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칼

천년고도 경주 거닐며 사유한
삶의 깊은 이야기 40여 편 소개

종이 칼 / 법념 스님 지음 / 민족사 펴냄 / 1만3천8백원

 

“아! 완연한 봄이로구나. 여기저기서 생명이 움트는 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분다. 꽃이 져버린 생강나무는 가지 끝에 잎만 뾰족이 나와 흔들리지 않는다.”

팔순을 바라보는 스님은 오랫동안 천년고도인 경주를 거닐며 많은 사유의 시간을 가졌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떠오르는 기억들 속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깊게 사유했다. 책 <종이 칼>은 깊은 사유 속에서 길어 올린 삶의 이야기 40여 편을 엮은 법념 스님의 첫 산문집이다. 책 속의 이야기들은 ‘법념의 이야기’에서 ‘삶의 이야기’로 확장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산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머금게 한다. 오래된 그 이야기들은 그저 지나간 옛이야기가 아닌 오늘로 이어지는 삶의 이야기다.

팔순을 바라보는 스님도 소녀였던 때가 있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스님은 여섯 살이었다. 영화의 고장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소녀는 ‘서울내기 다마내기’라고 놀림도 받았지만 바다가 있어서, 영화가 있어서 좋았다. 꿈을 꿀 수 있어 좋았다. 출가해서 공부하고 수행하며 열심히 살았다. ‘법념’이라는 법명이 발음하기 힘들다며 법명을 바꿔달라고 큰스님께 투정부리던 스님은 어느덧 팔순의 나이를 바라보게 됐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건망증으로 힘겨운 ‘노스님’이 되었다. 그래도 스님은 아직도 떠올릴 추억이 많다.

책 <종이 칼>은 법념 스님이 보고 느낀 세상의 모습이며 자신의 오래된 추억들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무심히 지내왔던 일들에 호기심을 보이고 세상을 들여다보면서 “세상이 이렇게 재밌고 아름다웠구나!” 아이처럼 감탄한다. 종이 한 장이 아무 힘이 없어 보이지만 그 종이에 쓰인 글이 금강보검과 같아 백팔번뇌를 다 베어낼 수 있는 것처럼, 법념 스님은 <종이 칼>에 담긴 글들이 누군가에게 그러한 힘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법념 스님은 1945년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났다. 1972년 혜해(慧海) 스님을 은사로 불교에 입문했다. 1976년 수원 봉녕사승가대학을 졸업한 후 제방선원에서 15년 동안 안거했다. 2013년 ‘동리목월’ 신인문학상으로 문단 추천을 받았다. 향곡 스님의 생전 일화를 정리하여 <봉암사의 큰 웃음>을 출간했다. 현재 경주 흥륜사 한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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