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블루’ 치유 중생과 함께해야

사회 양극화 현상 가속화
소외이웃, 더 사각지대로
전염병 현장 찾은 부처님
피해자들 고통 치유부터
진정한 종교 역할 실천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사회 양극화 현상에 대한 우려가 높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등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면서, 기존 사회의 소외와 격차는 더욱 심화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전보다, 사회 취약계층을 향한 더 세심한 수준의 관심과 지원이 요구되는 이유다.
급변하는 사회 속 소외된 이들을 보듬고 불안감과 우울감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마음방역’도 절실하다. 새로운 시대를 맞아 불교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사회 속 그늘을 밝히는 행보가 필요한 때다. 편집자 주


“세계화의 풍요를 맛보지 못했던 이들이 정작 코로나19 사태에선 두 배로 가혹한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이번 사태가 인본주의적이고 생태학적인 전환을 통해 돈에 대한 숭배를 끝내고 생명과 존엄을 중심에 놓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사람을 중심에 놓고 공동체 전체가 함께 치유하고 보호하고 나눠야 할 때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부활절을 맞아 세계 각국 사회운동단체 대표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표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소외된 이들을 위해 각국의 시민사회단체가 힘을 보태달라는 호소문이다. ‘가정주부, 병자, 노인, 소작농, 노점상, 재활용업자, 이벤트 종사자, 건설노동자, 의류업 종사자, 돌봄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등’. 삶을 지탱하기 위해 불안한 줄타기를 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취약계층으로 내몰리게 된 이들을 하나하나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사회 힘 없는 자들은 더욱 힘을 잃고 아픈 사람들은 더 약해졌으며, 소외된 이들은 더욱 소외된 곳으로 밀려났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입집행위원도 지난 4월22일 ‘코로나19가 불러온 위기와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주제토론회에서 “재난은 모두에게 평등하다고 하지만 이로 인한 고통은 절대 평등하지 않다”며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의 삶은 더욱 위태로워졌고 그 사각지대는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교계의 고민도 깊다. 전세계적으로 중생의 고통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종교 본연의 역할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생명과 존엄의 가치를 강조하는 많은 가르침을 남겼다. 모든 만물은 불성을 가진 소중한 존재이며, 나와 남이 둘이 아니기에(자타불이 自他不二) 중생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라 했다. 불교의 중생구제 원력은 바로 이 지점에서 현실로 구현된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일관되게 이어진 불교계 행보에서도 드러난다. 감염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해 봉축법요식을 한달 뒤로 연기한 대신, 한달간 ‘코로나19 치유와 극복 기도’를 봉행 중이며 제등행렬 등 연등회까지 취소하는 결단을 내렸다.
‘코로나19 치유와 극복 기도’는 질병과 관련한 대표적인 경전으로 꼽히는 〈보배경〉 낭독으로 진행되는데, 특히 이 경전을 통해 이시대 불교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 지 알 수 있다. 〈보배경〉은 석가모니 부처님 재세시 전염병이 창궐한 베살리에서 상처받고 죽어가는 이들을 보듬고 치유한 일화가 담긴 게송으로 구성됐다.

경전에 따르면 당시 죽림정사에 머물던 부처님은 전염병으로 고통받던 시민들의 요청으로 일주일을 걸어 베살리에 당도했다. 이때 부처님이 설한 게송이 바로, 모든 존재의 행복을 발원하는 내용이 담긴 〈보배경〉이다. 부처님은 시민들에게 〈보배경〉 암송을 권한데 이어, 발우에 담은 물을 환자들에게 뿌리고 제자들과 함께 도시를 돌며 시신을 치우며 거리 곳곳을 청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7일 후 전염병은 사라졌다고 전한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위험지대에 스스로 들어가 고통받은 중생들을 위로하고 치유한 부처님 일화는 마음방역을 위한 종교의 역할을 되짚게 한다. 유승무 중앙승가대 사회학 교수는 “당시 부처님의 행위는 물리적·사회적 면역체계와 위생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며 “특히 전염병으로 고통 받은 이들에게 〈보배경〉을 설하고 그 게송을 암송토록 함으로써 질병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를 제거하고 심리적 면역체계를 갖추도록 했다”고 분석했다.

구례 화엄사(주지 덕문) 부설 화엄선재불교연구소도 최근 발간한 ‘2020 종책연구 보고서-코로나19 사태에서 나타난 한국 종교의 현실과 방향’에서 “부처님은 재난 현장을 외면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부터 시작했다”며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우울과 불안, 무기력증으로 인한 고통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불교계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소극적 대응에서 벗어나 재난 현장의 고통받는 중생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위로하고 바른 가르침을 전달하며 봉사에 매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연구소는 “성찰과 위로 메시지 전파, 사회적 실천을 통해 불교계가 코로나19 사태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며 사찰 차원에서는 △인터넷 방송을 활용한 신도와의 원활한 소통 △국민을 향한 위안과 희망의 메시지 전파 △생활 방역 후 실천 가능한 봉사활동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종단 차원에서는 △유튜브 등 인터넷을 통해 법문 자료와 동영상 제공 △코로나 종식을 위한 구국 기도법회 △취약계층 대상 봉사와 방역 지원 △재난 대비 메뉴얼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결국 불교계가 현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종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대목은 바로 부처님 가르침에 기반한 마음케어, 직접적인 봉사활동, 소외계층 지원으로 귀결되는 셈이다. 그 일환으로 코로나 사태의 직접적인 피해자들, 즉 확진자와 자가격리자, 그 가족 등의 마음을 다독이기 위한 행보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조계종은 코로나19 확진자 치료 및 예방을 위해 선봉에서 자신을 희생한 의료진 등의 심신안정을 위한 템플스테이 참여 기회를 무료로 제공해 대중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와 함께 불교심리상담과 명상 등을 통해 상처 입은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미 전사회적으로 확산된 ‘코로나블루’ 극복을 위한 관심과 지원도 절실하다. 코로나로 인한 우울감은 온 사회에 뿌리 깊은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았고, 성소수자 등 특정 계층에 대한 혐오로까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이 유지되는 가운데, 지역사회 속에서 문자서비스와 SNS 등을 토대로 법문이나 명상을 소개하거나 심리상담에 나서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 사태 속 사회복지계도 급격한 변화에 직면했다. 복지관들이 일제히 문을 닫으면서 소외이웃들은 더 심각한 복지 사각지대로 내몰렸고, 그들을 위한 최소한의 생계유지와 정서지원을 위한 새로운 시도에 나선 것이다.
유튜브, SNS 활용을 통한 복지서비스가 대폭 증가한 것도 그 일환이다. 어르신들이 선호하는 강좌를 영상으로 찍어 배포하고 복지서비스와 관련한 각종 정보도 비대면으로 전송하는 등 바야흐로 비대면 복지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서울노인복지센터장 희유 스님은 “코로나19로 사회복지계에 4차산업혁명이 불쑥 다가왔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비대면 복지서비스로의 전환이 또다른 소외계층을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휴대폰 등 모바일 기반을 갖추지 못한 취약계층이나 기계 조작에 미숙한 경우, 이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불교사회복지 관계자들은 “코로나 사태로 새로운 사각지대가 생겨나고 있다”며 “생계 뿐 아니라 심리적 소외감에 중점을 두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가운데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올해 봉축법어를 통해 코로나19 사태는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만들어 낸 결과임을 지적한데 이어 “모든 불자들은 인류의 화합과 공생(共生)의 연등을 켜고, 이웃에게 즐거움을 주는 마음, 이웃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마음(…)으로 대광명의 연등을 켜자”며 종교 본연의 역할로서 사회적 아픔을 치유할 것을 당부했다.

송지희 기자 jh35@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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