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남북조 시기 불성론

‘佛性’ 등장, 中불교 새 국면
“누구나 정진수행하면 成佛”
중국선종 탄생 결정적 역할
남북조시기 ‘불성’ 사회이슈

경전에서 말하고 있는 ‘불성은 도대체 인성인가 아닌가’에 대한 문제는 중국 남북조 시대의 사회 및 정치문제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남북조에 유행한 사부경(유마ㆍ열반ㆍ법화ㆍ화엄), 삼부론(섭대승론ㆍ십지경론ㆍ대승기신론)의 중요한 의제는 모두 불성에 관한 문제이다. 성불은 과연 현세인가 아니면 미래인가, 만약에 ‘불성’이 있다면 ‘본유(本有)인가 시유(始有)인가?’의 문제였으며, 만약에 성불을 한다면 타력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자력인가 등의 문제도 포함 되었다.

남북조에서 발생된 불성론에 관한 논쟁은 위진 시기의 ‘반야공성’이 유행한 후에 출현하기 시작했다. 불성의 문제가 전개된 것은 중국불교의 새로운 발전 단계를 나타내는 증표이기도 하다. 이점은 불교 내부 교리에 대한 새로운 사상적 발견이자 논리의 탄생이기도 하지만, 그 배후에는 당시 사회의 계급제도와 깊은 연관성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인도의 유가행파가 주장한 불성에 대한 ‘오종설’은 당시 인도사회의 계급제도를 반영했던 것과 유사점이 있다. 중국에서 한말 이래로 세족문벌제도(世族門閥制度)가 형성됐는데 이러한 제도의 요점은 바로 문벌 출신의 지위가 높고 낮음에 따라서 사회적인 지위 및 그에 수반되는 일체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른바 “상품무한문(上品無寒門ㆍ상품은 가난이 없다), 하품무세가(下品無世家ㆍ하품은 세가가 없다)”라는 것으로 이것은 정치 제도와도 맞물려 있다. 남북조시기에 이 문벌사족제도의 발전은 이미 교착상태에 빠진 정치 제도였다. 비단 사람들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지위 등 모두 문벌사족 출신들에 의해서 결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사람들의 재능 및 인품의 우열조차도 모두 문벌사족출신들이 표준이 되었으며, 이러한 사회의 전반적인 모든 것은 역시 이들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이들은 모두 어떠한 노력에 의한 결과가 아닌 선천적으로 나면서부터 특권을 가진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불성론의 논쟁은 바로 이러한 모순된 사회배경을 무대로 출현하게 되었고, 이러한 정치제도 및 사회적 제도 하에서 볼 때, 불성론은 매우 파격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릴 것 없이 모두 불성을 소유하고 있으며, 누구나 열심히 수련하고 노력한다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은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설사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사상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특히 불성의 관점에서 보면 성인과 범부가 차이가 없고, 더욱이 불성의 본질적인 입장에서 보면 모든 사람들은 대등한 존재로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 계급적인 사회제도가 가지고 있는 불평등 내지 불합리성을 한순간에 타파한 것이 바로 불성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림, 강병호

 

잠시 당시 중국사회에 만연했던 고유한 사상적 관습 및 관념을 살펴보면 더욱 극명해진다. 맹자는 전국시대의 경험에 입각해서 각국의 흥망성쇠와 혼란스러움을 다스릴 수 있는 규율을 총괄해서 제시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인정설(仁政說)이다. 그의 인정설은 이민위본(以民욇本ㆍ백성이 근본이 된다)으로, 민본사상의 주요한 명구인 “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民욇貴,社稷次之,君욇輕)”을 제시했다. 이 뜻은 백성이 우선이고 다음이 국가이고 군주는 최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백성과 사직에 비하면 군주의 위치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사직은 국가 존재의 기본 바탕이 되고, 군주의 지위 및 권력은 백성들이 부여해 준 것이기 때문에 백성이 없으면 군주도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군주는 응당히 백성을 보호하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하며, 또한 위정자는 백성의 기본 권리를 보장해야 하고, 만약에 백성을 생각하지 않는 군주가 있다면 백성은 그 정권을 무너뜨릴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곧 이 내용은 군주가 백성을 어떻게 대하고 다스려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로서 국가의 흥망에도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 그는 민심의 향배를 매우 중시하면서 역사를 반추해서 반복적으로 일어난 사건과 사례들을 인용해서 득천하(得天下)와 실천하(失天下)에 대한 문제를 논했다. 비록 맹자는 공자의 덕치(德治)사상을 계승발전해 인정(仁政)설을 발전시켜, 곧 이덕복인(以德服人)으로 그의 정치사상에 핵심을 삼기도 했지만, 사실 맹자의 정치론인 인정설은 곧 왕도설로서 본질은 봉건정치계급의 봉사를 위한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육체노동자와 정신적인 노동자를 구분해서, 육체적인 노동자는 군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이와 같이 당시 사회는 여전히 불평등한 관습 및 관념의 사회적 제도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었다.

이와 같이 이러한 고유한 사상이 주류가 되어서 긴 시간 동안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차에 ‘일체중생개유불성’이라는 사상적 모토는 분명 어떤 부류(대부분 하층민)의 사람들에게는 경이로움이자 파격적인 소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 후 이 불성론이라는 사상적 개념은 중국선종을 탄생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동시에 선종의 양대 사상의 한 축을 이루는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일체중생개유불성’이라는 사상은 당시 전쟁이 잦은 불안정한 사회에서 하나의 빛이 되어 주었고, 새로운 삶으로 인도해준 길잡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초기선종의 형성과 성립과정 및 구성원을 살펴보면 그 해답은 더욱 더 선명해 진다.

따라서 남북조시기로 접어들면서 불성에 관한 연구는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동시에 불성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성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의 관점이 모두 일치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대반열반경〉의 전후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번역본을 의지하다보니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 이때 각기 다른 관점으로 불성을 바라보다보니 명칭도 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 양상이 나타났다. 길장은 〈대승현의(大乘玄義)〉에서 말하기를 “경 가운데는 불성, 법성, 진여, 실제, 등의 이름을 밝히고 있는데, 모두 불성의 이명이다. 왜냐하면 〈열반경〉에서 스스로 불성에는 여러 가지의 명칭이 있다고 설하고 있다. 하나의 불성 이름이 법성열반이며, 이름이 반야일승이며, 이름이 수능엄삼매(首楞嚴三昧) 사자후삼매(師子吼三昧)이다. 고로 알라 성현은 근기를 따라서 방편을 쓰기 때문이다. 모든 경 가운데 설한 이름이 같지 않다. 고로 〈열반경〉에서 이름은 불성이 되고, 〈화엄경〉에서 이름은 법계가 되고, 〈승만경〉에서 이름은 여래장자성청정이 되고, 〈능가경〉에서 이름은 팔식이 되고, 〈수능엄경〉에서 이름은 수능엄삼매가 되고, 〈법화경〉에서 이름은 일도일승(一道一乘)이 되고, 대품에서는 이름이 반야법성이 되고, 〈유마경〉에서는 이름이 무주실제(無住實際)가 된다. 이와 같은 명칭은 모두 불성의 이명이 된다.”고 적고 있다.

당시 불성에 대한 관점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가 있는데, 먼저 남도(南道)는 법성, 진여 등을 의지해서 불성이 본유(本有)에 가깝다고 보았고, 북도(北道)는 아뢰야식을 의지해서 무루종자가 새롭게 훈습을 기다리는 것이 있기 때문에 불성은 시유(始有)와 상통한다고 보았다.

길장은 〈대승현론(大乘玄論)〉에서 삼론종의 중도사상을 가지고 불법을 논증하면서, 당시 많은 불성론의 연구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정리한 것이 있다. 대체로 11가설이 있었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고래로 서로 전해서 해석한 불성이 같지 않다. … 제1가는 중생으로서 정인불성(正因佛性)을 삼았다. 일체중생은 모두 불성을 구비했으며, 정인(正因)은 모든 중생을 말한다. 곧 중생이 정인불성이 된다. 제2가는 육법(六法)으로 정인불성을 삼았다. 육법은 오음(五陰)과 가인(假人)을 말한다. 즉 오음과 사람을 육법이라고 한다. 곧 육법이 정인불성이 된다. 제3가는 심으로서 정인불성을 삼았다. 무릇 마음이 있으면 반드시 무상보리를 얻는다. 심식은 목석무정지물과는 다르다. 갈고 닦으면 반드시 성불한다. 곧 심이 정인불성이 된다. 제4가는 명전불휴(冥傳不朽)한 것으로 정인불성을 삼는다. 이것은 앞전에 심으로서 정인을 삼는다는 것과는 다른 해석이다. 바로 신식(神識)에 명전불휴(冥傳不朽之性)의 성이 있다는 것을 밝힌 것으로, 곧 이것을 써서 정인이 된다는 것이다. 제5가는 고를 피하고 낙을 구하는 것으로써 정인불성을 삼는다. 일체중생은 고를 피하고 낙을 구하는 성(性)이 있다. 경에서 말하기를 만약에 여래장이 없으면, 고락을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때문에 피고구락(避苦求樂)이 정인불성이 된다. 제6가는 진신(廬神)으로 정인불성을 삼는다. 만약에 진신이 없으면, 진불(眞佛)을 이룰 수가 없다. 고로 진신(廬神)은 정인불성이 된다. 제7가는 아뢰야식자성청정심(阿梨耶識自性헌淨心)으로서 정인불성을 삼는다. 제8가는 당과(當果ㆍ當來之果)로서 정인불성을 삼는다. 일체중생은 모두 불성이 있기 때문에 당래에 반드시 모두 성불한다는 것이다. 제9가는 득불의 이치(得佛之理)로서 정인불성을 삼는다. 제10가는 진제(廬諦)로써 정인불성을 삼는다. 제11가는 제일의공(第一義空)으로서 정인불성을 삼는다. 고로 경에 이르기를 불성의 이름이 제일의공이다. 고로 제일의공은 정인불성이 된다”고 했다. 여기서 길장은 제1가와 제2가는 거의 비슷하다고 보았다. 일체중생은 오온으로 화합되어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육법으로서 정인을 삼는다는 모두 사람을 세워서 설한 것이고, 또 단지 사람을 보는 각도가 다를 뿐 뜻은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한 종류가 된다는 것이다. 제3가부터 제7가까지도 역시 동류로 보았다. 곧 심의 본체는 곧 불성이며, 심의 작용을 불성이라고 할 때, 모두 심을 불성이라고 보기 때문에 모두 동류라는 것이다. 제8가에서 11가까지는 모두 성불의 이치에서 불성을 분석한 것이라고 해서 동류에 포함시켰다.

이와 마찬 가지로 여러 가지의 이유로 인해서 남북조시기에는 불성문제가 사회적인 이슈이자 토론 거리가 되었다. 이후 불성론 선종사에서 그야말로 매순간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선종사에 이론적 사상적으로 많은 조도 역할 및 선종의 사상을 빛내는 임무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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