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불교와 미얀마 언어
어릴 때부터 빨리어 경전 접해
항상 듣고 따라하며 삶에 습합
상당수 용어가 불교에서 유래
당황스러운 순간 말하는 ‘둑카!’
불교에서 ‘苦’의 의미 담겨있어

미얀마어로 적힌 경전의 모습.

평생을 살면서 우리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모국어를 잊을 일이 없다. 모국어는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들으면서 구사하게 된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 간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통된 내적인 사고가 형성되며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언어의 중요성은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인 일제강점기 시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우리민족의 정신을 말살시키기 위해 철저한 일본어 사용을 강조했고 한국어를 사용하지 못 하게 했다. 민족성을 말살 당하지 않기 위해 무수히 노력했던 우리 선조들이 있기에 ‘한국의 얼’을 지킬 수 있었고, 우리의 정신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로마의 카롤루스 대제는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두 개의 영혼을 소유하는 것과 같다’라고 했다. 카롤루스 대제의 말을 통해 언어가 우리의 사고와 가치관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파악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언어가 구성될 때는 다양한 환경과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나라 한글 같은 경우에도 세종대왕의 혼자만의 힘으로만 만들어 지지 않았고, 조선시대의 문화로만 형성된 것도 아니다. 조선시대 이전의 고려시대, 그리고 그 이전시대의 문화들이 축적되고 융합되면서 한글 속에 포함되어 우리의 단어로 남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이었지만,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한글에는 일상생활 속 단어 중 불교에서 유래한 한글단어가 많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현관(玄關)·단도직입(單刀直入)·대중(大衆)·여실(如實)·나락(那落)’·주인공(主人公)’과도 같은 단어가 불교에서 유래된 단어다. 이 단어 이외에도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불교의 가치관이 담긴 단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조선 시대 이후 불교 색이 과거보다 많이 옅어진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불교용어가 우리 삶에 자주 쓰인다. 그렇다면, 현재까지도 ‘황금의 나라, 불교의 나라’라고 불리는 미얀마의 언어도 우리처럼 불교에 많은 영향을 받았을까?

요람에서 무덤까지…빨리어는 내 운명

나에게는 미얀마 룸메이트 언니 2명이 있다. 미얀마 언니 한 명은 버마족이면서 불자이고, 다른 언니 한 명은 꺼인족이고 크리스찬이다. 우리 셋이 같이 쓰는 한 방은 잠자리에 들기 전 다양한 경전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진다. 버마족 언니는 빨리 어로 된 경전을 암송하고, 나는 〈지장경〉을 읽고, 꺼인족 언니는 성경을 읽으며 각자 기도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미얀마에 와서 빨리어를 배우지만, 쉽지 않았던 나에게 빨리어 경전을 암송하는 버마족 언니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어느 날 언니에게 박사과정이라는 자존심을 버리고 빨리어 비법을 물어봤는데, 돌아온 답변이 더 충격이었다.
‘난 빨리어 영어로 되어 있으면 못 읽어, 미얀마어로 적혀진 것만 읽고 공부를 따로 한 적은 없어. 아기 때부터 부모님이 늘 빨리어 경전을 읽어 주셨고, 스님에게 5살 때부터 경전을 배우고 그때 외운 기억이 35년이 지난 지금에도 유효해’라는 언니의 답변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반야심경 외우는 것도 힘들었던 시절이 떠오르면서, 빨리어를 외우는 미얀마 사람들의 불심에 다시 한번 놀랐다. 미얀마 사람들은 빨리어 교육을 따로 받지 않아도, 어릴 때부터 듣고 외운 빨리어 경전은 매일 암송하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잊을 일이 없다. 또 한 번 놀란 것은 기독교인 꺼인족 언니가 빨리어 단어를 자유자재로 쓰는 것에 매우 놀랐는데, 알고 보니 그만큼 미얀마어 단어 자체가 빨리어를 차용 혹은 변형 시켜 사용하기 때문이다.

미얀마 언어는 미얀마어, 버마어라고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미얀마는 우리나라와 달리 약 135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소수민족은 각자의 언어가 있지만, 미얀마어는 자신이 속한 민족 언어만큼 필수로 배운다. 미얀마어는 장면어족(藏緬語族, Tibeto-Burman language group)에 속하며, 몬족(Mon)언어에서 유래했으며 글자는 브라미(Brahmi)에 기원을 두고 있다. 33개의 자음과 7개의 단모음과 이중모음, 복합문자, 독립 모음 문자로 구성되어 있다. 미얀마어가 빨리어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미얀마 왕조의 불심(佛心)이 큰 역할을 했다.

미얀마 산다무니 파고다에 조성된 경전비문. 대리석판에 경구가 새겨져 있다.

미얀마 전역으로 상좌부 불교가 퍼지게 된 것은 바간 왕조시대 때이다. 왕들은 불가(佛家)의 든든한 후원자였는데, 그 중 빨리어 경전을 미얀마어로 역경하는 과정을 중시했다. 역경뿐만 아니라 미얀마 승가는 백성들에게 빨리어 경전과 미얀마어를 함께 가르쳤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빨리어 단어가 미얀마어로 많이 차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미얀마 문학의 첫 시작도 불교문학(佛敎文學)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의 미얀마 문학은 자타카(Jataka)를 기반으로 하여 많은 문학작품을 저술했고 주요 창작층도 승가가 담당했다. 이러한 영향이 19세기까지 이어져, 미얀마 문학은 20세기가 되어서야 다른 종류의 문학이 유입되었다. 불교 경전을 암송하는 것을 넘어, 일상생활 속의 말 그리고 문학작품까지 미얀마 사람들은 불교의 가치관과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밍글라바’ 인사도 경전이름서 유래

미얀마 사람들을 만나면 ‘밍글라바(Minglaba)’라는 인사말을 듣게 된다. ‘밍글라(Mingla)’라는 말은 우리나라에 〈길상경(吉祥經)〉으로 잘 알려진 〈Ma?gala Sutta〉의 Ma?gala에서 유래했다. 처음 사람을 만나 안부를 묻고, 인사를 하는 ‘안녕’이라는 말부터 불교경전에서 유래했다. 어느 나라나 ‘행복과 즐거움’에 큰 가치를 두지만, 미얀마 사람들은 특히 일상생활 속에서도 작은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타이트하게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타이트하게 일 하지 않으면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미얀마 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 간의 노사분규가 존재한다. 행복이라는 말도 빨리어 ‘Sukha(즐거움, 행복감)’이라는 단어를 쓴다.

미얀마 사람들은 삼독(三毒)이 강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를 물었더니 “부처님께서 삼독이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고 했어”라며 30분 넘는 불교 강의를 해준 친구가 기억이 남는다. 탐욕은 ‘Lobha’, 화는 ‘Dosa’, 어리석음은 ‘Moha’라는 빨리어 용어를 그대로 미얀마 말로 쓴다. 일상생활 속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당황스럽거나, 예기치 못한 일이 닥쳐서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둑카!’라고 말하는 미얀마 사람들을 많이 봤다. 맨 처음에는 ‘어려움에 직면할 때 쓰는 감탄사인가?’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빨리어에서 ‘고(苦)’를 의미하는 단어가 미얀마어의 감탄사로 굳어진 것이다.

미얀마 사람들은 아무리 사이가 나쁜 사람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을 이해해주고 자비의 마음을 베푸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얀마 사람들과 헤어질 때, 혹은 어떤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있는 미얀마 사람에게 ‘메타 뽀뻬메(Metta po pay me:자비를 보낼께요)’라는 말을 하면 아주 행복한 미소를 짓는 미얀마 사람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미얀마에서 메타(Metta:자비)라는 단어는 안 좋은 상황에서 나쁜 말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쓰인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기사님 잘못이 아니라 자기 잘못으로 차에 치일 뻔 했을 때 ‘기사님은 나에게 메타 보내겠네!’라고 쓰인다. 또한 다른 사람이 자기로 인해 피해를 받는 상황에서도 쓰인다. ‘내가 새벽5시부터 팝송을 크게 틀어 놓아서 옆집 사람들이 메타(자비) 보내겠다!’라고 쓰인다.

빨리어 불교 용어가 미얀마어로 차용되거나 변형되어 생활 곳곳에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한 나라의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와 정신이 깃들어 있다. 불교를 믿지 않는 미얀마 사람들도 늘 사용하는 미얀마어를 통해 불교적 가치관과 정신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135개 소수민족이 살아가는 미얀마에 분단이 없는 것이 아닐까? 언어에 깃든 문화와 정신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해야 우리는 비로소 다른 나라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현대불교 독자 여러분에게도 “메타 뽀뻬메(Metta po pay me)!” <양곤대 박사과정>

〈Ma?gala Sutta〉 미얀마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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