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0일 서울대병원 빈소 조문
종단 교역직 스님 30여명도 동행

실종됐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연을 접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불교계도 충격에 휩싸였다. 생전 불자였던 고인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추모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이 7월 10일 오후 1시경 서울대병원 장예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조계종 포교원장 지홍, 총무부장 금곡, 호법부장 성효, 재무부장 탄하 스님을 비롯한 교역직 스님 30여명도 함께 고인을 추모했다.

원행 스님과 스님들은 고인의 영정 앞에 묵념하고 헌화에 이어 반야심경 독경으로 죽은 자와 산 자를 위로했다. 유족들은 눈물로 스님들을 맞았다. 강난희 여사는 원행 스님에게 합장하며 연신 “죄송하다”며 오열했고 스님은 “죄송할 것 없고 마음을 잘 추스르시라”고 위로했다.

원행 스님은 조문을 마치고 나오며 “애도하는 마음이 끝이 없다. 황망하게 떠난 고인의 극락왕생을 발원한다”고 재차 추모의 뜻을 전했다. 스님은 특히 “고인의 죽음이 우리사회에 또 다른 성찰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며 “모두가 참회하는 마음으로 장례가 원만하게 치러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모든 분에 죄송하다" 마지막 말 남겨

고인은 7월 9일 오전 공관을 나선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 5시 17분경 박 시장의 딸이 "아버지가 유언 같은 이상한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간 뒤 지금까지 전화기가 꺼져 있다"며 112에 신고했다. 실종신고 접수 이후 경찰과 소방당국이 6시간여 동안 북악산 일대를 수색, 7월 10일 오전 0시 1분경 서울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고인을 발견했다.

고인은 공관을 나서기 전 남긴 유서에서 "모든 분들에게 죄송하다"며 "내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는 유언을 남겼다. 또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며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 모두 안녕"이라고 했다.

고인은 지난 30여년간 대표적 인권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로 이름을 알렸다. 서울시장 후보에 나서기 전까지 시민을 위한 싱크탱크 ‘희망제작소’를 설립했으며 고인이 주도한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는 새로운 기부, 나눔운동의 지평을 열었단 평가를 받았다. 서울 강남 봉은사를 비롯한 사찰 곳곳에도 한때 아름다운가게가 자리해 불자들이 자연스럽게 나눔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불자 강조 안했지만, 가르침 실천 곳곳에 

고인은 불자임을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불교 가르침 실천에도 적극 나섰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불교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고, 1971년 경기고 재학 중 서울지역 10개 고교 연합으로 결성된 룸비니학생회에 가입해 신행활동을 시작했다. 학생운동으로 구속됐을 때는 헤르만 헤세의 ‘시타르타’를 읽고 “물질과 명예보다는 영혼이 풍요로운 사람이 되겠다"는 발원을 세웠던 고인은 불교계 안밖에서 많은 일을 도왔다. 1994년 조계종 종단개혁 당시 법률 고문을 맡았으며, 2001년 4월 불교계 생명나눔실천본부에서 장기와 안구기증 희망등록을 정치계 최초로 하였다. 또 마가 스님이 고시생들의 마음쉼터로 노량진에 개소한 ‘마음충전소’를 자주 찾아 불자인 부인 강난희 여사와 주먹밥 보시 등 봉사활동도 꾸준히 이어왔다. 

이 같은 공로로 지난해 11월 제1회 생명나눔대상을 받았으며 2006년에는 만해대상과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 부분, 2009년 불교인권상도 수상했다.

평소 본인의 불교에 대한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전통문화 전승에 대한 지원 등을 아끼지 않았던 고인의 급작스런 별세에서 불교계 안밖에서 안타까움과 애석함을 표하는 이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송지희?노덕현 기자 jh35@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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