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라면 부처님 가르침에?
자기 삶의 중심 가치 둬야

법회시 삼귀의·사홍서원은
부처님 닮아가는 다짐이자
불자의 삶 확인하는 의식

코로나 사태 이후 변화 속
원력 추구하는 노력 절실
편리함보다 가치 추구해야

삶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그리고 그 다양함은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과 그에 따른 가치관의 다양함에 기인한다. 삶의 주체로서 우리 각자가 삶의 중심 가치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우리 스스로를 불자(佛子)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불자(佛子)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그 가르침에 의지해서 우리 삶의 중심 가치를 결정하는 이들을 말한다. ‘불자’라고 스스로 호칭하고 ‘불자’라고 불리기를 원하는 이라면, 자기 삶의 중심 가치를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에서 찾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행하고 있는 법회의식은 불자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간명하게 드러낸다. 법회의 첫머리에 두어지는 삼귀의(三歸依)와 법회의 마지막에 두어지는 사홍서원(四弘誓願)이 그것이다. 우리는 삼귀의를 통해서 부처님이 보여주신 삶의 자세와 중심 가치를 받아 지니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며, 사홍서원을 통해서 그렇게 살아가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삶에 동참하는 것이 불자임을 법회의식을 통해 각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원력에 기반한 삶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런 삶을 추구한다고 자부하기에 스스로를 ‘불자’ 곧 ‘붓다의 자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 불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하늘 위와 하늘 아래서 오직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모두 괴로우니 내가 마땅히 편안하게 하리라’는 부처님의 선언적 가르침이다. 생명 있는 것이라면, 무엇보다도 귀한 것이며, 그렇기에 그러한 존재의 ‘당연한’ 행복과 평안을 추구하고 성취하고자 하는 원력에 기반한 삶이 불자의 기본자세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의 세계는 자본주의 세계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삶의 중심 가치는 욕망의 충족이다. 아니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자본을 증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삶의 가치로 받아들여진다. 욕망의 충족을 위해 무엇보다 고귀한 생명의 가치는 노동력으로 환산된다. 그 노동력을 좀더 큰 자본 가치로 환산하기 위해 공존과 공생보다는 경쟁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매일을 악다구니처럼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 사태는 사회 전반에 걸쳐서 심각한 위기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단순히 사회시스템의 위기뿐만 아니라, 우리가 당연한 듯이 받아들였던 경쟁과 자본 가치 중심의 삶에도 경종을 울리고 있다. 

우리 불교는 지난 2500여 년간 일체의 생명있는 것들이 저마다의 가치에 따라 차별없는 고귀함을 갖추고 있다는 생명평등의 정신과, 그 고귀한 생명은 저마다 마땅히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구세주의(救世主義)적 가치관을 추구해왔다. 이것이 불교의 역사 2500여 년간 불자들이 멈추지 않고 추구해왔던 뉴노멀(New Normal)의 세계관이고 가치관이다. 

석길암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불교의 역사는 깨달음과 깨달음에 기반한 삶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의 역사라고 할 것이다. 깨달음은 생명의 소중함을 드러내는 것이고, 생명있는 것의 당위적인 행복을 드러내는 것이다. 불자는 그러한 세계와 가치에 주저함 없이 동참하는 이들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편리함을 발견하고 현실적인 이득을 발견하면, 손쉽게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외면하곤 한다. 물어보자, 저나 여러분이나 ‘불자답게’ 살고 ‘불자답게’ 살아야 하는데. 편리함과 사사로운 이익에 골몰해서 불자로서의 삶을 너무 안이하게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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