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내가 본 법정 스님 ①

“어째서 법정 스님 책을 자꾸 주느냐? 강원도에 홀로 사는 분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2006년 스승 잠언집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를 선배에게 건네고 나서 들은 말이다. 이 말이 오십 평생 일기도 쓰지 않던 내게 글을 쓰게 만들고 작가란 소리를 듣도록 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옹근 수행은 없다며 마음과 세상,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 아우르도록 일깨워온 어른한테 어떻게 이런 소리를 할 수 있지?’싶어 떨떠름했다. 그러나 곱씹어보니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사람들이 찾아오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묵은 살림을 버리고 떠나신 줄 모르는 이들은 ‘호젓이 누리려고 산에 들어가 사는 은자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함께 사는 사회 항상 강조
스승 존경조차 상낼까 거부
말한 그대로 실천모습 보여

그러나 그건 큰 오해다. 창건 초기 길상사에서 스승이 법문해야 하는 자리가 참으로 많았다. 두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정기법회와 여름 안거 겨울 안거 결제와 해제 법회가 네 차례로 이것만 더해도 열 번이다. 여기에 문화강좌와 수계법회, 템플스테이를 합치면 열서너 번을 훌쩍 넘긴다. 맑고 향기롭게 지부를 비롯해 다른 곳에서 열리는 법회나 강연을 더 하면 스무 번 가까울 때도 있었을 터이고, 맑고 향기롭게 소식지에 다달이 싣는 원고와 언론매체에 보낸 원고를 합치면 쓰신 글만도 양이 녹록지 않다. 또 이런저런 인연을 타고 오는 편지나 엽서에 하는 답장까지 하면 참으로 얽히고설킨 것이 적지 않았다.

이웃 보살피는 일이 곧 여래 받드는 일

이토록 부지런히 움직인 까닭이 어디 있을까? 스승이 아우르고 불교성전 편찬위원회에서 펴낸 〈불교성전〉에는 보현보살 10대 서원인 보현행원을 다음과 같이 담아냈다.

“법공양에는 여래의 말씀대로 수행하는 공양과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공양, 중생들을 보살펴 거두어주는 공양, 중생의 고통을 대신 받는 공양, 보살이 해야 할 일을 회피하지 않는 공양, 보리심이 떠나지 않는 공양들이 있다. …여래 말씀대로 수행함이 여래를 출현케 하는 일”

스승은 늘 “내 이웃을 보살피는 일이 곧 여래를 받드는 일이다. 이와 같은 서원과 수행이 허공계와 중생계가 없어져야 그만둘 텐데, 사실 허공이나 중생은 다 할 수 없으므로 구도자가 할 일은 끝이 없다”라면서 “보살에게는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이 곧 스스로 이롭게 하는 일이기에 이타가 곧 자리와 이어진다. 우리는 저마다 따로따로 바다 위에 떠 있는 외로운 섬이다. 그러나 화엄 거울에 비친 우리는 같은 뿌리에서 뻗어나간 가지임을 직관한다. 이웃이 겪는 일이 내게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 내 일임을 굳게 믿기에 이른다”하고 말씀했다.

또 〈홀로 사는 즐거움〉에서는 “홀로라는 낱말 자체는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는 것을 뜻한다. 당신이 홀로 일 때 비로소 세상에 살면서도 늘 아웃 사이더로 있으리라. 홀로 있을 때 완벽한 생동과 협동이 일어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디 전체적이기 때문이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지낸다고 해서 과연 ‘홀로 있음’인가.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다는 가르침은 홀로 있음의 진정한 의미 곧, 개체의 사회성을 말한다. 모든 것은 이어져 있다”라고 말씀한다.

‘홀로’라는 낱말은 물들지 않고 전체를 아우른다는 이 말씀을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다. 한참을 지나서야 가까스로 저다움을 오롯이 드러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이웃을 아우를 수 있다는 뜻이 담겼다고 헤아렸다. 누구와도 닮지 않고 저다움을 드러내 누리를 아우른 석가모니나 예수야말로 세상에 살면서도 저 언덕에 가닿은 경계인이었다는 말씀이다.

나는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다”라는 말씀을 떠올릴 때마다 부챗살이 겹친다. 세상을 품겠다며 바깥으로 나갈수록 서로 멀어지지만, 안으로 들어 저다움을 빛낼수록 서로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스승은 또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는데, 명상과 사랑”이라고 말씀했다. 명상은 여럿이 어울려 있어도 오롯이 홀로 들어가야 하지만, 얻으려는 것은 뿔뿔이 흩어진 ‘나’가 아닌 두루 어우러지는 ‘온 나’로 나아가는 길이다, 홀로 옹글 수 있어야 참답게 사랑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스승은 늘 깨어 있으면서 끊임없이 저를 바꾸어 깊어지는 것이 명상이요, 따뜻한 눈길과 끝없는 관심을 보내는 것이 사랑이라며 거듭 우리를 흔들었다.

강원도에 홀로 사는 스님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바로 이 사랑을 알리고 싶었다. 스승이 스치기만 해도 베일 것 같은 얼음 선사가 아니라 시주 은혜를 무겁게 여기는 살갑고 도타운 어른이라는 것도 드러내고 싶었다. 그래서 일기도 쓰지 않던 내가 다섯 해 동안 더듬더듬 주섬주섬 글쓰기를 해 적바림한 것이 〈법정 스님 숨결〉이다.

청법가 끝나도 법상 오르지 않은 스승

2000년 시월 정기법회. 청법가가 끝났는데도 스승이 법상에 오르지 않고 그냥 서 계셨다. 진행을 보던 나는 까닭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적막이 흐르고…. 가까스로 지난 법석에서 청법가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하신 말씀을 떠올렸다. 스승은 사자후란 사자가 뭇짐승을 제압하듯이 부처님 설법이 중생 번뇌를 없애준다는 뜻이며, 감로법이란 불사와 영생을 이르는 진리인데, 덕도 높지 않은 제가 법문하기 전에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민망하고 삼배를 받을 때마다 부끄럽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저렇게 가만히 서 계시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다가 대중을 자리에 앉도록 하여 입정에 들도록 했다. 입정을 마치고 나서야 법상에 오른 스승. 청법가를 듣기도 절을 받기도 민망하다고 하시지만, 대중은 절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 엉겁결에 나온 소리가 “스님께 삼배를 올려야 하는데 자리가 비좁아서 앉은 자리에서 비손 반배로 삼배를 하겠습니다”였다. 옹색했다. 대중이 비손 반배로 삼배를 하니 스승도 마주 받아 비손 반배로 삼배를 한다. 맞절. 법문이 끝나고 산회가가 울리기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른다. 그 뒤로 스승을 모시는 법회는 죽 그렇게 해왔다. 그리고 스무 해, 마지막 법회를 한지도 열한 해가 지난 오늘까지도, 스승 뜻을 잘 짚었는지 잘못 짚었는지 알지 못한다.

스승을 난처하게 만든 적도 여러 번, 그 가운데 하나만 꺼내면. 2003년 여름 안거 결젯날이 마침 스승의날과 겹쳤다. 길상사 식구들은 이제껏 스승에게 고맙다는 말씀 한번 제대로 드린 적이 없으니 이날 스승께 고맙다고 인사를 드리자고 뜻을 모았다.

스승이 법석에 오르자 “모처럼 스승의날과 여름 안거 결제 법회가 맞물린 소중한 날입니다. 스승의날을 맞아 이 시대 스승이신 스님께 꽃을 올리겠습니다”라며 꽃과 향을 올리고 입을 모아 스승의날 노래를 불렀다. 받은 꽃을 부처님 전에 올리고 난 스승은 “왜 하지 않던 짓을 하느냐. 이 시대 스승이라니 당치도 않다”라며 도리질하셨다. 듣고 보니 참으로 부끄러웠다. 어떻게 스승이 서 계시는 데 “이 시대 스승”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을까. 생각이 짧아도 한참 짧았다.

말하고 들음이 서로 오가야 좋은 법회

이런 아둔함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그러셨을까? 한 달쯤 지나서 추적추적 장맛비가 내리는 유월 정기법회, 스승은 이런 말씀을 한다.

“저는 대중 법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한 사람 한 사람 마주 바라보면서 묻고 답하며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 그립습니다. 진정 좋은 법회라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주고받아야 합니다. 침묵 속에서 마주 바라보고, 서로 귀 기울이며, 같이 느끼면서 있는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라야 진정한 만남이나 모이는 의미가 새록새록 싹틀 것입니다. 오늘 제가 법회에 나오면서 생각하는 바가 있어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언젠가 시절 인연이 오면 그런 모임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나 지났을까. 거사림 회장이 전화해서 스승 법회 사회를 봐달라고 한다. 이달에는 스승 법회가 없는데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되물었다. 스승께서 거사림 가운데 열성을 보이는 몇 사람과 법담을 나누려고 하니 자리를 마련하라고 하셨단다. 지난번 말씀을 떠올리고는 소참 법문에 무슨 사회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이 뜻깊은 자리를 어떻게 우리만 누릴 수 있겠느냐며 거사림만이 아니라 보현회를 비롯해 절에 나와 힘을 보태는 이들에게 다 연락을 했으니 백여 명을 웃돌 것이라고 했다. 마음결이 고운 이다운 생각이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거친 말을 퍼부었다. “아니, 회장님.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요? 스승 마음을 그렇게 헤아리지 못해요? 스승은 이번 법담을 시작으로 거사림 뿐 아니라 보현회, 합창단을 비롯해 절에 나와 애쓰는 이들과도 거듭해서 깜냥에 맞는 말씀을 나누려고 그러시는 것이잖소. 그런데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다니…, 저는 못 갑니다. 낯부끄러워 어찌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겠소.”

뒤에 들으니 사람들이 설법전이 꽉 차도록 모였다고 한다. 묻고 답하는 소참 법문 틀에 따라 처음 나온 물음이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이었다. 이 물음에 스승은 “해인명!” 하고 보현회 보살 가운데 한 분을 불렀다. 문밖에서 대중에게 올릴 다과를 준비하던 해인명 보살이 “네!” 하고 대답을 하면서 뻥튀기에 놓인 귤과 과자를 손에 든 채 문 안으로 들어서자, 스승은 “저렇게 하면 됩니다”라고 하셨단다. 어긋난 사랑 탓이었을까, 아쉬운 물음 때문이었을까? 시주 은혜를 여법하게 되돌리려고 내디딘 스승 발걸음은 이어지지 않았다. 주어진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다음은 없다. 크게 얻은 것도 있다. 이번 일로 해서 어떤 말씀이든지 말머리를 꺼낸 스승은 반드시 잇따라 그 말씀 결대로 하신다는 것을 뚜렷이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큰 소득이다. 그렇더라도 입맛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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