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배경엔 ‘한국불교’ 있었네?

1천만 관객 영화 ‘신과 함께’
불교의 지옥 풍경 근간에 둬

염라대왕 등 〈시왕경〉 근원
‘시왕경변상판화’ 등 도상화
韓불교만 해당 도상 계승해

해인사에 전해지는 〈시왕경변상판화〉 제5 염라대왕 부분. 1246년 조성됐다. 〈시왕경〉에 대한 도상화 전통은 한국불교가 유일하게 지켜나가고 있다.

지난 2017, 2018년 극장가에서는 이승과 저승, 과거와 현재, 죄와 벌, 인과 연에 관한 영화 ‘신과 함께’가 큰 인기를 얻었었다. 영화에는 저승사자, 염라대왕을 비롯한 지옥의 시왕, 판관, 성주신 등이 등장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시왕과 관련된 경전인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 이하 〈시왕경〉)〉을 떠올리며, 시왕의 명칭과 각각의 시왕에 속하는 지옥과 재판하는 죄목의 종류를 경전의 내용과 비교하느라 머릿속이 무척이나 부산했던 기억이 있다.

영화 ‘신과 함께’ 1편과 2편 모두 큰 흥행을 한 이유에는 당연히 출연한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가장 큰 몫을 차지하겠지만, 관객의 다수가 이야기를 이해하고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린아이가 자라서 말귀를 알아들을 무렵이 되면 ‘저승사자가 잡으러 온다’, ‘나쁜 일을 하면 지옥에 가서 염라대왕에게 심판을 받는다’, ‘악인은 지옥의 불구덩이에 빠져서 고통받는다’ 등등의 사후세계와 지옥에 관한 선행학습을 자연스럽게 받게 된다.  

또한 사찰에서 대웅전만큼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전각이 명부전(冥府殿)이다. 명부전은 지장보살과 함께 시왕을 모시며, 지장보살의 자비를 빌려 시왕의 인도 아래 저승의 길을 벗어나 좋은 곳에서 태어나게 하고자 재(齋)와 지장제(地藏祭)를 모신다. 이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시왕과 지옥에 관한 개념은 과연 언제부터 있었을까? 

불교 경전에서 가장 이른 사례는 〈불설수생경(佛說壽生經)〉이다. 〈불설수생경〉은 당나라 정관13년(639) 현장(玄唆)스님이 중앙아시아에서 취득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내용은 매우 간략하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명부로부터 생명을 이어주는 돈인 수생전(壽生錢)을 빌렸기 때문에 살면서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생전을 갚는 방법은 마음을 다해 〈금강경(金剛經)〉과 〈불설수생경〉을 독송한 뒤 〈불설수생경〉을 불살라 바치면 본인은 물론 삼세의 부모와 일가친척까지 구제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이 경전을 독송하면 묵은 원한을 풀어주고, 수명을 늘여 무병장수하게 해주고, 오역의 죄가 소멸 되는 등 그 공덕을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한다.

7세기 경에 성립한 〈불설수생경〉에는 시왕도 염라대왕도 등장하지 않지만, 8세기 후반 만당(晩唐)시기에 성도부 대성자사 사문(成都府 大聖慈寺 沙門) 장천(藏川)이 저술한 〈시왕경〉에서 그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시왕경〉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여래께서 반열반에 드시려 할 즈음에 모든 세계 하늘 영과 땅의 귀신 부르셨네. 모임을 인하여 염마왕에게 수기를 주시어 살아생전에 미리 닦는 의식을 전하셨다. 〈중략〉 부처님께서 그 모임의 모든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염라천자는 미래세계에 장차 부처가 되어 그 명호를 보현왕여래라 할 것이며, 10가지 명호를 다 갖출 것이다. 그 세계는 엄숙하고 청정하며 온갖 보배로 장엄될 것이다. 그 나라의 이름은 화엄이라 할 것이요, 보살들이 그 나라에 가득 찰 것이다. 그때 염마법왕이 기뻐 뛰면서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을 〈염라왕수기사중예수생칠왕생정토경(閻羅王授記四衆預修生七往生淨土經)〉이라 할 것이니 너희는 장차 이 경을 모든 나라에 전하여 유통시켜 온갖 사람들이 이 경의 가름침대로 받들어 실천하게 하라.”

위의 내용에서 보았듯이 먼저 경전의 명칭과 열반에 들기 전 석가여래께서 염라에게 미리 수기를 내리는 사연을 소개한 뒤에, 우리가 알고 있는 구체적인 지옥의 종류와 시왕에 관해 적고 있다. 〈시왕경〉에서 말하는 시왕과 10번의 재판은 다음과 같다.

①첫 번째 칠일 진광왕(秦廣王) - 진광대왕을 만나면 귀문관(鬼門關) 앞에 망자를 세우는데, 이때 귀신들이 모여 살생의 죄를 물어 죄가 있으면 쇠몽둥이로 내려친다.  

②두 번째 칠일 초강왕(初江王) - 초강(初江)가에 사는 초강왕을 만나기 위해서는 나하(奈河)를 건너는데 세 곳의 나루터가 있다. 망자의 옷을 벗겨 나뭇가지에 걸어 죄의 무게를 잰 후에 죄가 가벼운 이는 무릎 깊이의 얕은 강물을 건너지만, 악인은 물살이 빠르고 험한 곳으로 건너야 한다. 그리고 선인은 금과 은 칠보로 된 나루터에서 아름다운 다리를 건너간다. 

③세 번째 칠일 송제왕(宋帝王) - 송제왕은 사음(邪淫)을 저지른 업을 심판하며, 죄인은 남의 생명과 물건을 빼앗았다고 손과 발을 싹둑 잘라 철판에 놓는다. 

④네 번째 칠일 오관왕(五官王) - 오관왕은 업을 재는 저울(業秤)에 업을 재서 죄의 무게에 따라 벌한다.

⑤다섯 번째 칠일 염라왕(閻羅王) - 염라왕은 업경(業鏡)을 갖고 있는데, 죄인을 업경에 비추어 보면 마음으로 지은 죄뿐만 아니라, 삼세에 저지른 선한 일과 악한 일을 모두 비춘다.

⑥여섯 번째 칠일 변성왕(變成王) - 변성왕이 다스리는 지옥은 철환소(鐵丸所)를 지나야 하는데, 둥근 돌이 서로 굴러다녀 죄인들이 돌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⑦일곱 번째 칠일 태산왕(泰山王) - 염라왕의 서기이기도 한 태산왕은 인간의 선악을 기록해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 천 등 육도 가운데 어느 곳으로 윤회할지를 결정한다.

⑧100일 뒤 평등왕(平等王)

⑨1년 뒤 도시왕(都市王) -
1년 동안 유족들이 망자를 위해 경전과 불상을 조성하면 죄인이 고통을 덜거나 면할 수 있다.

⑩3년 째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 - 죄인이 윤회하지 못하고 영원히 지옥에서 벌을 받을지에 관해서 최종 심판한다. 
  
〈시왕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자세히 묘사한 대표적인 사례가 고려 1246년 해인사 사간판 〈시왕경변상판화〉이다. 이 그림은 두루마리 형식으로 화면 오른쪽에서 가로 방향으로 도해되어 있으며,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사천왕·합장한 네 보살 그리고 아난과 가섭으로 짐작되는 두 존의 승려가 첫 번째 장면을 구성한다. 화면의 처음에 경전의 명칭을 명확히 밝히고 있으며, 그림의 장면과 장면 사이에 경전의 내용을 잘 새겨 놓았다. 

일반적으로 〈시왕경〉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을 언급하면 돈황 막고굴에서 출토되어 프랑스 파리의 기메미술관과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두 점의 〈시왕경변상도〉를 떠올린다. 고려와 중국 북송의 두 작품을 비교해 보면 〈시왕경〉의 내용을 두루마리 형식의 화면에 그림으로 표현한 화면구성과 시왕들의 복식 등에서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지만, 고려의 판화는 경전의 내용을 그림과 함께 모두 상세히 적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현재 〈시왕경〉은 〈고려대장경〉이나 〈대정신수대장경〉에 수록되어 있지 않아, 그 전거를 명확히 몰랐다는 사실이다. 〈시왕경〉의 전거를 찾아서 거슬러 올라가다 일본에서 편찬한 〈만속장경(卍續藏經)〉 중 시왕경 조(條)의 첫 머리에 “의조선각본(依朝鮮刻本)”이라 명시되어 있는 부분을 확인한 바 있다. 이와 같은 기록을 통해서 유추해 보면 고려 1246년 해인사 사간판 혹은 현존하지 않은 고려의 판본을 통해서, 〈시왕경〉이 현재까지 온전히 전해질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하겠다. 

〈시왕경〉은 중국에서 편찬되었지만, 한국과 중국, 일본에 널리 유포되어 있는 이 경전을 한국 불교미술에서 그 도상과 경전의 원형을 유일하게 지키고 있다는 뿌듯함과 우리 조상들의 위대함을 감출 수 없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