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민주주의’ 지향점 ‘세계국가’
‘불교 민주주의’ 지향점 ‘세계국가’
  • 윤성식/ 고려대 명예교수
  • 승인 2020.06.2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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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불교의 개방성

로마 제국은 로마라는 작은 도시 국가에서 시작했다. 로마는 주변의 작은 국가를 병합하면서 커졌고 급기야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했다. 로마의 위대함은 제국이라는 결과가 증명한다. 로마의 강점은 오늘날 많은 학자에 의해 분석되었다. 무엇보다도 로마는 개방성과 포용력에 있어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는 다른 민족의 우수한 제도와 기술은 유연하게 받아들였다. 필요할 경우 다른 민족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했다. 로마의 시민권은 로마 제국 시대에는 굉장한 권리였다. 자유롭게 제국을 통행할 수 있는 비자였고 로마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열린 사회, 발전 원동력
인종, 종교, 문화 융합해
새 인류 발전 토대 창출

기독교는 예수와 사도 바울이 창시한 종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울의 역할은 지대하다. 신학성서의 상당 부분은 바울이 쓴 내용이다. 바울은 이스라엘 사람이다. 바울이 기독교를 전파함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의 하나는 바울이 소지한 로마 시민권이다. 바울은 자유롭게 로마 제국을 여행하면서 당당하게 로마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었기에 기독교 전파에 아주 유리했다.

로마 제국 이후에 알렉산더, 나폴레옹도 제국에 버금가는 국가를 건설했지만 몽고 제국의 범위에는 미치지 못한다. 더구나 알렉산더와 나폴레옹의 제국은 알렉산더와 나폴레옹의 사망으로 급속도로 위축되었다. 하지만 몽고는 오래 지속됐다. 예를 들어 러시아는 몽고의 지배를 200년 이상이나 받았다. 비록 징기스칸 사후에 몇 개의 큰 나라로 분리되어 통치되었지만 그 분리된 나라 하나 하나가 제국에 버금 갈 정도의 규모였다.

로마 제국과 유사하게 몽고 제국도 개방성과 포용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어떤 인종이든지 능력이 있으면 몽고 제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몽고가 가장 서쪽으로 진격한 곳은 오스트리아 부근이었는데 오스트리아군이 몽고군 첩자를 잡았더니 유럽인이어서 놀랐다고한다. 동부 유럽을 함락시킨 몽고는 오스트리아를 침략하기 위해 동부 유럽인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다른 나라를 병합한 후에 그 나라의 가장 뛰어난 기술을 받아들여 몽고화한 것은 로마와 아주 유사하다. 몽고도 로마처럼 다른 나라의 종교를 탄압하지 않고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다.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국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하다. 다른 나라의 기술을 쉽게 습득할 수 있고 다른 나라 사람 중 우수한 사람을 활용할 수 있다. 다른 나라에 적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점령된 국민은 쉽게 동화될 수 있었다. 로마와 몽고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아도 세계국가의 기준을 충분히 충족시키는 제국이었다.

기독교는 이스라엘 민족이 선택 받은 민족이라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다. 불교의 세계에서는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개념은 없다. 인도의 4계급제도는 아리안계 백인이 인도를 점령하면서 만들어진 인종적인 계급이다. 부처님은 계급을 부인하고 누구나 행위에 의해 고귀함과 비천함의 구별이 있다고 하였다. 백인인 아리안 종족이 선택받았다는 브라만교의 교리에 반대한 신흥종교 불교는 출발부터가 개방적이고 포용적이었다.

기독교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모든 것을 지배하라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지만 불교는 모든 생물에게도 자비를 베풀 것을 말한다. 하물며 지구 상의 수많은 인종에 대해서는 평등한 사상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게 불교다. 불교는 세계화와 세계국가를 지향한다. 연기가 내포하는 연생연멸(緣生緣滅)과 상의상관(相依相關)이 다른 국가, 다른 인종과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기법은 개방성과 포용성을 내포한다.

연기법으로 세상을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인종은 독자적 실체라는 게 없다. 인류학의 연구에 의하면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한 여성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 여성은 인류학에서 ‘루시’로 불리운다. 우리 모두 루시의 후손이다. 피부의 색에 따라 다른 선조가 있었지만 그 선조는 알고 보면 모두 루시의 후손이다. 인류는 탄생 초기에는 한 피부색이었는데 진화의 과정에서 다양한 피부색이 나타난 것이다. 피부색은 완전 검은색과 완전 하얀색 사이에 수많은 단계의 짙고 옅음이 존재한다. 서양 사람을 백인이라고 하지만 한국 사람의 피부보다 더 검은 백인이 있다. 한국 사람은 노랗다고 말하지만 백인보다 훨씬 하얀 피부도 있다. 눈, 코, 얼굴 윤곽, 머리털 색이 다를 뿐이지 피부가 과연 노랗고 하얀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과거에는 인종을 백인과 흑인으로만 구별했다고 한다. 마르코 폴로도 중국 사람은 백인이라고 기록하였다. 비록 중국인의 코, 눈, 얼굴 윤곽, 머리털 색은 달라도 피부색은 유럽인과 다르지 않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유럽인은 아시아 인종을 황인종이라고 구별해서 분류했다. 어쩌면 우월주의적 관점에서 나온 시각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루시’라는 한 아프리카 여성의 후예라면 민족과 국가로 구분되는 단위는 모두 자연스럽지 않은 인위적인 구분에 불과하다. 한민족도 여러 종족의 피가 섞여 있다고 한다.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은 체질, 인류학적으로도 여러 가지 차이가 난다. 중국은 북쪽의 한족과 남쪽의 한족이 생김새가 다르다. 일본어로 ‘여보세요’는 ‘모시 모시’다. 일본어에는 이처럼 반복 음절이 많은데 이는 동남아 언어권에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따라서 일본인은 남쪽에서 올라온 인종과 한반도를 거쳐 북쪽에서 내려온 인종이 섞인 민족이다. 어떤 중국인은 평균 중국인보다 평균 한국인에 더 가깝다. 어떤 일본인은 평균 일본인보다 평균 한국인에 더 가깝다. 내가 미국 유학시절 같이 공부했던 어떤 일본인은 남들이 한국인이냐고 물을 정도로 평균 한국인 얼굴이었다. 그 친구는 자기가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인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한국 정서를 좋아하고 한국 사람과 잘 어울렸다.

우리가 과연 인종과 국가에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오랜 기간 동안 공동 운명체로서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해온 인종과 국가는 여전히 현실의 삶에서 중요하지만 이것 또한 알고 보면 인위적인 임시적 결과에 불과하다. 만약 링컨 대통령이 없었다면 미국은 유럽처럼 수많은 작은 국가로 분열되어 있었을 것이다.

불교교리의 핵심은 선한 행위와 사고는 선한 결과의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선한 행위와 사고는 상호적인 것이다. 나 혼자만 선한 행위와 사고를 하면 선한 결과의 가능성은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두가 선한 행위와 사고를 하면 선한 결과의 확률은 거의 100%에 가까울 것이다. 불교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모든 사람의 참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참여하는 사람들이 전 지구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 때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다.

국가 간의 경제력, 군사력 경쟁이 심한 현실에서 GDP의 증가, 경제발전, 무역흑자 등을 외면하고 자연과의 공존, 자리이타적 경제행위 등을 추구하기는 어렵다. 인접 국가의 GDP가 올라가고 군사력이 증강되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환경보호, 공존적 경쟁, 윤리경영, 이기심과 탐욕의 극복을 추구하기는 어렵다. 모두 같이 하면 서로에게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각국이 경제에 관한 무한경쟁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사실상 모든 국가들은 지금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다. 불교의 핵심교리가 아무리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국가 간의 경제전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이상에 불과하다. 세계국가로 모든 국가가 편입될 때 불교의 핵심교리가 비로소 현실성을 확보하게 된다.

불교가 지향하는 이상사회는 한 국가 내에서 작은 규모로 시작되더라도 결국은 전 세계로 확대되어야 한다.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상호의존하고 교류하고 있는 21세기에 한 국가 내에서 불교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연기법은 모든 국가와 모든 사람들과 모든 자연환경의 생물체와 존재들에게 구현되어야 불교의 뜻을 구현할 수 있다. 연기법을 부분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불교라고 할 수는 없다.

불교가 지향하는 자비는 자신이 속한 직장, 지역, 민족, 국가에게만 적용되는 폐쇄적 자비가 아니다. 불교가 지향하는 민주주의적 일하는 방식도 자신이 속한 직장, 지역, 민족, 국가에게만 적용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자기 나라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표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지배할 때는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이중적인 관점은 불교 교리와 어긋난다. 우리나라만 잘 먹고 잘 살면 되지라는 생각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무너졌다. 중국의 잘못으로 간단히 통제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는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전국민을 고통으로 몰아 넣었다. 비록 우리가 대처를 잘하여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삶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 코로나19가 창궐하는 한 우리만 홀로 편히 살 수는 없다. 최소한 빗장을 단단히 잠그고 입국을 통제하지 않으면 사회적 거리두기마저 효과를 보기 어렵다.

전세계가 협력적으로 백신개발과 정보공유에 노력하는 이유는 전 인류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연기적 존재임을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 기업이 독점하지 말고 실비용으로 모든 인류에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인류가 세계화와 세계국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하면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매우 비현실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모두가 이를 절감하고 있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하여 모든 나라들이 빗장을 단단히 잠그고 중세 시대의 성곽에 갇혀 세계화의 절실한 요구를 거스를 수밖에 없는 현실 또한 우리가 직시해야 한다. 우리가 부처님의 정신으로 코로나19를 바라본다면 문제는 좀 더 잘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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