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혐오 없는 세상 만드는 ‘첫발’

2007년 법무부 발의 이후 6차례 입법시도 무산
7년만의 입법발의 가시화… 불교계 法제정 촉구


불교계를 주축으로 한 종교계와 각 분야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말 그대로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법안이다. 2007년 법무부 발의로 첫 상정된 후 몇 차례 입법 시도가 이어졌지만 일부 개신교계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번번이 폐기 또는 철회 수순을 밟아왔다. 2013년 이후 사실상 제정 움직임이 중단된 상황에서, 최근 21대 국회 개원을 기점으로 법제화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불교계는 여러 종교계 중에서도 선제적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했을 뿐 아니라 적극적인 입장표명으로 법제화를 촉구해 왔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모든 생명이 평등하다는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증오와 혐오 없는 사회를 위해, 모두가 안전하고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게 불교계의 전반적인 인식이다.

특히 조계종(총무원장 원행)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 왔다. 선거때에는 불교계 정책제안으로 요구해 왔으며,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위원장 혜찬, 이하 사노위) 주도로 성소수자·노동·여성인권단체와의 연대활동은 물론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런 점에서 조계종 사노위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공동으로 6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주변에서 봉행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오체투지 기도회’는 그간 사회 각 분야에서 형성된 ‘차별없는 세상을 향한 염원’들이 한데 모이는 신호탄이라는 평가다.

이날 오체투지 기도회에 참석한 장혜영 21대 국회의원(정의당)은 “이미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뤄졌다”며 “정치는 더 이상 국민들의 염원을 외면해선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혜영 의원은 현재 ‘차별금지법(안)’ 상정을 위한 대표발의를 준비 중이며, 입법발의를 위해서는 최소 10명의 공동발의자가 필요하다.

이런 가운데 새롭게 출범하는 21대 국회에서는 차별금지법 법제화가 현실화될 수 있을 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7대 국회부터 18대, 19대로 이어진 입법시도가 성과 없이 좌초된 이후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아예 발의조차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요인은 일부 개신교계의 반발로 꼽힌다. 성적소수자를 인정하지 않는 교리 때문이다. 2013년 김한길·최원식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을 철회한 데에도, 입법예고 기간 집중적으로 이뤄진 일부 개신교계의 조직적 반대운동에 대한 부담이 상당부분 작용했다. 당시 두 의원은 입장표명을 통해 “일부 교단의 항의와 민원은 물론 공동발의한 의원들을 향한 낙선 서명운동 등 압박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결과적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일부 개신교계의 반발을 극복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등 주요정당이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이에 대해 이종걸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장은 “인권은 합의의 대상이 아니라 기본권”이라며 “더 이상 사회적 합의라는 핑계 뒤에 숨어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평등을 외면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차별금지법 제정은 과거 참여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였던만큼 문재인 정부 역시 이를 외면할 수 없을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국제사회의 흐름이기도 하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2017년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 결과 한국정부에 대해 차별금지법을 권고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도 차별금지법 법제화를 직·간접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21대 국회가 어떤 결론을 도출할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와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6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주변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오체투지 기도회’를 봉행했다. 사진=박재완 기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장 혜찬 스님은 “종교적으로 교리적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종교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며 “21대 국회와 종교계는 인간과 생명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성적지향성,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등을 이유로 고용,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등 모든 분야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이다.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증오와 혐오, 이로 인한 폭력을 방지하고 처벌하기 위한 것으로, 2007년부터 입법이 추진됐지만 현실화되지 못했다.

송지희 기자 jh35@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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