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여래 광명이 중생을 비추다

‘불설관무량수경’을 도상화한 내영도
관음·대세지 거느리고 왕생자 맞아
아미타여래 광명으로 중생들의 왕생
고려·서하 불화 연관성 확인 ‘눈길’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한 고려불화 ‘아미타삼존내영도’. 〈불설관무량수경〉의 관음·대세지 보살을 협시하지 않고 관음·지장보살이 협시인 것이 특징이다.

범부가 아미타여래의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방법을 〈불설관무량수경(佛說觀無量壽佛經)〉의 내용을 그림으로 옮긴 〈관경십육관변상도〉를 지난 연재에서 살펴보았다. 이제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방법은 알게 되었지만, 그 구체적인 과정이 궁금해진다. 먼저, 5세기 강량야사(畺良耶舍)가 한역한 〈불설관무량수경〉을 살펴보자.

“서방정토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9품(品)으로 태어나느니라. 상품상생(上品上生)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람이니라. 만일 어떤 중생이 저 나라에 태어나기를 원하여 세 가지 마음을 내면 곧 왕생하게 되는데, 무엇이 그 세 가지인가? 첫째는 지성스러운 마음(至誠心)이고, 둘째는 깊은 마음(深心)이며, 셋째는 회향하여 발원하는 마음(廻向發源心)이니라. 이 세 가지 마음을 갖추면 반드시 저 국토에 태어나느니라. 

 또 세 종류의 중생이 왕생하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세 종류인가? 첫째는 자심(慈心)으로 살생하지 않고 모든 계행을 갖춘 사람이며, 둘째는 〈대승방등경전(大乘方等經典)〉을 독송하는 사람이고, 셋째는 육념(六念)을 수행하고 회향하여 저 불국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는 사람이니라. 

이러한 공덕을 갖추어 하루 내지 이레 동안 하면 곧 왕생하게 되는데, 이러한 사람은 저 국토에 태어날 때, 용맹하게 정진한 까닭에 아미타여래께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그리고 무수히 많은 화신불, 백천(百千) 비구와 성문 대중, 한량없이 많은 모든 천인(天人)들과 함께 오시느니라. 칠보 궁전에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금강대(金剛臺)를 가지고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과 함께 수행자 앞에 이르면, 아미타불께서 큰 광명을 놓아 수행자의 몸을 비추시고 여러 보살들과 손을 내밀어 영접하시느니라.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무수히 많은 보살들과 함께 수행자를 찬탄하며 그 마음을 격려하시느니라. 수행자가 이를 보고 뛸 듯이 기뻐하며 자신의 몸을 돌아보면, 이미 자신이 금강대에 앉아 날아가는 모습을 보느니라. 그리고 부처님 뒤를 따라 잠깐 사이에 저 극락국토에 태어나느니라.” 

위 경전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세 가지의 마음을 지닌 세 종류의 중생이 하루 혹은 7일 동안 공덕을 쌓으면 아미타여래가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거느리고 극락에 다시 태어날 왕생자(往生者)를 맞이하러 오신다고 한다. 그리고 아미타여래가 광명으로 왕생자를 비추면 관세음보살이 가져오는 금강대에 앉아 날아서 극락에 태어나는 것이다.

아미타여래의 빛이 왕생자의 몸을 비추는 짧은 찰나의 순간에 혼이 금강좌로 이동한다는 이야기는 영화 ‘스타트랙’의 공간이동 장면이 연상이 될 정도로 생소하다. 어떻게 천 오백년 전의 사람들은 현대인의 상상력을 능가하는 이런 순간이동을 생각해내었을까 놀랍다. 더하여 경전의 내용을 도해한 그림을 본다면 그 사실적인 묘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아미타여래가 왕생자를 맞이하러 오는 불화를 ‘아미타내영도(阿彌陀來迎圖)’라고 한다. 아미타여래만 묘사된 경우 ‘아미타독존내영도’, 아미타여래와 협시인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혹은 대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이 표현되는 ‘아미타삼존내영도’, 아미타여래와 여덟 보살인 관자재보살·자씨보살·허공장보살·보현보살·금강수보살·만수실리보살·제개장보살·지장보살을 도해한 ‘아미타팔대보살내영도’로 구분한다.

‘아미타내영도’는 구도적으로 일반적인 설법도와 달리 각 존상이 측면의 입상일 뿐만 아니라, 마치 화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날아서 이동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오른쪽 옷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형상으로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고려 후기에 그려진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국보 제218호 ‘아미타삼존내영도’는 〈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 252년)〉에서 언급하고 있는 협시보살인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아닌 관음보살과 지장보살로 구성되어 있다. 이 그림 역시 아미타내영도의 구도적 특징과 같이 본존과 협시보살이 비스듬히 서 있는 측면상이다. 관음보살은 본존보다 한 발 앞에 나와 왕생자를 향해 몸을 굽혀 연꽃 대좌 모양의 금강좌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다. 그리고 본존인 아미타여래는 오른손을 뻗어 왕생자를 맞이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으며, 이마의 계주(槌珠)에서 황색의 빛이 흘러나와 왕생자를 비추고 있다.

아미타여래의 오른쪽 지장보살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며 오른쪽 손바닥에 투명한 유리 보주를 올려놓고 있다. 이 그림의 실제적인 주인공인 왕생자는 아미타여래의 빛에 감싸인 상태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들어서 아미타여래를 바라보고 있다. 경전에서 언급하였듯이 왕생자가 곧 손가락을 튕길 정도의 짧은 순간에 극락으로 가는 강력한 암시가 느껴진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아미타삼존내영도’와 관련해서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소장된 서하(西夏, 1038~1227)의 하라호토(Khara Khoto, 黑水城)에서 출토된 ‘아미타삼존내영도’가 주목된다. 서하의 ‘아미타삼존내영도’를 살펴보면 화면의 좌측을 향해서 삼존이 몸을 비스듬히 틀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구도적 특징이 리움 소장품과 같을 뿐만 아니라, 아미타여래 보다 한 발 앞으로 나와서 금강좌를 들고 몸을 숙여 왕생자에게 향하고 있는 모습도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차이점은 아미타여래의 백호에서 빛이 곡선으로 방사되어 왕생자를 비추는데, 빛줄기 속에 왕생자의 혼이 어린 동자의 모습으로 또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협시가 리움 소장품은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인 반면에 서하의 작품은 소의경전의 내용대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리움 소장본과 서하본은 왕생자의 중복표현과 협시보살이 지장보살이 아닌 대세지보살이라는 다른 점이 있지만, 전체적인 도상은 같다고 할 수 있다. 

과연 고려불화와 서하불화는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단순히 우연일 뿐일까?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몇 가지 사실을 열거해 보고자 한다.

첫째, 관음보살이 아미타여래보다 한 발 앞서 나와서 왕생자를 향해 허리를 숙여 금강좌를 들고 있는 도상을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둘째, 서하의 ‘아미타삼존내영도’와 거의 동일한 도상의 판화 3점이 하라호토에서 출토되어 현재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이러한 도상의 아미타내영도가 대량으로 유통되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아미타내영도의 소의 경전인 〈불설관무량수경〉이 중앙아시아에서 엮어진 경전일 가능성이 높아, 도상 역시 중앙아시아지역에서 성립되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넷째, 서하가 위치한 지역이 감숙성(甘肅省)의 하서회랑(河西回廊)과 섬서성(陝西省)에 걸쳐있어 당시의 중요한 교역지였다는 점에서 고려와의 왕래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다섯째, 일찍부터 불교를 국교화한 서하의 왕들은 다양한 불교문화를 수용하는데 적극적이어서, 북송을 통한 다양한 경전과 판본을 수입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송을 통한 고려와 서하의 교류가 가능했을 것이다.

언제 어떻게 고려에 서하의 아미타삼존내영도가 전해졌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아미타삼존내영도를 통해서 불교미술의 전파력과 고려불화가 얼마나 국제적이고 시대를 뛰어넘는 사고와 안목을 가지고 있는지 단편적이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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