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지관 스님1

 

 

 

 

 

 

 

 

 

 

 

 

<서신>

보내준 편지 잘 받았습니다. 그리고 盧 處士님과 아이들도 모두 편안하길 바랍니다. 이젠 벌써 가을기분이 도는 듯합니다. 옛 시구에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미각지당춘초몽 계전오엽이추성), 즉 이른 봄 연못가의 풀은 아직 동면의 꿈도 제대로 깨지 않았는데 뜰 앞의 오동나무는 이미 가을 소식을 전해준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諸行無常(제행무상)일뿐 만 아니라 生 卽 死입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팔, 구십을 산다 해도 죽음의 사이는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봄이 곧 가을인 것과 같이 生이 곧 死입니다. 이 얼마나 무상합니까?

그러나 無常(무상)이 無常(무상)이 아닌 眞常不變(진상불변)하는 우리들의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짧은 시간에 돈도 많이 벌고 참선, 염불, 참회 등을 많이 하여야 합니다.

나는 금년 여름에 意外(의외)로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해인사로 전라도 광주로 강원도 설악산으로 등등. 뿐만 아니라 제주도 등 거의 전국을 돌아다닌 듯합니다. 설악산 간 것을 대원성은 모르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신통이 있는 듯합니다.

이곳은 별일 없으며 나도 잘 있습니다. 지난번 불국사에 (해인사 주지 도견 스님과 함께) 가서 일타 스님을 뵙고 하룻밤을 자고 왔습니다. 天高馬肥 燈火可親(천고마비 등화가친)의 계절에 경책을 보고 참선도 하세요. 가을이 가을이 아니라 곧 겨울입니다.

겨울이 되면 부산 사람들은 큰소리치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추위도 더위도 겁나지 않으니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이만. 1977. 8. 17. 서울에서 지관.

당시 연꽃모임이 만들어졌을 때, 스님께서는 젊은 불자들이 부처님께 귀의한 것이 기쁘고 반가운 일이라면서 많은 칭찬과 법문을 주셨다. 그리고 신간 불서들을 때때로 보내주셨다. 또 특별법회를 열고자 스님께 법을 청할 때면 어김없이 응해주시고 챙겨주셨다. 회원 모두 지금도 가끔씩 그때를 생각할 때가 있다.

위의 서신은 여름 끝자락과 가을 초입 사이에서 주셨던 서신인데, 지금도 서신을 꺼내볼 때면 그때 그 여름과 가을이 생각난다. 시절과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던 스님도 계절이 주는 무정설법을 무심히 지나치지는 못하셨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스님이 더 깊은 무정의 설법을 듣겠구나 생각했다. 공부가 적은 우리네들보다 훨씬 더 많이 보일 것이고, 훨씬 더 많이 들릴 것이라 생각했다. 다시 꺼내 읽은 서신의 한 줄 한 줄에서 그때보다는 조금 더 깊은 계절을 본다. 나도 조금은 깊어졌음이리라. 뜨거운 한여름에 서서 가을 내음이 묻어있는 추억의 서신을 읽는다.

선지식의 서신 속 글 한 줄 한 줄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설법이 들려온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누구나 알고 있는 글이지만 ‘지관’이라는 선지식의 이름을 거쳐 온 한 줄 한 줄은 또 다른 깊이의 설법으로 들려온다. 이 뜨거운 여름이 설법 속에서 가을이 되어가듯이, 스님이 가셨듯이,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는 모두 무상의 설법 속에 서있다. 분주한 일상을 사는 우리로서는 늘 부처님 말씀으로 깨어있기 힘들다. 가끔씩 오래된 선지식들의 서신을 꺼내 보는 일은 깨어나는 시간이다. 불법으로 깨어나는 소중한 시간이다. 짧은 서신들이지만 내게는 작은 경전들이다.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1985년 경국사에서 지관 스님(왼쪽 세 번째)과 대원성보살(왼쪽 네 번째), 연꽃모임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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