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파스님 통도사 옻칠민화 특별전
통도사 성보박물관 6월 28일까지

‘미륵존’ 등 옻칠민화 1백여 점 전시
‘옻칠 민화’ 우리민화 새 장르 개척
분채·석채와는 또 다른 조형세계
“한국 민화, 불교와의 연관성 깊어”

 

성파 스님 作, 미륵존

 

‘옻칠민화’라는 우리민화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성파 스님(영축총림 통도사 방장)이 5월 29일부터 6월 28일까지 통도사성보박물관에서 ‘통도사 옻칠민화 특별전’을 개최한다. 전시에는 미륵존 등 옻칠민화 100여 점이 전시된다.

옻칠민화는 민화의 한국적인 이미지와 사찰의 옻칠문화를 결합시킨 새로운 장르다.

민화는 분채와 석채에서 시작됐지만 현재는 아크릴민화, 디지털민화 등 전통적인 매체에서 벗어나 다양해지고 있다. 옻칠을 이용한 새로운 장르의 옻칠민화는 칠화(漆畵)에 민화적 이미지를 올린 그림으로, 종이나 비단의 분채나 석채와는 또 다른 조형세계를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중후한 느낌과 촉감적 질감 등이 다른 민화와는 다른 느낌을 보여준다. 옻칠민화의 또 다른 장점은 여러 물질을 화폭 속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옻칠은 다른 물질과의 결합성이 뛰어나 복합재료로 형성되는 입체적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전통민화의 이미지를 기본으로 하지만 스케일을 키우고 표현 매체를 달리함으로써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민화는 정통회화의 조류를 모방하여 생활공간의 장식을 위해 그린 그림이거나 또는 민속적인 관습에 따라 제작된 실용화를 말한다. 조선 후기에 서민층에서 유행했으며, 이규경(李圭景ㆍ1788∼1865)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이를 속화(俗畵)라 하고, 여염집의 병풍·족자·벽에 붙인다고 했다.

성파 스님의 지론에 따르면 우리 민화는 불교미술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민화는 19세기 정조 사후 사찰경제가 심각하게 어려워지면서 시작됐다. 설 자리를 잃은 불모들이 절을 나와 그리기 시작한 그림이 민화의 시작이다. 그 후 민화가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사찰의 불화 제작 시스템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민간에서 채색 안료를 쉽게 조달할 수 있는 곳은 사찰뿐이고, 민화의 주요 기능인 액막이와 길상의 기능이 불교의 축원ㆍ기복과 맥락을 같이했던 점, 그리고 사찰의 집단노동체제가 전국에서 일어난 민화의 수요를 해결할 수 있었던 점 등이 그 이유다.

전통사찰 전각에서 민화를 볼 수 있는데 통도사에도 민화가 그려진 전각이 많다. 특히 명부전의 경우 ‘사찰민화 박물관’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전각 안팎의 벽화에 불화보다 민화가 더 많이 그려져 있다. 여기서 시작된 민화의 붐은 해장보각, 용화전, 응진전 등으로 옮겨가며 벽화로 조성됐다. 이는 19세기에서 20세기 전반에 걸려 나타난 현상이다. 통도사와 같은 대가람에서 민화를 대폭 수용했다는 것 자체가 조선 말기 불교와 민화의 밀접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파 스님(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성파 스님은 1960년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통도사 강원을 졸업하고, 1970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문경 봉암사 태고선원 등 제방 선원에서 정진했다.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제5ㆍ8ㆍ9대 중앙종회의원, 총무원 교무부장, 사회부장을 역임했다. 통도사 서운암에 주석하며 28년간 민족통일의 원력을 담은 도자삼천불과 16만도자대장경을 조성했다. 옻칠불화, 민화, 서예, 천연염색 등 전통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2017년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018년 희귀병 소아암을 앓고 있는 어린이 환우들을 위해 5천만 원을 기부하는 것으로 통도사 방장 추대법회를 대신했다. 1983년 옻을 이용한 개인전을 처음 연 이후 국내외에서 전통 옻과 불교미술을 접목한 전시를 10여 차례 열었으며, 한국 고유의 전통미술을 계승한 민화, 특히 옻칠민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현재 조계종 원로의원과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으로 수행정진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