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근본선(根本禪)

“(싯달타는) 스물아홉의 꽃다운 젊은 나이에, 아름다운 아내 야소다라가 그의 하나뿐인 아들 라훌라를 낳은 바로 그 밤에 아내와 아들, 아버지 그리고 권력과 영광을 약속하는 왕좌를 박차고, 가슴 미어지는 이별을 (몰래) 고하였다. 그리하여 인생의 영원한 진리, 속박을 벗어난 지극한 안락인 열반을 구하고자 숲속의 고독한 고행자가 되기로 하였다.” 〈The Buddha’s Ancient Path By PIYADASSI THERA 에서 번역〉

위대한 출가의 길에 오른 싯달타는 인생고(人生苦) 해탈법을 발견코자 헌신하며, 당시 선(禪)의 대가인 알라라 칼라마(Alara Kalama)와 웃다카 라마푸타(Uddaka Ramaputta)에게 해탈의 방법을 배우고자 하였다. 곧 스승들과 같은 경지인 무소유처정과 비상비비상처정에 도달하였으나, 이것들은 생사해탈의 궁극의 깨달음이 아니었으므로 스승을 떠나 홀로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가야[지금의 보드가야]의 네란자라강가의 우루벨라에 이르렀다. 우루벨라는 고요한 우거진 숲인데다 맑은 강물까지 있어, 생사해탈을 위한 수행을 지속하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콘다냐를 비롯한 5명의 도반들과, 당시 인도에서 해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었던 고행을 시작하였다. 몸을 괴롭혀 조복 받아 몸의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한 것이다. 극소량의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누더기를 걸치고, 가시덤불이나 무덤 사이에서 잠을 청했다. 극렬한 고행의 결과 남겨진 것은 극심한 영양결핍으로 인해 마른 갈대처럼 야위고 부서져가는 몸뿐이었다. 이렇게 6년을 보낸 후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으나 생사해탈의 목표에는 조금도 가까이 가지 못하였다.

고행이 무용함을 경험으로 체득한 그는 목표에 이를 수 있는 새 길을 모색하였다. 그때에, 어릴 때 봄에 부왕의 선농제(先農祭)에 따라갔다가 자신을 돌보던 시녀들도 구경에 팔려 곁을 비우고, 홀로 갯복숭아나무 아래에서 평안한 명상에 젖었던 기억이 났고, 그 길이 정각(正覺)의 길임을 확신하였다.

극단적 고행과 단식으로 죽음에 이를 지경으로 쇠약해진 몸으로는 더 이상 정진이 불가능하므로, 수자타의 유미죽으로 건강을 회복하였고, 다섯 동료는 싯달타가 고행을 깨고 타락했다고 여겨 실망해 떠나갔다.

초동(樵童) 소띠야에게 쿠사[길상초] 8다발을 얻어 펴고, 피팔라 나무[pippala tree. 후에 ‘깨달음의 나무’, ‘보리수(菩提樹)’로 부름] 아래서 동쪽을 향해 결가부좌하고 앉았다. 스승 및 동료 없이 온전히 홀로인 이곳은 감각 자극을 벗어날 수 있고 마음을 고무시키기에 적절한 곳이었다. 그는 불퇴전의 결단으로 마지막 힘을 쏟아 정진에 몰입하였다.

“피와 살이 다 마르고, 뼈와 가죽과 힘줄만 남을 지라도,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 Pali samma-sam-bodhi]을 얻기 전에는 결단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The Buddha’s Ancient Path By PIYADASSI THERA에서 번역〉

어릴 때 경험했던 입출식념[入出息念. 호흡을 대상으로 한 마음챙김]에 전념하여 초선(初禪)에 들어가 거기에 머물렀고, 차례대로 제2선 제3선 그리고 제4선에 들어가 머물렀다. 이와 같이 오염된 마음을 닦아내고, 평온한 마음을 과거생의 기억을 떠올리는 숙주수념지[宿住隨念智. 宿命通]로 향해 저녁(오후 6시~10시)에 숙명통을 얻었다. 다시 마음을 사생지[死生智, 天眼通]로 향해, 모든 중생의 업보에 따른 윤회를 살펴, 한밤중(오후 10시~오전 2시)에 천안통을 얻었다. 그리고 번뇌를 소멸시키는 누진지[漏盡智. 漏盡通]로 향해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제(四諦)를 깨닫고, 욕루[欲漏. 관능적 쾌락의 번뇌], 유루[有漏. (무엇이 되고자 하여 끌어당기는) 애착의 번뇌], 무명루[無明漏. 무지무명의 번뇌]의 삼루(三漏)를 새벽녘(새벽2시~6시)에 벗어났다. 이와 같이 사선(四禪)의 방법을 통해 깨달았으므로, 이를 근본선(根本禪) 또는 근본사선(根本四禪)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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