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혜해 스님과 금강산의 특별한 인연
[기획]혜해 스님과 금강산의 특별한 인연
  • 송지희 기자
  • 승인 2020.06.15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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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신계사랑 법기암 노닐다 가련다”
5월 31일 오후 9시 30분 입적
“유골은 금강산에…”유언 남겨
北 금강산 신계사 암자서 출가
복원 당시 80대 고령에도 방북
민추본, 사리탑 조성 적극 지원
금강산 신계사 복원 불사 당시 방북한 혜해 스님(사진 앞쪽)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금강산 신계사 복원 불사 당시 방북한 혜해 스님(사진 앞쪽)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성본 스님

“나는 5월 31일 밤 9시30분에 가련다.”
“스님, 9시면 9시지 왜 9시 30분이예요?”
“30분은 금강산 신계사랑 법기암 들러 노닐다 갈라고 그러제.”

한반도 분단 역사의 산 증인이이자 조계종 비구니 원로 보주당 혜해 스님이 법랍 77세, 세납 100세 일기로 원적에 들었다. 5월 31일 오후 9시 30분, 예견했던 그 시간이었다. “유골은 금강산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혜해 스님의 출가사찰은 효봉 스님의 오도처로 알려진 북한 금강산 신계사 법기암이다. 해방 이후 남쪽으로 내려와 한평생 수행에 매진하면서도 스님은 금강산을 잊지 못했다. 스님에게 금강산 신계사는 초발심의 상징이자 회향의 공간이었으며, 또 애틋한 그리움이었다.

신계사 복원을 위해 북한 금강산을 방문한 혜해스님.사진제공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2004년 남북불교계 협력으로 신계사 복원이 이뤄지자 스님은 환희심을 감출 수 없었다. 83세 고령에도 수시로 방북해 신계사를 찾았으며, 한번 방북하면 일주일에서 한달까지 머무르며 손수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수행을 하고 잡초를 정돈했다. 남측 사람들을 경계하며 거리감을 유지하던 북측 조선불교도연맹 관계자들도 혜해 스님만큼은 ‘금강산 스님’이라고 부르며 남다른 존경심과 친근함을 보였다. 북측 관계자들의 배려로 출가사찰인 법기암 터에 올라 과거를 회상하고 참선하며 삼매에 들기도 했다.

방북 당시 시자로 함께했던 상좌 성본 스님에 따르면 혜해 스님은 신계사 복원 관련 수시방북초청자로, 복원이 진행되던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십여차례 방북했다. 성본 스님은 “전각이 하나하나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것을 보며 참 행복해하셨다”며 “‘금강산에서 출가했으니 금강산에서 생을 마치고 싶다’고 항상 말씀하실 정도로 신계사를 각별하게 여기셨다”고 회상했다.

북측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법기암 터를 둘러보는 혜해 스님
북측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법기암 터를 둘러보는 혜해 스님. 사진제공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복원 당시 신계사에서 한달간 머물며 봉사했던 김효례(백련화) 보살은 “혜해 스님은 그 존재만으로 큰 감동이었다”고 기억했다.
“신계사 대웅보전이 완공되고 법왕루 불사가 진행 중이던 시기였어요. 법랍이 높은 큰 스님이라는데 그 웃음이 얼마나 자비롭고 천진하시던지, 내 평생 그런 스님은 정말 처음 봤어요. 상좌 스님들과 함께 법당에 참배하고 공양물을 올리시고는 ‘황성옛터’를 부르셨지요.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해요. 노래를 듣고 내가 너무 감동해서 펑펑 울었거든.”

혜해 스님의 마지막 방북은 2007년 10월 13일 신계사 낙성법회다.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방북이 불가능해졌고, 금강산 신계사는 다시 스님의 마음 속 그리움으로 남았다.

혜해 스님의 다비식에는 햇무리가 장엄했다. 스님이 떠난 자리엔 영롱한 에메랄드 빛깔의 사리 30여과가 남았다. 특히 스님의 사리는 시기는 예단할 수 없지만 유지에 따라 남과 북으로 나눠 안치될 가능성이 있어 또다른 남북통일의 매개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 원택 스님은 “스님의 사리는 더없이 영롱한 빛으로 스님의 높은 수행력과 고귀한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어 큰 감동을 받았다”며 “문도와 함께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법구와 사리 일부가 금강산 신계사 법기암에 안치될 수 있도록 민추본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스님은 “현재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지만, 혜해 스님의 드높은 원력이 한반도에 다시 평화의 씨앗을 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남북불교교류의 상징 신계사에 또 다른 상징으로 혜해 스님의 사리탑이 우뚝 서길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혜해 스님은 정말 금강산에 올라 노닐었을까. 성본 스님은 “우리 스님은 정말로 신계사도 가보시고 법기암도 가보시고 하면서 아주 행복해 하셨을 것”이라며 미소 지었다.

송지희 기자 jh35@hyunbul.com

보주당 혜해 스님은 1921년 4월 27일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1남 3녀 중 삼녀로 태어났다. 1944년(24세) 금강산 신계사 법기암에서 대원 스님을 은사로 행자 생활을 시작, 6개월 후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금강산 유점사에서 참선했다. 해방 이후 1946년 10월 수행의 길을 찾아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내려와 무불 스님을 계사로 오계를 수지하고,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받았다. 효봉 스님과 성철 스님, 청담 스님, 향곡 스님 등 당대를 대표하는 큰스님들을 따라 한평생 수행에 매진해 후학들의 귀감이 됐으며, 선정에 든 혜해 스님의 몸에서 불꽃이 방광(放光)하는 등의 일화가 알려져 세간의 존경을 받기도 했다. 1971년 이차돈 성사의 순교지인 천경림 흥륜사에 비구니 선원인 천경림 선원을 개원, 1980년부터 천경림 선원장 소임을 맡아 하루도 빠짐없이 죽비를 놓지 않고 정진 대중을 외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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