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구차제정(九次第定)

범부가 생사왕래하는 세계, 곧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삼계고(三界苦)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구차제정[九次第定ㆍ아홉 단계의 정(定)]을 닦아야 한다.

음욕(?欲)과 식욕(食欲)을 주로하고 그 외의 욕심들로 가득 찬 욕계를 떠나 색계에 이르려면 4선(禪)을 닦아야 하고, 욕심은 없지만 정묘한 물질의 장애가 있는 색계를 벗어나 무색계에 이르려면 4무색정(無色定)을 닦아야 한다. 그리고 물질이 없지만 심식(心識)이 있는 무색계를 벗어나려면 멸진정[滅盡定ㆍ滅受想定]을 닦는다.

구차제정 중 4선·4무색정의 8정(定)은 정도(正道)와 외도(外道) 모두 닦지만, 멸진정은 정도인 불교에서만 닦는다. 여기서의 4선은 붓다께서 대각을 이루실 때 닦은 근본4선이고, 사라쌍수 아래에서 반열반에 드실 때에는 초선에서 비상비비상처정까지 4선·4무색정을 차례로 올라갔다가, 비상비비상처정에서 초선까지 차례로 내려와, 다시 초선에서 순차로 제4선을 거쳐 입멸하셨다.

4선 중의 초선은 이생희락지(離生喜樂地)라고도 하며, 곧 욕계의 이생[異生ㆍ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곧 범부(凡夫)]이 지닌 욕망과 악과 불선법(不善법)을 떠나 언어가 멸(滅)하고, 각관[覺觀ㆍ심사(尋伺), 심(尋)은 개괄적으로 사유하는 마음 작용, 사(伺)는 세밀하게 고찰하는 마음 작용]의 사고작용[想]이 있고, 기쁨[喜]과 즐거움[樂]을 느끼는 경지에 머물며, 색계 초선천에 해당한다. 여기에 일심(一心)을 더해 5지(支)를 갖추고 있다. 초선에서 몸에는 팔촉(八觸), 곧 떨림[動觸], 가려움[?觸], 가벼움[輕觸], 무거움[重觸], 차가움[冷觸], 뜨거움[暖觸], 껄끄러움[?觸], 미끄러움[滑觸]의 느낌이 생긴다.

초선에서 제2선[정생희락지(定生喜樂地)]으로 들어가면, 각관이 쉬어지고, 내밀한 고요한 평화인 내정(內靜)과 삼매에서 얻어지는 희락과 일심의 4지를 갖춘 경지에 머물며, 색계2선천에 해당한다. 제2선에서 제3선[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으로 들어가면, 기쁨의 욕망[喜欲]을 여의고, 평등[捨]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정념(正念)과 정지(正智)로 몸에 묘한 즐거움[樂]을 깨닫는다. 이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등[捨] 마음챙김[念] 지혜[慧] 즐거움[樂]에 머무는 것이다. 여기에 일심까지 5지를 갖추며, 색계 3선천에 해당한다.

제4선정[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에서는 출입식(出入息)이 적멸하고, 고락을 다 떠나고[不苦不樂] 평정[捨]과 순수한 알아차림[念]과 일심의 4지가 갖추어 있고, 색계 제4선천에 해당한다. 이어서 4무색정의 첫 번째인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에 들어간다.

“또한 여러분, 비구는 일체의 물질[色]이라는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멸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한량없는 공(空)으로 들어가 이 한량없는 공처를 성취하여 노닙니다. 이 때 그의 식(識)이 공지미[空智味ㆍ공지의 맛]에 집착하지 않아 그것에 의지하거나 머물지 않으며, 그것을 인연하거나 묶이지 않으면, 그 식은 안에 머물게 됩니다.”

그후 일체의 한량없는 공처를 넘어 한량없는 식으로 들어가고 이 한량없는 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識無邊處定]. 그 후 일체의 한량없는 식처를 벗어나 무소유로 들어가고 이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노닌다[無所有處定].

“비구는 일체의 무소유처를 넘어 비유상비무상으로 들어가고 이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닙니다. 이 때 그의 식이 무상의 지혜[無想智]의 맛에 집착하지 않아 그것에 의지하거나 머물지 않으며, 그것을 인연하거나 묶이지 않으면 그 식은 안에 머물게 됩니다.”

그 후 비상비비상처의 차원을 초월해서 생각과 감수(感受)가 없는 선정[想受滅定]에 들어가 머문다. 그리고 이해를 통한 통찰을 얻으면 번뇌가 사라진 구차제정의 성취에 들고 또 그로부터 벗어났을 때, 최고의 통찰[지혜]을 얻었음을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 그것[최고의 지혜]은 어떤 신이나 인간도 능가할 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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