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해야 시방세계에 온몸(全身)을 드러내리라.

송나라 때 석상초원(石霜礎圓) 선사가 말씀했습니다.

“백 척의 장대 끝에서 어떻게 해야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겠는가?”

이런 질문을 예상한 것처럼 당나라 때 장사경잠(長沙景岑)선사는 미리 답변을 남겼습니다.

“백척간두에 앉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아직 진(眞)은 얻지 못함이라.

백척간두에서 모름지기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시방세계(十方世界)에서 전신(全身)을 드러내리라.”

임제종 석상초원 선사는 분양선소(汾陽善昭)의 법을 이었고 문하에 황룡혜남(黃龍慧南)과 양기방회(楊岐方會)를 배출한 대종장(大宗匠)입니다. 임제종의 황룡파와 양기파라는 두 물줄기가 석상문하에서 배출된 것입니다. 장사경잠 선사는 남전보원(南泉普願)의 법을 이었으며 조주(趙州)스님과 사형사제 관계인 대선장(大禪匠)입니다.

두 선지식의 ‘백천간두진일보’ 는 선가에서 오랫동안 회자(膾炙)되었고 지금도 사해(四海)에서 만민(萬民)의 입에 오르내리는 살아있는 화두입니다. 석상의 질문에 대하여 장사경잠 선사는 설사 백척간두에 앉을 수 있다고 해도 아직 진(眞)이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백 척의 장대 끝에 앉아만 있는 사람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도 진짜 대오(大悟)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방세계에 온몸(全身)을 드러낼 수 있을 때 비로소 공부를 제대로 마친 것입니다. 백척간두라는 고봉정상에 머물며 안주할 것이 아니라 시방세계 즉 중생세계로 다시 나투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수미산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평지로 내려온 사람과 계속 평지에 머물렀던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백척간두에 올랐다가 내려 온 사람과 아예 백척간두에 오를 생각조차 못한 사람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석상스님은 왜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해야 한다고 말했겠습니까? 자리(自利)만으로는 이타(利他)를 완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타를 실천할 수 없는 자리(自利)는 공허한 언구(言句)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백척간두’라고 하니 백 척 길이의 장대 끝이라고 문자적으로 이해한다면 언구에 걸려 바로 넘어지기 마련입니다. 언구에 걸리면 백척간두는 고사하고 일척간두 조차 나아가지 못합니다. 결국 언구에 걸려 중생 제도는 커녕 자기 자신도 제대로 구제하지 못할 것입니다.

결제는 언구도 버리고 내 몸에 대한 집착(身見)도 버리고 오직 백척간두를 향해 나아가는 일입니다. 구순(九旬)안거 동안 열심히 정진해서 백척간두에 이르러야 해제하는 날 비로소 시방세계에 온몸을 던지기 위해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결제를 못한다면 백척간두가 아니라 일척간두 조차 오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해제 날 시방세계는 고사하고 일방세계조차 발을 디딜 수 없을 것입니다.

장사경잠과 어떤 납자의 문답도 그 연장선상입니다.

“어떻게 해야 백척간두에서 진일보 하겠습니까?”

“낭주(朗州)의 산과 풍주(?州)의 물이니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설명해 주십시오.”

“사해(四海)와 오호(五湖)가 황제의 덕화(德化)속에 있느니라.”

낭주의 산과 풍주의 물이라고 한 것은 남을 위해 진흙에 뛰어들고 물을 묻히는 타니대수(拖泥帶水)의 길입니다. 황제의 덕화 속에 있는 사해와 오호는 시방세계입니다. 그 속에 온몸을 나투기 위해 결제동안 정진하고 또 정진할 뿐입니다.

적적본고향(寂寂本故鄕)이요.

성성시아가(惺惺是我家)로다.

고요하고 고요한 본마음 바탕이 나의 고향이요.

성성이 깨어있는 삶이 나의 집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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