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이오위칙(以悟爲則)

임제가 대중에게 말했다.

“요즈음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믿고 밖으로 구하려 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모두가 부질없는 티끌 경계에 올라가 옛사람들의 언어문자에 걸려서 도무지 그릇되고 바른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조사가 있다’ ‘부처가 있다’ 하는 것은 모두 교(敎)에서 하는 말일 뿐이니라. 어떤 사람들은 경전의 한 구절을 잡아내 그 뜻을 숨겼다 드러냈다 하면 바로 의심이 생겨 하늘을 비추고 땅을 비추어 허둥지둥 당황하여 딴 데로 찾아다니며 묻고 어쩔 줄 몰라 망연자실 하고 있느니라. 대장부들이여, 함부로 왕이 어떻다 도적이 어떻다 하며, 시비를 논하며, 여색과 재물을 논하는 등 쓸데없는 잡담을 늘어놓으며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산승은 이 자리서 승속(僧俗)을 구별하지 않고 찾아오는 자가 있으면 다 알아버린다. 그가 어떤 곳에서 온다 하더라도 말과 글귀로 하는 것은 꿈이요 허깨비일 뿐이니라.”

임제가 또 대중에게 야단치듯 말한다. 자기 자신을 믿고 밖으로 찾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남의 공부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스스로 미혹한 길을 가지 말라고 한다. 부질없는 티끌경계(閑塵境)란 외부의 육진경계(六塵境界)를 일컫는 말이나 옛사람들의 말이나 글귀에 의존하는 폐단을 두고 한 말이다. 실참실오(實參實悟)의 경지는 방편상의 편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선(禪)은 말 있는 곳을 떠나 말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라 한다. ‘조사가 있다’느니 ‘부처가 있다’느니 하는 말도 교의 자취라 일축해 버린다. 출격대장부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찾는 일 뿐이라는 뜻에서 왕이나 도적에 대한 이야기, 시비를 논하는 이야기, 재색(財色)에 대한 이야기 등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하였다. 말하자면 나라의 정세나 사회적 이슈에 민감해지지 말라는 말로 공부하는 사람은 세속 이야기나 정치적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주의를 주고 있다. 무엇보다는 깨달음을 위해(以悟爲則)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본분공부에 몰두하는 자가 세속적 대인관계나 사회적 문제에 나서는 걸 좋아하고 자신의 공부를 뒷전으로 하지 말라는 충고는 수행자의 근본 본질을 먼저 챙기라는 뜻에서 한 경책의 말이다.

〈사문불배왕자론〉을 지은 동진(東晉) 때의 혜원(慧遠ㆍ334~416)은 세속을 떠난 사문들은 왕이나 제후들에게 예를 갖춰 절을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는 그 당시 동진의 태위였던 환현(桓玄) 등이 사문의 집단도 신하된 도리로 왕에게 마땅히 예경을 하여 절을 해야 한다고 한 주장을 반박하면서 쓴 책이다. 혜원은 이 책에서 몇 가지 논지를 피력했다. 먼저 출가의 본질을 밝히면서 출가자의 생활은 세속의 모든 것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했다. 동시에 불도를 구하는 수행자는 세속을 따라서는 안 되며 세속생활을 부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육체는 일생을 마치면 죽지만 정신은 소멸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불도를 닦는 사람은 그 뿌리를 견고히 지켜야 하며, 세속의 권력과는 조금도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천명했다.

이러한 혜원의 〈불경론〉의 정신은 출가자의 기백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후대의 왕조들이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고부터 시대의 변천에 따라 권력과 타협하는 사례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절대 권력에 의한 탄압을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화적 풍토 속에 출가의 위상이 약화 될 때는 양보와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적 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출가 사문의 순수한 정신을 지키며 그 이상(理想)을 달성해 보고자 했던 불배(不拜)의 정신이 한때의 논쟁의 역사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반대로 국왕이나 권력자들이 덕이 높은 고승에게 예배를 한 사례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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