아이는 인정받고자 온갖 노력을 합니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척하며 사는 삶이 시작됩니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도 상처받은 아이에게 관심을 주는 대신 비난과 평가로 다스리며 의붓 자식처럼 소홀히 대해 왔지요. 아동 학대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15-4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하던 외동아들을 갑자기 잃은 어떤 여인이 거의 실성하다시피 되어 부처님을 찾아왔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위신력으로 제 죽은 자식을 살려주십시오.”라고 간청합니다. 부처님은 그녀에게 “삼대째 초상을 치루지 않은 집에서 겨자씨를 얻어오라.” 하셨지요. 자애로운 부처님 답변에 눈물을 흘리며 “예, 꼭 제 아들을 살려주세요.”

그녀는 겨자씨를 얻으려 그 길로 온 마을 집집마다 찾아갑니다. 이 마을 저 마을 발바닥이 부르트고 피멍이 맺도록 찾아가 보았지만 그런 집은 없었습니다. 절망하며 다시 찾아온 그녀에게 부처님은 냉정한 말씀을 합니다.

“모든 사람은 죽기 마련이다. 이미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낼 수 없다.”

집집마다 다니며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을 정리한 그녀는 그 길로 출가하여 마침내 번뇌를 여의게 됩니다.

15-5 심리치료나 명상치료의 첫 번째 단계는 직면하기와 수용하기입니다. 2600년전 부처님은 현대 심리치료의 핵심에 정통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호랑이 굴에 떨어졌을 때 호랑이로부터 도망가거나 싸우려 드는 건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호랑이를 없애려는 노력은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없앨 수 없다면 호랑이라는 고통속으로 들어가기, 대면하고 경험하기가 올바른 해법이라는 걸 이야기하였었지요. 도피하거나 억누르는 대신 외상 경험을 재현해 다시 경험하되 아픈 마음을 안아주면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훈련을 치료자와 함께 해 나갑니다. 주의깊게 보는 능력이 커질수록 마음의 요동 반응도 점점 가라앉아 평정심을 유지한 채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과정은 만만치 않습니다. 사고 경험 후에 생긴 결론(신념)을 우선 해체하는 인지적 수준의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안전한 곳은 없어.’ ‘아무도 믿을 수 없어.’ ‘나는 망가져서 예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거야.’ ‘누구도 이런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누구도 믿을 수 없어.’ 등 사고 후 내린 부정적 결론에 붙들려 옴짝달싹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분 부정이 전체 부정으로 확대되어 삶 전체를 호령하고 있음을 봅니다. 이런 상태가 석달 이상 지속되면 거의 평생 역전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나 세월호처럼 죽음의 위협을 직간접으로 겪은 사람들에게 가장 아끼는 가족의 불의의 사망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사고를 겪은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반응들입니다. 정신의학적으로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라 부르지요.

15-6 두 번째 단계는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속마음을 들여다 보는 훈련을 해보아야 합니다. 칡넝쿨처럼 고구마 줄기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떠오르는 연상들은 사람마다 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호랑이 꿈을 꾸었을 때 호랑이는 무엇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매우 획일적인 답입니다. 꿈꾼 사람의 의식에 호랑이가 무얼 의미하는지 연상을 통해 추적해들어가는 게 바른 해석입니다. 따라서 같은 호랑이라도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겠군요.

〈금강경〉을 보면 부처님과 수보리 존자의 문답이 이어지는데 부처님은 이미 연상 기법을 탁월하게 사용합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의 연상에 이은 또 연상을 고무시키는 질문 “또 네 생각은 어떠하냐?” 이러한 연상적 질문을 통해 수보리의 깨달음을 촉발시킵니다. 사실 부처님은 높은 선정 수행과 6년 극한 고행으로도 깨닫지 못하자 다시 태자 시절 품었던 고통의 원인에 대한 사유를 전개하여 마침내 고통이 어떻게 발생하고 전개되어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낱낱이 통찰합니다. 연기법이지요. 초기 경전 가운데 상윳타니까야를 보면 도처에서 명상 중에 이러이러한 생각이 떠올랐다는 대목들을 접합니다. 모두 연상에 입각한 사유를 통해 명확하게 알지 못한 것을 깨우치는 장면들이지요.

15-7 마음을 연기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붓다의 연기법은 사변적 개념적 성찰이 아닙니다.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생각과 감정을 보고 그 앞뒤 맥락까지 보는 것입니다. 생각을 하는 것과 생각을 보는 것은 큰 차이입니다. 대부분 생각은 상대를 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명상은 상대를 평가하고 상대를 설득하려 하는 대신, 자신의 마음의 변화를 보고 상대에 의해 일어난 마음의 파문을 가만히 바라보는 거지요. 타인의 대들보만 보고 자신은 잘못이 없는 척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내면의 진실을 보아야 합니다. 마음공부는 자신이 척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내려놓는 것이 솔직한 태도입니다.

힘들고 가슴이 답답한 경우 어떻게 명상해야 하나요?

답답한 감각을 지켜봅니다.

다리가 저리면 저림을 지켜봅니다.

호흡을 바라보세요.

이러한 마음 이러한 불편한 감각으로 호흡은 어떻게 되어 있나요?

생각보다는 감정을, 감정과 함께 감각을 그윽히 지켜보노라면 또 떠오르는 장면이 있고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오늘 겪은 일일 수도 어제의 일일 수도 어린 시절의 일일 수도 있는데 그냥 지켜봅니다. 드라마 보듯 지켜보되 머리로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경험하는 것임을 유념해야 합니다.

15-8 물론 보는 힘이 커지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생각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후 그 생각이 일어나게 된 전말을 볼 수 있습니다. 허지만 처음부터 그리 되지 않아도 속상해 할 필요 없습니다. 속상해하는 마음을 보면 되기 때문이지요. 속상해하는 마음속엔 어린 시절 상처받고 울고 있는 나와 오버랩됩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원망스러운 마음 속에는 나를 몰아치고 다그치는 사람이 있군요. 화도 마음대로 못 내고 울음도 뚝 그쳐야 하고 눈치를 살피기 시작합니다. 그 사람이 속상해하지 않도록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하지 않도록, 그 사람 마음에 들기 위해 내 감정 내 주장을 억눌러 왔군요.

울고 있는 아이를 꼬옥 보듬어주고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는지 어루만져주세요.

실컷 울도록 허용하세요.

흐느낌이 되어 잦아들 때까지 충분히 놔두세요.

15-9 삶의 구비마다 만나는 스트레스를 깨닫는 도구로 여기면 우리는 낙오자가 아니라 성장하게 됩니다. 아까 의대생도 비난과 모욕을 감당하고 극복했으면 더 강하고 실력 있는 의사로 성장했을 텐데요. 실패나 비난을 경험하지 못한 여린 마음이 쉽게 결론 내려버립니다. ‘아 나는 괴로움을 술로 달래야만 하는 못난이로 의사될 자격이 없다.’라고. 이것은 머리의 결론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처를 가슴으로 안아주고 어루만져주고 가슴으로 느끼면 상처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가슴으로 내면의 이야기를 경청하여 그 의미를 깨닫기가 치유의 세 번째 단계입니다. 상처의 의미를 깨달으면 상처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더 이상 나를 구속하는 족쇄가 아님을 느끼게 되지요. 치유는 용서가 일어나면 완결됩니다. 용서가 되면 상대의 아픔을 오히려 연민하면서 감사의 념이 우러나오고 상처는 아물게 됩니다.

꽃은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저것은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느낄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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