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이법화 스님

 

 

 

 

 

 

 

 

 

<서신 1>

南無妙法蓮華經
뻗어나는 신록의 6월. 내외분 건강하오며 아기도 충실하다 하오니 무엇보다도 축하합니다. 전일에는 공자양이 아버지를 모시고 상경하시여 병환 시중을 정성으로 하더군요. 그리고 결혼할 배우자를 모시고 와서 부처님께 예배를 하고 갔지요. 언제 약혼 또는 결혼식을 올리는지요? 지난 14일 배능자(묘찬 스님 소개) 양이 상경하였다가 19일 부산 자택으로 돌아갔지요. 마침 15일부터 80명의 신도승속이 설악산 신흥사 계조암 비선대 와선대 낙산사 강릉 경포대 오죽헌 월정사 상원사 중사자암 적멸보궁(불사리를 모신 곳) 등을 순례하였지요. 가는 곳마다 법고를 울리고 예배하고 즐거움을 나누었지요. 강릉 경포대에서도 새벽 4시 반 해수욕장 백사장에 나가서 욱일승천을 바라보면서 <나무묘법연화경>을 봉창하고 국태민안을 소원하였지요. 여러 장의 신문을 오려서 부송하여 주셔서 참으로 감사해요. 수고가 많았어요. 그러면 내내 안녕하시기를. 혹시 묘찬 스님을 만나시거든 안부 전해주세요. 명희 어머니께도 연락하세요. 다음에 내려가면 찾아가겠어요. 그리고 여전히 날마다 독경하세요. 합장.

노재섭 불자 이대원성 내외분 앞. 71년 6월 20일. 이법화 합장

 

 

<서신 2>

南無妙法蓮華經
대원성의 글을 오늘 반갑게 받았습니다. 식구가 한 분 늘었다니 축하드립니다. 나는 어제 14일 저녁 수 십분 남녀스님 신도분의 환영 속에 김포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고향 한국에 오니 오랫동안의 긴장과 피로 흥분도 가라앉고 이제는 휴식과 가벼운 여행담 속에서 마음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항상 부처님 경전을 읽고 독경을 하는 것을 일상생활의 규칙으로 하고 있다니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바쁜 가사 가운데도 꾸준히 예불 올리기를 바랍니다. 댁내 여러분 모두 안녕하시를 바라며 이만 그칩니다. 72년 12월 15일 이법화 합장

대한불교영산법화종의 개창조이신 이법화 스님은 내가 결혼하기 전부터 뵙기 시작한 인연이다. 스님은 27세에 <법화경>에 귀의해 오랜 세월 <법화경>을 널리 알리는 원력으로 사셨다. 그래서 나에게도 법화종도가 되어주길 바라셨다. 나 역시 평소에 <법화경>을 애송했지만 이미 조계종에 이름을 적고 난 후라서 스님의 원을 들어드리지는 못했다. 스님은 아쉬우셨던지 한 동안 뵐 때마다 아쉬운 마음을 비치곤 하셨다. 끝내 내가 법화종도로 이름을 옮기지 않았지만 스님과의 인연은 달라지지 않았다. 스님과의 인연은 종단이나 종파와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스님의 강의를 듣기 위해 매달 이웃의 도반들을 모아 부산에서 법회도 열어드리며 스님의 인연을 이어갔다.

스님을 뵐 수 없는 지금 가끔 스님의 인연을 떠올릴 때면 아쉬운 마음이 일어난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스님의 마음으로 생각하면 스님이 많이 서운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무거워진다. “스님, 스님 원 들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서신 1>의 묘찬 스님은 진주 응석사 비구니스님으로 평생 <법화경>만 번역하시고 기도하신 스님이다. 아버지 약방에 오셨던 스님 중에 유일한 비구니스님이다. <서신 2>는 인도에 다녀오신 후에 보내주신 서신이다.

1967년 이법화 스님(오른쪽)과 대원성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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