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선종 및 심성론

중국불교 불성론 ‘심성’ 중시
인도불교 심성론을 기본으로
내면의 심리·본성 탐구 강조

 

인도불교의 불성론은 주로 반야학에서 실상론이 변화 발전해 온 것이다. 인도불교의 불성론이 추상적인 본체에 치중한 것과 달리, 중국불교의 불성론이 두드러진 점은 심성을 중시한 것이다. 불성론은 초기 경전에서도 많이 언급되는 사상이지만, 특히 대승불교가 흥기하고 석가모니부처님을 신격화하기 시작하면서, 대승불교는 인성(人性, 心性)을 주제로 한 불성(佛性)여래장 법신불 등의 사상적 개념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중국유가사상에서 어떻게 하면 성현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도덕철학의 주체인 인성을 탐구하는 사유관점과 유사맥락에서 출발한 것이다. 본래 ‘심성(心性)’의 문제는 중국전통철학에서도 중요한 주제였고, 그 근원을 소급해보면 ‘공맹’에 맞닿아 있으며, 맹자의 진심(盡心), 지성(知性), 지천(知天)은 중국 심성학(心性學)에 초석이 된다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심성(梵citta-prakrt, cittada)은 심(心)의 본성 혹은 실성(實性)으로, 심(心)이 본래 구비하고 있는 불가변역(不可變易)의 성질(性質)을 말한다. 중국불교 심성관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인도불교의 심성론이 기본 초석으로 성립되었고, 인도불교의 불성론이 전변(轉變)해서 중국에 본래 있었던 심성론과 밀접한 결합을 통해 좀 더 구체적이고 완성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따라서 중국선종의 심성론을 이해하려면 곧 중국철학의 정의(精義ㆍ깊고 오묘한 이치)를 깊이 이해했을 때 비로소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수당불교를 말할 때 8대 종파를 말하지만, 가장 중국화된 불교는 천태 화엄과 선종이다. 이 3종파가 중시한 중요한 문제 역시 ‘심성(心性)’에 관한 것이다. 선종은 불성을 사람의 본심(本心ㆍ本性)이라고 했다. 선종의 심성론은 각성(覺性)으로써 심체(心體)를 해석하고, 반야지혜로서 중생심의 본성으로 삼아서 심성본학(心性本覺)을 제창하여 견성성불로 인도한다. 한편 중국선종사에 심(心)과 성(性), 체(體)와 용(用), 체(體)와 상(相)은 서로 간의 연관성 내지 상즉성(相卽性)의 범주에서 설정된 개념이다. ‘체용(體用)’의 관계는 이미 중국 남북조 시대에 논쟁이 되었던 철학적인 범주이기도 하다. 즉 이러한 철학적 개념은 사물을 관찰해내는 기본적인 개념의 설정이었다. 한편 위진철학의 범주였던 체용(體用)은 화엄학에도 깊은 영향을 주면서 범불교 속으로 파고들었다. 특히 화엄학에서 말하는 ‘이사(理事)’의 관계는 ‘체용(體用)’의 관계에서 진일보한 ‘상즉(相卽)’ 관계에 기본 바탕을 이루고 있다.

비록 인도불교에서는 이른바 불(佛)ㆍ불성(佛性)ㆍ실상(實相)ㆍ법성(法性) 등의 개념이, 때로는 상통하거나 혹은 비슷한 의미로서, 추상적이고 풍부한 본체의 의의를 지니고 있으나, 이와 반대로 중국불교의 불성론은 현실적인 인간의 심성(心性)에 대해서 치중한 것이다. 그것은 중국인들의 오래된 사유관습과 현실을 중시하는 생활방식인 ‘실사구사(實事求事)’와도 매우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다만 선종은 심성을 더욱더 특화를 시켰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관점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일체중생개유불성’, ‘즉심즉불’ 등과도 일치하는 점이 있다. 이 점은 인도불교에서 주장하는 추상적인 본체와는 확연히 다른 선종만의 독특한 ‘인성관’, ‘불성관’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선종의 이러한 인성관 불성관이 절대로 불교의 근간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림, 강병호

 

한편 선종은 일체를 완전하게 심성에 귀결시키고 있는 점에서도 충분히 드러난 사실이다. 비교적 중국적인 색채가 농후한 또 다른 종파인 화엄종 및 천태종의 주장을 대비해 보면 더욱더 극명해진다. 이들의 불성론 관점은 매우 명확하게 하나의 ‘유심(唯心)’에 치중된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들은 왕왕 일심(一心)으로써 미오(迷悟), 염정(染淨) 등을 설해서 중생과 부처 및 범성(凡聖)의 차이점을 논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은 같다. 명칭에 대한 약간의 차이점과 수행을 지도하는 방편 및 과정이 다를 뿐이다. 다만 어느 일정 부분을 강조해서 각자 종파의 우월성을 나타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부처님께서 설하신 일대시교의 가르침을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천태종 저술에서는 자주 중도(中道) 및 실상(實相)을 불성으로 언급하면서, 최종적으로 제법과 실상을 일념심(一念心)에 귀결시키고 있다. 즉 〈법화현의(法華玄義)〉에서 “심은 제법의 근본이고, 심이 곧 총이다”고 하였고 “심(心)을 쫓아서 해탈을 얻는 연고이다. 만약에 일심으로 해탈을 얻으면, 일체수로 하여금 모두 해탈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연고이다”고 했는데, 모두 유심(唯心)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화엄종의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이라는 문구를 보면 ‘유심(唯心)’의 관점이 더욱더 분명해진다. 여기서 심, 중생심, 불심은 모두 평등체로서, 근본적으로 ‘심’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이러한 논리를 성립할 수가 이었던 것이다. 이른바 불성은 곧 ‘각심(覺心)’이 되고, 곧 ‘반야심원(反觀心源)’하는 것으로, 이것을 선종에서는 ‘반관심성(反觀心性)’이라고 하였는데, 즉 “일체법은 모두 마음으로부터 일어난다. 만약에 심성(心性)을 돌이켜 관하면, 마음의 근원(뿌리)이 없다. 곧 알라 만법은 모두 근본(뿌리)이 없다”고 하고 있다.

천태종에 비해서 화엄종은 유심적인 색채가 더욱더 농후하다. 〈화엄경〉을 의지해서 수립된 화엄종은 〈화엄경〉의 기본사상 가운데 하나인 ‘법성본정(法性本淨)’ 관점에서 진일보해서 본질(理)과 현상(事)이 중첩된 일체제법이지만, 오직 ‘심’으로 상즉상입해서 평등원융 및 원융무애한 경지에 이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화엄종은 “일체만법은 오직 마음의 현현으로 달리 자체가 없다. 이런 연고로 대소가 마음을 따라 회전해서 곧 무애에 들어간다”고 했고, 또 일체만법 내지 제불은 모두 “중생심 가운데 있으며, 이 중생심을 여의면 달리 불덕(佛德)이 없는 연고이다. 불(佛)은 중생심 가운데 진여를 증득해서 성불한다”고도 했다. 이러한 의미는 ‘번뇌심이 곧 보리심이다(煩惱心卽菩提心)’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이처럼 기타 종파가 유심을 강조한 경향이 있는 반면에, 선종은 기타 종파의 교리 및 논리를 답습하거나 채용하고, 선종만의 독특한 개념인 ‘즉심즉불(卽心卽佛)’,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등으로 일체를 자심(自心) 혹은 자성(自性)으로 귀결해, 마음의 구체화를 이루는 새로운 발전 단계를 이루었다. 그 때문에 선종의 ‘심’은 현실에 속한 보통사람들의 ‘심’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같이 선종의 불성이론의 형성은 유가의 ‘심성관’ 및 기타 종파의 ‘유심관’을 서로 흡수하고 채용해서 성립된 결과물이다. 따라서 선종의 불성사상 이해는 중국 범불교의 유심관 또는 중국의 고유한 전통사상을 배제하고는 제대로 된 이해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의 고유한 전통문화사상은 인륜철학을 초석으로 한 도덕적 주체를 중시하는데, 이 점은 어떤 의미에서 유가 전통사상인 도덕철학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특히 도덕적 주체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 인간의 모든 행위는 인성으로 귀결된다는 관점이다. 이것은 유가의 ‘(내성학(內聖學)’의 강령이라고 하는 진심(盡心)ㆍ지성(知性)ㆍ지천(知天)ㆍ존심(存心)ㆍ양성(養性)ㆍ사천(事天)ㆍ수신(修身) 등을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가 있다. 위의 의미는 모두 안심입명에 중요한 요소로서 내성(內聖)을 완성하기 위해서 부단히 전진해 가는 과정 및 수단 방법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진심(盡心)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진심은 내심의 요구를 충분하게 실천하는 것으로, 진심의 기본 뜻은 〈고자상(告子上)〉에서 말하기를, “심은 사유하는 기관으로, 생각(思考)한즉 이를 얻을 것이며, 생각(思考)하지 않은즉 얻을 수 없을 것이다.(心之官則思,思則得之,不思則不得也)”고 했는데, 진심은 심혈을 기울여서 깊이깊이 사고하는 것이고, 또 〈離婁上〉에서 진심은 “(본인의)행동이 예상했던 것을 얻지 못했을 때, 반드시 자기를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行有不得者, 皆反求諸己)”고 했으며, 또 일에 장애가 생기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반드시 자기를 돌이켜 반성하고 성찰해보라는 것이다. 곧 모든 길흉화복의 출발점은 본인으로부터의 시작하기 때문에, 자기 안에서 답안을 찾으라는 것이다. 총체적으로 진심은 철저하게 자심을 반사(反思)하고 성찰을 하는 데 초점이 있다. 여기서 지성(知性)은 도덕지성(道德之性)으로 깊이 인성을 아는 것인데, 그것은 사단심(四端心)으로 대표되며, 인간에게 천부적으로 내재된 자질과 본성을 가리킨다. 이 도덕지성의 전개는 곧 사회성과 직결된다고 하였는데, 즉 부모, 형제자매, 연장자, 친척, 부부, 친구 등 모든 사회적인 관계를 망라한다. 봉건사회에서 오륜(五倫ㆍ五常: 군신(君臣)·부자·형제·부부·朋友)을 기본바탕으로 이루어진 관계를 말한다.

〈중용〉에서도 “하늘에서 부여해준 인품과 덕성을 본성이라고 한다. 본성을 따라서 일을 하고 도리를 짓는다. 인간을 양성하고 아울러 도리를 준수하게 하는 것을 교화라고 한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싱)”고 했으며, 〈순자〉도 “마음은 도의 주재자이다. 도라는 것은 상식적인 도리를 다스리는 것이다(心者道之主宰)”고 했다. 이같이 유가에서도 심성에 대한 여러 가지의 다양한 관점과 개념을 상정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모두 당면한 현실세계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펼쳐진 사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같이 선종은 불교의 추상적 개념인 본체를 현실지심(現實之心)으로 활용해서, 현재에 당면한 사람들의 심을 강조했다. 또 번다한 교리체계 및 사유체계의 사변적 논리 구조를 간단 절묘하게 하면서, 자아를 반사(反思) 반관(反觀) 반회(返回)하도록 해서, 생명의 존재적 가치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하도록 했으며, 본래면목인 본성의 주인공을 찾도록 유도하는 ‘명심견성(明心見性)’을 주장했다. 아마도 이러한 관점은 중국인들이 “일에 대한 도리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실행하기는 비교적 쉽다(知難行易)”고 하는 오래된 사유적 관습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물론 불교의 핵심수행은 근본적으로 모두 내심을 탐구하는 데 치중을 하고 있지만, 특히 선종의 수행핵심은 외경에 대한 탐색보다는 오롯하게 내심의 심성문제, 즉 내면의 심리상태 및 본성을 탐구할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선종은 사람들의 현세를 중시하고 차안(此岸)을 중시하면서, 심성 방면에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각자의 생명에 대한 본질을 자각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 중국의 불교학자 뢰영해(賴永海)교수는 “전기 선종 이전에는 현실의 당면한 사람들의 마음을 불성으로 보았다면, 후기 선종은 항상 두루 하게 존재하는 진심(眞心)으로 불성으로 삼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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