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위진남북조 시대 선종

위진남북조 반야론, 불성론 유행
중국전통 ‘三玄’ 반야중관과 닮아
당시의 문인 사대부 불자들 환영
‘일체중생개유불성’ 파격적 사상

위진 시대에 ‘반야론’이 유행했다면, 남북조시기에는 ‘불성론’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반야공 사상은 ‘空’을 바탕으로 수립되었고 바로 본질을 깨닫는 것에 치중했기 때문에 비교적 이론이 난해했다. 반면에 불성사상은 ‘有’를 바탕으로 형성된 이론으로 비교적 이해하기 쉬었고, 있다는 것에 착안을 해서 불성을 인지하거나 찾는 것에 치중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본질은 모두 깨달음에 중점을 두고 있다. 결국 이 두 종류의 사상은 선종사상의 양대 축을 이르고 있다.

한나라 말부터 유송(劉宋)시대에 이르기까지는 〈반야경〉이 유행했다. 동한(東漢) 때 지루가참(支婁迦讖)이 번역한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을 기점으로 해서 여러 종류의 반야류 계통의 경전이 번역되었다. 또 주사행(朱士行) 도안 등 많은 이들이 반야사상에 대한 연구 내지 학습을 했다. 당시 반야사상을 노장학인 현학의 뜻을 의지해서 반야경의 뜻을 논석하거나 해석을 하였는데, 그것이 중국불교사에서 명명되어진 ‘격의불교’이다.

위진남북조 시대에 이르러서 중국전통사상인 현학(玄學)이 유행하였고 현학 중에서도 삼현(三玄)인 〈주역〉 〈노자〉 〈장자〉 사상이 유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현학은 대승불교 중에서도 특히 반야중관 사상과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의 문인 및 사대부 불자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며, 이 반야중관 사상은 양진(좃晋)시대에 이르러서는 반야학파가 육가칠종(六家七宗)으로 나뉘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유행하였다. 그 가운데 요진 구마라습과 승조(僧肇)의 사상을 이어받은 반야사상을 기초로 한 삼론학파가 흥기하기 시작하면서, 반야공론과 중도불이사상은 당시 현학에서 주장하던 우주관 세계관 인생관 등을 사유 관찰하는 방법론 및 이론체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육가칠종은 동진 시대의 스님들이 반야성공(般若性空)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해석한 것을 가리킨다. 육가칠종에 대한 내용에 관해서 몇 가지의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승조의 〈조론〉 및 동진시기 도안이 육가칠종을 정리 혹은 평론한 것이 있고, 유송(劉宋) 시기에 장엄사(莊嚴寺)의 담제(曇濟)가 지은 〈육가칠종론(六家七宗論)〉과 수대의 길장이 지은 〈중론소(中論疏)〉 등에 비교적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육가칠종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 번째 본무종(本無宗)은 도안 승예(僧睿) 혜원 등의 관점이고, 두 번째 즉색종(섦色宗)은 지도림(支道林)등의 관점이고, 세 번째 식함종(識含宗)은 어법란(於法蘭)제자 어법계(於法開) 등의 주장이고, 네 번째 환화종(幻化宗)은 축법태(竺法汰)의 제자 도일(道壹)등의 주장이고, 다섯째 심무종(心無宗)은 축법온(竺法溫) 도항(道恒) 지민도(支쑁度)등의 주장이고, 여섯 번째 연회종(緣會宗)은 어도수(於道邃) 등의 주장이고, 일곱째 본무이종(本無異宗)은 축법탐(竺法琛)등의 주장이다. 이 중에서 본무종(本無宗) 즉색종(섦色宗) 심무종(心無宗)이 당시 반야학의 주류가 되었다. 승조(僧肇)는 이 7종의 견해를 〈不廬空論〉에서 ‘심무(心無) 즉색(섦色) 본무(本無)’ 등 세 가지로 귀납시켰다.

이렇게 위진 시기에 반야학이 유행해서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열반학이 서서히 흥기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불성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같기 시작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열반경〉의 번역도 한몫을 했다. 특히 〈열반경〉이 번역되면서 불성론에 관한 여러 가지의 설이 제기되었다. 〈열반경〉은 여러 종류의 번역본이 존재하는데,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한 〈대반열반경〉의 불성론 관점이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대승불교에서 체계적으로 발전된 불성론은 중국불교의 많은 영향을 주었다.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이후 인성론에 관한 문제는 빠르게 불교사상에 반영되었고, 불교의 불성론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남북조 시기에 불성론의 문제는 당시 많은 불교도들에게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일체중생개유불성’이라는 사상은 각계각층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당시는 봉건주의시대로 신분과 계급적 서열이 엄격했던 사회제도에 비추어 볼 때, 매우 파격적인 이론이자 사상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불성론은 급속하게 확산되기 시작했고,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 대목은 중국에서의 불성론의 발전과 형성에 있어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그림, 강병호

 

사실 중국불교사에서 보면,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열반불성에 관한 경전은 이미 불교가 인도에서 유입된 시기인 한나라 말부터 소개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즉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이 번역되기 이전에 중국에서는 대ㆍ소승에 관련된 〈열반경〉이 전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위진 남북조 시기에 중국에 번역된 〈열반경〉은 세 종류가 있다. 먼저 동진시기(北凉屢熙14년, 418)에 법현과 각현이 합작으로 번역한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 6권이다. 그러나 이 번역본은 〈열반경〉 전체를 번역한 것은 아니며, 경의 초분과 전5품을 번역하였다. 두 번째는 북량(北쏐玄始10년, 421)에 담무참이 북량의 도성인 양주(지금의 武威市)에서 번역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40권이다. 〈열반경〉의 전체를 완전하게 번역한 번역본이다. 세 번째는 유송(劉宋元嘉年間, 424-453)에 혜엄(慧嚴) 혜관(慧觀) 및 시인인 사운영(謝靈運) 등이 위 두 개의 번역본을 근거로 다시 개편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36권이다. 세칭 〈남본열반경(南本涅槃經)〉이라고 한다. 담무천이 번역한 〈대반열반경〉은 〈북본열반경(北本涅槃經)〉이라고 부른다. 담무천이 번역한 〈북본열반경〉이 남방에 전해지기 전에 〈남본열반경〉이 남방에서 유행했다.

담무참이 번역한 〈대반열반경〉의 핵심내용은 불신(佛身)은 상부불멸(常住不滅)하며 열반4덕인 상락아정(常樂我淨)과 일체중생은 모두 불성이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경의 ‘사자후보살품’에서 보면 ‘불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이 있는데, 부정적인 방식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다. 즉 “선남자야 불성이라는 것은 역색비색, 비색비비색 내지 역자비자, 비자비비자(善男子! 佛性者, 亦色非色, 非色非非色,..,亦字非字, 非字非非字).”등의 형식이다. 한편 이 경은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경전의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설하는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 즉 경의 초분에서는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을 구비하였고, 동시에 모두 성불할 수 있다고 하였지만 “일천제(一闡提)는 제외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경의 후반부에서는 “일천제도 성불할 수 있다”고 설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 보건데 아마도 이 경전은 긴 시간동안 이루어졌거나 혹은 경전이 편집되는 과정에서 사상적인 변화를 반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국에서 이 경전이 번역되고 나서 열반 불성론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고, 열반경에 대한 연구 및 다량의 주석서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서 비교적 중요한 주석서로 수나라 때 혜원이 지은 〈열반경의기〉 10권, 관정(灌頂)이 지은 〈열반경소〉 33권 및 〈열반경현의〉 2권, 길장이 지은 〈열반경유의〉 1권 등이 있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로 위진남북조 때 중국불교의 열반학이 탄생되었다. 특히 동진 시기의 승려인 축도생(竺道生)은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 6권의 내용인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으며 ‘일천제’까지도 성불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마침내는 건강(健康, 현재의 남경)을 떠나게 되었다. 그 후 남방의 여산에 이르러서 〈열반경〉을 강설하자 많은 사람들이 듣게 되었고, 비로소 중국 최초의 열반사(涅槃師)가 생겨났다. 이로서 남북조 시기에 불성론 문제는 중국불교에서 중요한 연구대상이자 그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무엇이 불성인가’ 이외도 당시 논쟁이 되었던 문제는 ‘모든 중생이 불성을 구비했는가’에 대한 논쟁이었다. 당시 〈대반열반경〉인 〈북본열반경〉이 번역되기까지는 모두 ‘일천제’는 성불할 수 없다는 관점이었다. 그러나 축도생이라는 안목 있는 인물이 출현하면서 일천제도 성불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아마도 경전 전체가 번역되지 않아서 이러한 현상이 빚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는 많은 공격과 비방을 당하였지만 마침내 그의 관점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것은 〈열반경〉의 전반부 내용과 후반부 내용이 달랐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즉 전반부에서는 “무엇이 일천재의 이름이 되는가? 일천제라는 것은 일체선근이 단멸되었고, 본심이 일체선법을 반연하지 못하며, 내지 일념의 선도 내지 못한다”고 일천제를 설명하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두 종류의 일천제가 있다. 하나는 현재 선근을 얻는 자이고, 다른 하나는 후세에 선근을 얻는 자이다. 여래는 일천제 무리가 현재에 선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곧 위해서 설법을 한다. 후세에 얻는 자를 위해서도 또한 설법을 한다. 지금은 비록 무익하지만, 후세에 인을 짓기 때문이다. 이런 연고로 여래는 일천제를 위해서 법요를 연설한다. 다시 일천제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이근(利根)자이고, 다른 하나는 중근(中根)자이다. 이근인은 현재 능히 선근을 얻을 수 있고, 중근인은 후세에 곧 얻는다. 제불세존의 설법은 헛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일천제가 현세는 비록 성불하지 못하더라도 인을 심어두면 반드시 언젠가는 성불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열반경〉 후반부 도처에서 일천제에 대한 불성과 성불의 문제에 대해서 설하고 있다.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현실속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육신적 정신적인 자유를 원한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영원한 자유가 되는 것을 해탈이라고 한다. 해탈론을 논하면 반드시 수반되는 사상이 바로 불성론이다. 당시는 봉건주의 시대로서 신분 서열이 엄격한 계급제도의 사회였기 때문에, 많은 피지배계층의 사람들은 신분적으로 자유롭지 못했고, 또한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자유롭지 못했다. 이러한 봉건적사회의 압제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고, 불성론의 문제가 대두되자마자 당시의 중국인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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