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의 삶, ‘맑고 향기롭게’
팔정도의 삶, ‘맑고 향기롭게’
  • 변택주 작가
  • 승인 2020.07.06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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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법정 스님의 살림살이
법정 스님 다비식 운구 행렬 모습. 꽃상여 등 장식을 제하고 수수한 모습으로 마지막 가는 길을 당부하셨다. 현대불교자료사진

 

“고고하고 향기롭게 살다간 법정 스님은 연꽃보다는 난초에 견줘야 하지 않겠느냐.”

2012년 도법 스님이 법정 스님과 인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한 말씀으로, 존경하더라도 비판할 일이 있으면 비판해야 한다고 하면서 내놓은 말씀이다.

작은 몸짓 큰 살림 구성
행보리심으로 사랑 전달
코로나 어려움 극복하자

“이제,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이 남긴 무소유 환상에서 벗어나야 해요. 한국불교는 대승불교다. 대승불교 세계관과 정신에서 나온 불교인 상이 보살인데, 보살 상징이 연꽃입니다. 연꽃은 피고름이 뒤범벅된 진흙탕에 뿌리내리고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피워내면서도 더럽혀지지 않고 외려 둘레를 맑힙니다. 그러나 고고하고 향기롭게 살다간 법정 스님은 연꽃보다는 난초에 견줘야 하지 않을까요.”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을 한 달 미뤄 윤사월초파일에 치렀다. 창원에 있는 37번째 꼬마평화도서관(청보리책방)에서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법정 스님이 나눈 평화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해서 다녀왔다. 온 사람들은 천주교와 개신교 그리고 무신론자들이었다. 이야기를 열면서 법정 스님하면 무엇이 떠오르느냐고 물었다. 맨 앞에서 가장 먼저 손을 번쩍 든 분이 “1970년대에 민주화 운동을 한 어른”이라고 말한다. 뭉클했다.

이처럼 스승은 숨어 사는 수행자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맞닥뜨린 문제에 팔 걷어 부치고 나서서 풀려고 힘쓰다 가신 어른이다.

“즉시현금갱무시절(卽時現今更無時節)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다른 때가 있지 않다.”

스승이 좋아하셔서 벽에 걸어놓고 음미하셨다는 이 말씀처럼, 스승은 그때그때 부딪치는 문제를 미뤄두지 않고 바로바로 풀어냈다.

스승이 해인사 선원에 있을 때, 장경각에서 나오는 아주머니 한 분이 대장경판이 어디에 있느냐면서 빨래판 같은 걸 가리키느냐고 묻는다. 이 소리에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도 알아볼 수 없다면 빨래판만도 못할 수도 있겠구나.’하고 깨닫고는, 바로 불교사전을 비롯한 우리말 <불교성전>과 <숫타니파타>와 같은 경전을 우리말로 풀어냈다. 그러는 한편 샘터를 비롯한 매체에 결 고운 우리말이 살아나는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부처님 뜻을 여느 사람들이 쓰는 말로 널리 알렸다. 덕분에 나와 같은 이도 불교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

사회 문제도 마찬가지. 나서서 민주화 운동을 하고, 민주화 운동을 그만두고 난 뒤에도 꾸준히 사회와 생태를 아우르며 살아야 한다며 거듭 흔들었다.

2006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로 한창 뜨거웠을 때는 “요즘 ‘한미 FTA’로 농업이 위기에 놓여 있다. 농업은 단순한 산업 하나가 아니다. 농업은 서로 돕고 의지하는 상생 관계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데, 상생과는 거리가 먼 미국 기업농을 위한 FTA 체결은 한국 농업은 없다고 치고 시작하는 사회전환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 국토 가운데 산지가 64%, 농지가 20%로 농업이 죽어버리면 이 생태계를 관리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만다”며 나섰다.

“내 이웃이 갖지 못하고 있는데 나만 많이 갖는다는 것은 사람 도리가 아니다. 아무리 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뿌리를 좇아가보면 다른 누군가가 가져야 할 것을 도중에 가로챈 것이나 다름없다. 유엔식량기구에서는 날마다 지구촌에서 하루에 3만 5천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음식을 너무 많이 버리고 있다.(2007)”

“기상학자들은 금세기 안에 지구 기온이 지금보다 섭씨 5도에서 8도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가 이대로 산다면, 히말라야를 비롯한 빙하들이 앞으로 40년 안에 모두 사라진단다.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이 높아지고, 해수면이 높아지면 태풍이나 홍수로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다 매몰된다. 히말라야 빙하가 사라지면 갠지스강이나 메콩강, 양자강과 같은 큰 강에 물이 모자라게 되고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식량 위기가 온다. 모든 것이 오차가 한 치도 없이 서로 상관관계로 이어져 있다. 이 지구상에서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우리 후손들까지도 살아있으려면, 생활방식을 바꿔야 한다(2007).”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라는 커다란 행성을 타고 해를 중심으로 우주 공간을 비행하고 있다. 이 기체에는 60억이 타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타고 있는 기체를 생각 없이 망가뜨려서 이 별이 언제 폭발할지 알 수 없다. 어떤 학자는 이 세계는 가속도가 붙은 채 내리막길을 걷잡을 수 없이 달리고 있는 기차와 같다면서 ‘사람들은 안전하게 뛰어내릴 방법을 찾지 못해 불안에 떨며 그 기차에 타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는 개개인 의지가 전혀 작용할 수 없다. 블랙홀에 다 같이 휘말린 채 소용돌이 속에서 회전하고 있을 뿐이다(2002).”

“가장 큰 병은 자신을 기준으로 삼는 데 있다. 여기서 미움이 싹트고, 전쟁이 일어나고, 무차별한 환경파괴가 일어난다. 나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원망이 생겨나고, 나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욕망의 좌절이 찾아온다. 내 기준이 모든 번뇌를 일으키는 원인임을 바로 알아야 한다. 부처님이 그토록 강조한 ‘무아’란 바로 자신을 기준으로 삼지 말라는 것이다. 나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 것이 ‘바르게’ 보는 것이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2002).”

“불교 수행은 행보리심이고 보살행이다. 신해행증, 믿고 이해하고 행하면 그 결과로 깨달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깨닫고 나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행의 완성이 곧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행 속에 이미 깨달음이 들어 있다. 마치 과일 속에 씨앗이 들어 있듯이.

부처님 일생을 여덟 가지로 나누어 놓은 그림이 있다. 팔상도가 그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가장 중요한 사건인 성도상이 없다. 곧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없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건을 다루는 성도상이 왜 빠졌을까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수행과 항마 속에 이미 깨달음이 들어 있어서 따로 성도상을 넣을 까닭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본래 성불이기 때문이다(2005).”

“남에게 베푸는 것이 가장 으뜸가는 바라밀이다. 바라밀이란 ‘가닿는다’는 뜻이다. 남이란 무엇인가? 크게 보면 또 다른 나이다. 남이란 내 분신이다(2002).”

스승은 평생을 ‘나는 나이고 싶다’라고 외치다 가셨다. 남다른 나를 드러내려면 제 빛깔을 잃지 않고 자유의지를 펼쳐야 한다. 자유의지는 ‘스스로 말미암아 세운 뜻’이란 말이다. 그러나 살아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지며 어우러져 빚어지는 자연계에서 스스로 말미암아 세운 뜻으로 드리울 수 있는 그늘은 그리 넓지 않다. 뜻대로 할 수 있는 힘이 백만분의 일(0.0000001)이나 되려나. 백만분의 일은 애걔? 싶을 만큼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숫자이다.

1을 거듭제곱해서 나온 값에 거듭제곱하기를 백만 번 되풀이해도 결과는 1이다. 그러나 0.0000001이라는 꼬리가 붙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1.0000001을 거듭제곱해서 나온 값에 거듭제곱하고 또 그 값에 거듭제곱하기를 스물두 번까지 되풀이하니 1.5211이 된다. 겨우? 그걸 얻으려고 그토록 힘을 썼다는 말이지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네 차례 거듭제곱하면 821.298로 껑충 뛰어오른다. 이쯤이면 보람찰 수 있을까? 이에 머무르지 않고 그 값에 한 번 더 거듭제곱하면 67만 4천 5백3십쯤으로 십만 단위로 뛰어오른다. 여기 머물러 누릴 수 있지만, 거듭제곱하기를 두 차례 더하니 207,017,133,996,671,569,721,067(이천칠십해 일천칠백일십삼경 삼천구백구십육조 육천칠백일십오억 육천구백칠십이만 일천육십칠)이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값이 나온다.

참답게 살겠다는 작은 몸짓 하나가 거듭하기와 만나 커다란 ‘살림살이’를 이룰 수 있는 말씀으로 스승이 수행이 늘 새로운 복습이라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얻어진 것을 독차지해서는 덧없다.

절 창건 설화에 흔하게 나오는 것이 연못을 독차지하는 독룡이다. 창건주들은 이 독룡들을 달래거나 꾸짖어 다스리고 그 터에 절을 짓는다. 절을 지으면 절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마을이 함께 생긴다. 나는 ‘독룡’을 독을 품은 용이라 받아들이지 않고, 독룡(獨龍) 혼자 독차지하려고 드는 용이라 여긴다. 용이 독차지하고 있는 물은 목숨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스님들이 물을 독차지하고 있는 이를 타일러 나눠 쓰도록 하여 절을 짓고 서로서로 보듬으며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었다는 말씀이다.

이처럼 무소유란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공동소유, 우주가 준 선물을 나눠 써야 한다는 말씀이다. 스승이 “밥값이라도 해야겠다”라고 하며 1994년 닻을 올린 ‘맑고 향기롭게’가 바로 나눠 쓰기 본보기를 보이는 모임 가운데 하나이다. 맑고가 본디 청정으로 본디 부처를 가리키는 말이라면, 향기롭게는 발보리심하고 행보리심하여 세상에 사랑이 메아리치도록 하는 것을 펼쳐 보이는 말씀이다. ‘맑고 향기롭게’를 상징하는 연꽃 여덟 잎은 팔정도를 일컫는다. 맑고 향기롭게 앞에 임자말을 세우면 오롯하다. ‘마음을 맑고 향기롭게’,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라고.

맑고 향기롭게는 커다랗게 무엇을 내놓고 떠벌리며 일하지 않는다. 모임에 나와 마음과 세상,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 하는 것을 몸에 익히고 나면, 저마다 제가 사는 터를 맑고 향기롭게 보듬으며 살아가면 된다.

나는 도법 스님이 앞장서서 펼친 ‘붓다로 살자’를 함께 해왔다. ‘맑고 향기롭게=붓다로 살자’로 받아들였기에 선뜻 어울릴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지금이야말로 맑고 향기롭게 살림살이를 펼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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