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7월 1일 지정예고
원당암·갑사 불상·복장물도

보물로 지정예고된 경주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 7세기 신라 시대 작품으로 '삼화령 애기부처' 별칭을 가지고 있다.

삼화령 애기부처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과 합천 해인사와 공주 갑사의 불상·복장물·복장전적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신라 7세기를 대표하는 조각 중 하나로 꼽히는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을 비롯해 합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 ‘합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복장전적’, ‘공주 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사보살입상 및 복장유물’, ‘공주 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사보살입상 복장전적등 총 5건에 대해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71일 밝혔다.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은 경주 남산 계곡 중 한 지류인 장창곡의 정상 부근 석실(石室)에 있던 불상으로, 관련 기록과 조각 양식 등으로 보아 신라 시대 7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삼존상은 삼국시대 미륵신앙과 신앙행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644(선덕여왕 13) 생의(生義) 스님이 경주 남산 골짜기에서 발견해 삼화령(三花嶺)에 봉안한 미륵상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신라 경덕왕 때 승려 충담사(忠談師)가 차를 공양했다고 하는 삼화령 미륵세존 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또한, 어린아이처럼 귀엽고 천진난만한 용모가 가장 특징적인 인상으로 꼽혀 삼화령 애기부처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보물로 지정예고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은 의좌상(倚坐像, 의자에 앉은 자세)을 취한 본존 미륵불과 좌·우 협시보살 입상으로 구성됐다. 의좌상 형식의 불상은 중국 남북조 시대(5~6세기) 이후 크게 유행했고 미륵불을 상징한 예가 많다. 장창곡 불상의 경우 우리나라 의좌상 불상 중 시기가 가장 오래된 작품이자 희소한 사례에 속한다.

문화재청은 한국에서 가장 빠른 의좌형 미륵삼존불이자 신라인들의 신앙생활이 반영된 대표작이라며 불심(佛心)과 동심(童心)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듯한 7세기 신라 전성기의 수준 높은 조각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한국 조각사에 중요한 학술·예술적 위상을 지닌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이번 지정 예고에서 해인사 원당암과 갑사에 봉안된 불상과 복장유물, 복장전적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합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은 원당암 보광전에 봉안된 삼존불상과 이곳에서 발견된 복장유물을 말한다. 복장유물에는 중수발원문(1694)을 비롯해, 후령통(候鈴筒, 불상이나 불화를 봉안할 때 금··칠보 따위의 보물을 함께 넣은 통), 사리호(舍利壺), 오보병(五寶甁), 직물, 보자기, 다라니 등 23점이다.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은 설법인(說法印)을 한 아미타여래좌상과 보관(寶冠)을 쓴 관음보살, 민머리의 지장보살로 구성된 불상으로, 아미타삼존도상을 정확하게 구현한 성보다. 이러한 삼존상 형식은 고려 후기에 새롭게 등장한 도상(圖像)으로 조선 후기까지 지속됐으나, 현존하는 사례가 매우 드물다.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복장 전적.

조성 시기에 대해서는 불상의 형식과 복장발원문, 1490년 전후 왕실의 지원에 따른 해인사 중창(重創), 이후 1495년 원당암 중창이 이루어진 일련의 과정을 고려할 때, 조선 15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발원문 등 복장유물을 통해 해인사 법보전과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조성을 후원한 왕실인물들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확인됐다.

합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복장전적은 본존 아미타여래좌상 복장에서 발견된 불경이다. 29첩으로 <대방광불화엄경> 진본(晉本) 23첩과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貞元本) 5, <제다라니> 1첩으로 구성됐다. 판각 시기는 대부분 고려 13세기 중엽이며, 인출 시기는 조선 14세기 말15세기 초로 추정된다. 불상이 만들어진 후 복장이 개봉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결손 없이 보관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이렇듯 고려 시대 판각된 화엄경이 일괄 발견된 예는 지금까지 매우 드문 사례다.

공주 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사보살입상 및 복장유물은 공주 갑사 대웅전에 봉안된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사보살입상의 협시보살상에서 발견된 복장유물이다. 해당 유물과 복장유물은 2002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5호로 지정된바 있다.

‘공주 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사보살입상’. 복장유물과 복장 전적과 함께 보물로 지정예고됐다.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사보살입상1617(광해군 9)에 행사(幸思) 9명의 조각승이 제작한 총 7()으로 구성된 대단위 작품이다. 이러한 7존의 형식을 갖춘 불상으로는 갑사 외에 하동 쌍계사 대웅전의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사보살입상’(보물 제1378, 1639)1703화엄사 각황전의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사보살입상‘(1703) 등이 전해지고 있다.

갑사 석가여래삼불·사보살상의 경우 임진왜란 이후 조성된 7존 형식의 불상으로는 현존 최대작(最大作)이자 최고작(最高作)으로서, 진흙으로 만든 소조(塑造) 불상은 평균 높이가 2.5m이며, 보살상 역시 2m 이상으로 제작되어 매우 장중한 인상을 준다. 제작기법에 있어서도 17세기 전반 대형 불상에 널리 적용된 소조기법으로서는 가장 빠르다.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을 통해 1617년이라는 명확한 제작시기와 제작자에 대한 정보가 확인되며, 2,300여명이라는 조선 후기 최대 인원의 시주자들이 참여해 조성한 17세기의 역작이다.

소조관세음보살입상에서 발견된 복장유물은 처음 조성 당시의 현황에서 변형되지 않고 온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공주 갑사 소조석가여래삼존좌상·사보살입상 복장전적은 소조관세음보살입상에서 발견된 전적류 88점이다. 필사본은 1건으로 흰 종이에 먹으로 쓴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이며, 나머지 7점은 모두 목판 경전류다. 간행 시기는 고려본과 조선 16세기 중반까지로 확인된다.

문화재청은 보물로 지정 예고한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5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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