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불성론 및 유가의 심성론

‘인성론’, 중국사상사의 중요 명제
춘추전국시대부터 처음 연구 시작
맹자 성선설·순자 성악설 등 다양
불교는 出世觀이며 유가는 入世觀

 

불교의 심성론은 다른 말로 불성론을 말한다. 불성론은 실제로 인성론에 관한 문제로서, 인성론에 대한 불교적인 관점이다. 인성(人性)은 사람 본질의 속성을 말한다. 인성을 외적인 측면에서 보면 사회성 문화성 경제성 등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 볼 수 있다. 반면에 내적인 각도에서 보면 인성은 그 사람의 본질 성향 등을 나타낸다. 때문에 인성론에 대한 문제는 사람의 근본적인 본질을 규명하는 명제이다. 선악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등등 많은 문제를 제기해 볼 수가 있다.

전국시대 후기 인성론 문제에 대한 제기는 곧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탐구로서,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각종 감정 및 행위에 관한 탐구이기도 했다. 특히 선악에 대한 인간 행위가 전체의 사회 정치 문화 등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탐구 내지 탐색은 곧 인간의 속성인 본질을 규명해 보는 것이기도 하다. 이후 중국 사상계에서는 이 인성문제에 대해서 끈을 놓지 않고 선과 악의 관계 및 선악의 기원 등 각 방면에서 연구를 이어갔다.

인성론은 중국사상사에서 매우 중요한 명제이다. 중국사상사에서 처음으로 “인성론”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시기는 춘추전국시대이다. 춘추시기 일찍이 공자는 “성상근, 습상원(性相近, 習相遠)”을 말했다. 즉 인성의 형성과 객관적인 사회 환경과의 관계를 해석한 것으로, 이 점은 당시 사회에서 이미 인성문제를 다루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즉 인간의 본질과 속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공자는 사람의 본질과 속성 및 선악에 대해서 정확하게 규명한 적은 없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묽)은 “선생님이 천성과 천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묽曰, 夫子之文章, 可得而壙也, 夫子之言性宅天道, 不可得而壙也)”고 하고 있는데, 이 말은 곧 공자는 인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는 뜻이다.

전국시대에 이르러서 비로소 인성문제에 대한 탐구와 발전이 있게 되었다. 당시의 사상가들은 사람의 본성에 대한 문제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인성에 대한 선악의 문제도 이때에 이르러서 논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각양각색의 인성론에 대한 토론과 연구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인성의 선악문제에 관해서 당시 사상계의 대표적인 학설은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 ‘유선유불선(有善有不善)과 무선무불선(無善無不善)’으로, 즉 ‘선(善)이 되기도 하고 불선(不善)이 되기도’ 하는 등의 관점이 논의되고 있었다.

맹자의 성선설의 핵심은 사람과 짐승의 차별 점은 바로 자각할 수 있는 도덕적 관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사단설(四端說)’을 제시해서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한 성품인 ‘사단사심(四端四心)’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즉 ‘사단설(四端說)’이란 ‘측은지심은 인의 시작이며(惻隱之心: 혹은 同情之心, 仁之端也) 수오지심은 의에 시작이며(羞惡之心(수치심), 義之端也) 사양지심은 예의 시작이며(辭讓之心ㆍ겸손 겸양하는 마음, 禮之端也) 시비지심은 지혜의 시작(是非之心, 智之端也)이다”라고 했다. 이 사심(四心)은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가리키며, 인간이 천부적으로 구비하고 있는 도덕적 범주의 발단이 된다고 여겼다. 때문에 이 사단(四端)은 모든 사람들의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告子上〉에서 “사람의 성은 선하다.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는 이치와 같다. 사람에게 불선(不善)이 없다. 물이 아래로 흐르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하기도 했다. 참고로 원래 공자가 처음으로 ‘仁義禮’를 제시했고, 맹자가 ‘仁義禮智’로 확충을 했고, 한나라 때 동중서가 ‘仁義禮智信’을 오상(五常)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그림, 강병호

 

맹자와 정반대로 ‘성악설’을 주장한 전국시대의 걸출한 인물인 순자는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보았다. 그는 ‘성선설’은 인위적인 것이라는 관점이다. 그가 말하는 사람의 본성은 당연히 자연적인 생리적 현상인 속성을 가리킨다. 즉 배고프면 밥을 생각하고, 추우면 따뜻한 옷을 필요로 하고, 피곤하면 쉬고 싶은 생각을 하는 것 등은 모두 인간의 자연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의 본성은 당연히 호리오해 추리피해(好利惡害, 趨利避害) 즉 “이익을 추구하는 면과 해로움을 피하는 면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눈은 미색을 보려하고, 귀는 좋아하는 것만 들으려 하고, 입은 맛있는 것을 좋아하고, 마음은 이익을 좋아 하고, 신체는 안일과 편안함을 좋아한다”는 것으로, 이러한 반응은 모두 인간의 속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른바 善이라는 것은 모두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 인위적이라는 것이다. 〈순자〉 ‘성악편’에서 “사람의 성은 악하다. 그 선이라는 것은 인위적이다(人之性惡, 其善者僞也)”라고 했다. 때문에 그는 선천적으로 형성되는 도덕관을 부정하면서, 후천적인 도덕을 위한 교화 작용을 강조하였다. 즉 “선천적인 본성을 변화시켜서 후천적으로 인위적인 것을 일으키게 한다(化性僞起)”는 것이다.

이외도 중국 철학사에서 다양한 인성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즉 다양한 각도에서 인성론 연구를 진행했다. 당시 고자(告子)는 “생지위성(生之館性)”이라고 하면서, 인성에는 “선과 불선의 구분이 없다(性無善無不善)”고 보았다. 즉 사람이 나면서부터 선성(善性)을 구비한 것도 아니고, 선악(善惡)은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했다. “마치 물이 동서가 없듯이(水无分于땜西), 성도 善과 不善을 나누지 않는다(性也, 无分于善不善)”고 했다. 곧 인성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 보았는데, 물은 어느 한곳으로 흐르면 계속해서 그 쪽으로 물길을 따라가는 것과 같다고 여겼다. 예를 들면 동쪽으로 인도하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인도하면 서쪽으로 흐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사람의 본성도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본래 선악이 결정된 것이 없는 관계로 주어진 환경의 영향에 따라서 선도 악도 될 수 있다고 했다. 때문에 완전히 후천적인 환경과 교육이 선악을 결정짓는 다고 보았다.

심성설에 대한 또 다른 관점으로 한나라 때 양웅(揚雄)은 성선악혼(性善惡混)을 주장했다. 그는 “사람의 성은 선악으로 섞여있다. 그 선을 닦으면 곧 선인이 되고, 그 악함을 익히면 곧 악인이 된다.(人之性也善惡混, 修其善則爲善人, 修其惡則爲惡人)”고 했다. 즉 그는 인성에는 선악의 두 가지의 요소를 갖추고 있으며, 모두 선척적으로 구비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후천적인 학습과 사회적인 환경 등 기타 요인으로 인해서 선한 요소가 선한 쪽으로 발전하면 선인이 되고, 악한 요소가 악한 쪽으로 발전하게 되면 악인이 된다는 논리이다. 또 그가 강조하기를 “배움은 성을 닦는 것이다(學者所以修性也)”라고 하면서, “배우면 곧 바르게 되고(學則正), 그렇지 않으면 곧 사가 된다(否則邪)”고도 했다. 그의 이러한 관점은 공자가 말한 “성상근야(性相近也), 습상원야(習相遠也)”를 좀 더 깊이 발휘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중국사상사에서 이러한 인성론 내지 심성론은 대부분 어떻게 하면 성현군자가 되는가 하는 것과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를 규정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사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인성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위정자들의 인성은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즉 한 나라의 지도자의 인성에 따라서 그 나라의 사회전체가 진보할 수도 퇴보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개인들의 일상생활에도 깊은 영향을 준다. 때문에 유가는 여러 가지 사회적인 환경을 반영해서, 교육을 통한 인성을 개발해 사회적 가치로 활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사회적 가치는 보편타당한 것이 되어야 하고, 실제로 일상생활에 적용이 되었을 때 실용성이 있어야 했다. 특히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함을 줄 수 있는 인간을 육성하는 것으로 ‘성현군자’라는 표식을 만들었다. 성현군자의 규범은 도덕적으로 높은 소양과 품성을 구비해야 했다.

유가는 군자의 덕목이자 사회적 가치로서 ‘자기위인원칙(自己爲人原則)’, ‘위인처사적원칙(爲人處事的原則)’, ‘자기적위관지도(自己的爲官之道)’를 요구했다. 즉 만약에 조정에서 벼슬을 하게 되면 반드시 조정의 입장에서 일을 해야 하고, 동시에 황제나 관료가 불의를 일으키면 이의를 제기해 반드시 바로 잡아 정의를 실천해야하고 만약에 지방에서 관리가 되면 반드시 민생의 입장에서 일을 해야 하며 만약에 관리가 안 된 지식인이면, 그 사회에 대해서 항상 관심을 가지고 반드시 사회에 공헌을 해야 한다. 이것은 유가의 가치이자 덕목이고 목표로서,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ㆍ나라의 흥망성쇠는 밭을 가는 농부에게 조차 책임이 있다)”라는 말로 귀결된다. 이것은 바로 유가에서 인성을 중시하는 목표이자 이상세계인 대동세계를 이루는 표준이었다. 또 유교는 군자로서 선택할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도덕을 묻는 자는 공명을 구하지 말 것이며(問道德者不計功名), 공명을 묻는 자는 이익과 관록을 구하지 말라(問功名者不計利祿)”고 했다. 이러한 사상적 행위의 근저에는 인간의 도덕적인 수양으로 성품을 완성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정리하자면, 불가나 유가 모두가 심성을 논했지만, 어느 과정에서는 일치하는 관점도 있지만, 추구하는 목적과 이상은 완전히 다르다. 유가의 심성론은 완전한 인간으로서 도덕적인 수양내지 전인적인 인격의 도야 내지 품성에 대한 완전함을 추구해서 성현군자가 되는 것을 논했다. 동시에 성현군자 역시 현실에서 이상을 실현하는 것으로 입세(入世)의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다. 반면 불교의 출발점은 출세(出世)로부터 시작한다. 물론 불교도 역시 도덕적인 인품 내지 인성을 육성하기를 장려한다. 하지만 불교의 이상은 철저하게 자기의 성품의 본질 및 근원처를 찾아서 대지혜 광명을 발현하는데 목적과 의의가 있다. 게다가 대승불교의 목적은 깨달음을 이룬 후에는 반드시 다시 현실로 회귀하는 보살도정신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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