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닉·도난 성보 문화재 환수 '길 열렸다'
고법 前사립박물관장 A씨에
은닉 불교문화재 ‘몰수’ 명령
A씨 항소… 대법 상고 기각
성보 39점 환지본처 가능해
도난문화재 판결 중요 선례
불법 유통된 불교 성보 문화재를 수십 년 동안 은닉해온 전직 사립박물관장에게 내려졌던 유죄 선고와 ‘몰수’ 명령이 최종 확정됐다. 이에 따라 도난당해 제자리에 갈 수 없었던 불교 성보들이 ‘환지본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대법원 1부는 6월 25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립박물관장 A씨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함께 기소된 아들 B씨도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원심 판결이 유지됐다. 또한 은닉 불교문화재 39점에 대해 내려진 ‘몰수’ 명령도 확정됐다.
지난 1993년부터 서올 종로에서 사립박물관을 운영한 A씨는 종로구 소재 무허가 주택과 창고에서 불교문화재 39점을 은닉해왔다. 이들 범행에 꼬리가 잡힌 것은 지난 2016년 B씨가 은닉해오던 불교문화재 11점을 사찰 등에 처분하려다 발각되면서부터다. 당시 그들의 범행은 교계 언론과 일반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됐으며 은닉 불교문화재 39점은 압류됐다.
이후 B씨의 문화재 알선 혐의는 A씨의 은닉 혐의와 함께 병합돼 형사재판이 진행됐으며, 2018년 7월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1형사부는 A씨에 대해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B씨에 대해서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은 몰수 판결은 하지 않았다. “제출된 증거만으로 은닉 행위 이전에 도난 문화재라는 것을 알고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검찰 측은 항소했으며, A·B씨도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조계종 문화부 역시 재판부에 2차례에 걸쳐 “도난 성보가 원래 봉안처로 온전히 돌아가고 문화재의 불법적인 유통 근절을 위해서라도 압수물 몰수와 피고인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보냈다.
이에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10월 25일 A, B씨에 대한 양형 선고와 함께 ‘몰수’ 명령을 내렸다. 그동안 몰수 선고가 이뤄지지 않아 39점의 불교 성보들은 사찰로 돌아가지 못한 채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 내 수장고에 임시 보관돼 있었다. A씨는 2017년 3월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물건 인도 등 청구 소송’까지 제기한 상태여서 반환에 대한 위험성도 컸다.
하지만 당시 서울고법은 “유무죄 여부를 가릴 땐 검사의 증명이 필요하지만, 몰수 요건을 살필 땐 엄격한 요건이 필요하지 않다”며 몰수 선고를 내렸다.
또한 “불교문화재의 유통은 일반적이지 않다. 수 십년간 사립박물관장을 역임한 문화재 전문가인 A씨가 이를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적다”고 지적하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문화재들을 장기간 보관하고 있던 점도 문제를 삼았다.
은닉 문화재에 대한 몰수 선고는 극히 드문 사례로 은닉 성보 환수에 청신호가 켜졌다. A씨가 제기한 민사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조계종 문화부 관계자는 “이번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 따라 ‘불교 성보 유통이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는 2심의 판결이 인정됐다. 문화재 몰수 판결도 불교에서는 처음 있는 사례”라면서 “향후 도난·은닉 성보 관련 판결에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불교 문화재의 유통이 비상식적인 일임이 법적으로 인정됐기 때문에 불법 유통이 근절될 수 있게 됐다. 도난 예방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망했다.
이번 몰수 명령 확정에 대해 피해 사찰들은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1993년 주불 아미타불을 도난당한 전북 장수 팔성사 주지 법륜 스님은 “새벽 5시에 출발해 대법원에서 기쁜 소식을 듣게 됐다. 지난 25년간 부모를 잃어버린 죄인으로 살았다. 이제 부처님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니 기쁘다”이라며 “이번 판결이 선례가 돼 잃어버린 성보들이 제자리로 돌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법원 확정 판결에 따라 39점의 성보문화재는 우선 국가로 귀속되며 이후 원 주인을 확인하는 절차를 통해 사찰로 돌아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