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제자 중 가장 우둔했던 주리반특가
‘청소’ 화두로 쓸고 닦아 깨달음 경지 올라
자존감 낮아지면 ‘주리반특가 청소’ 생각을

그림=최주현

누구든 각각의 특별한 인연으로 출가수행자로 살고 있지만 함께 살면서 잘 갖춰진 딱 좋은 사람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누구나 어딘가 부족하거나 넘치는 면이 있기 마련이고 그렇게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온전히 갖추어지지 않은 부분을 포용하는 사람들이 화합해서 살아가는 까닭에 대중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대중이라는 말 자체에 화합(和合)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화합하지 않으면 대중을 이룰 수 없고 또한 대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화합이 근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은 화합이다.

산중 수행자들의 일상은 예불·공양·울력이 기본이 된다. 이 기본적인 일상이 화합과 존중의 바탕이다. 아무리 특출 나거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대중의 일상을 지키지 못하거나 어떤 사정으로 빠지는 사람은 대중에서 본연의 위상을 갖기 어렵다. 불교가 인류역사에서 가장 긴 시간동안 부처님으로부터 시작된 본연의 가르침과 종단의 체계를 유지해 온 것은 이 같은 기본을 철저하게 지켜온 까닭이다. 그 산중이 화합하는 대중인지 아닌지는 그 대중이 전통과 기본을 잘 지키고 있는지 아닌지로 판가름 된다. 기본을 지키며 화합하는 대중은 번성할 것이며, 기본을 지키지 못하고 화합을 잃은 대중은 패망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내가 속한 대중은 정말 모범적이라고 생각된다. 말사 주지 소임을 내놓고 본사에 온지 5년여의 시간동안 산중의 어른 스님으로부터 행자에 이르기까지 예불·공양·울력을 소홀히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총림의 방장 스님께서도 별도로 음식을 차리도록 하지 않고 대중과 함께 공양하시며, 직접 새벽예불에 행선축원을 하시고 발우공양 뒤 울력목탁도 손수 치신다. 대중에 대한 깊은 사랑과 믿음, 굳건한 정진력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매일 마당을 쓸면서 계절의 변화를 살피고 대중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신다. 

때론 승납 50년이 넘은 선덕 스님께서 환갑에 가까운 후배들과 승가대학 학인들에게 마당 쓰는 방법에 대해 한 말씀 하곤 하신다. 모래가 한 곳으로 모이지 않도록 하고 쓰레기를 쓸어 담을 때도 모래를 함께 담아 버리지 않도록 하여 비가 오면 물길이 자연스럽게 흘러 마당이 질어지지 않도록 챙긴다. 

학인들조차도 적은 나이가 아니라 서로 불편하고 민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이런 일들이 대중살이의 기본을 잡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배운 것을 그대로 전하고 후배들이 작은 일이라도 제대로 해나가기를 바라는 노파심정이 아니겠는가. 예불하고 공양하며 마당 쓰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무슨 심오한 수행을 하고 고준한 법문을 베풀겠는가. 참으로 조심하며 삼가고 삼갈 뿐이다.

금년 부처님오신날 아침에도 언제나처럼 마당을 쓸고 있었다. 신도들이 머무는 요사채 토방을 비질하고 있는데 공양을 마친 노보살 한 분이 옆으로 다가오더니 툭하고 한마디 던진다. “스님, 혹시 그림자도 쓸어낼 수 있나요?” 

순간 당황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선문답을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생각 없이 던진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편하게 대답을 드렸다. “하하, 그림자를 쓸어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요.” 

마당하나 잘 쓸기도 쉽지 않은데 그림자까지 생각하자니 잠시 마음이 복잡해졌다. 마당을 다 쓸어 마칠 때까지 주변에서 지켜보던 그 보살님이 다시 말을 붙여왔다. “해가 갈수록 안보이는 사람들이 늘어요. 매년 부처님오신날이면 전날 미리 와서 같이 자고 불공을 올리던 사람들이 이젠 그림자도 안보이네요. 누가 그림자마저 쓸어버린 것 같아요.” 세월이 쓸고 가버린 도반들의 흔적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말속에 사무치고 있었다.

문득 ‘대나무 그림자가 섬돌을 쓸어도 먼지가 일어나지 않는다(竹影掃階塵不動)’는 야부(冶父)스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마당을 쓸다보면 관광객이 버리고 간 휴지, 이쑤시개나 담배꽁초를 비롯하여 아이들의 장난감, 과자부스러기 등 온갖 잡동사니들 그리고 사중식구들이 연등을 달거나 행사준비를 하면서 흘려놓은 케이블타이와 철사 및 테이프조각 등 각종 쓰레기들이 나온다. 

빗자루 끝에서 걸려나오는 쓰레기들을 보며 때때로 그만큼의 번뇌 먼지들이 일어나곤 한다. 대 그림자가 섬돌을 쓸 듯이 그렇게 쓸면 되는데, 마음속에 자잘한 먼지들이 일어났다 사라지곤 한다. 차라리 빗자루 쓰는 것을 보면서 흔적이 사라진 도반을 생각하는 노보살의 마음이 더 도가 깊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부처님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우둔한 사람으로 꼽히는 분이 주리반특가이다. 오죽하면 “입을 지키고 뜻을 다스리며 몸으로 범하지 말라(守口攝意身莫犯)”는 짧은 게송조차 외우지 못했을까. 결국 부처님께서는 청소(淸掃)라는 말을 알려주시며 도량을 쓸고 닦도록 하셨다. 

청소라는 말을 외우며 주리반특가는 마침내 자신의 번뇌와 업장을 다 쓸고 닦아내어 아라한의 지위를 얻게 된다. 주리반특가는 16나한의 한 분이다. 그저 쓸고 닦는 청소를 수행으로 하여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은 분도 계시는데, 오랜 시간동안 많은 경전을 읽고 많은 게송을 외우면서도 제대로 빗자루 쓰는 법을 익히지 못한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이렇게 보니 세상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도를 닦는 도인이 무척 많지 않은가 싶다. 며칠 전 읍내의 사진관에 다녀왔는데 사진관에 들어가면서 입구도 깔끔하지가 않고 안에도 정리가 덜 된듯하여 내심 ‘한마디 일러주어서 도움이 되도록 할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거꾸로 사진사에게 한마디 듣고 나오게 되었다. 사진 찍는 자세를 잡아주면서 보더니 “스님은 음식을 한쪽으로 씹으시지요, 좌우로 고루 씹도록 하세요. 얼굴이 균형을 잃었습니다. 고치지 않으면 갈수록 더 안좋아 집니다”고 했다. 제 얼굴도 못 챙기면서 남의 사업에 무슨 잔소리를 하겠다고 생각을 했는지,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1986년 부처님오신날 성철 스님의 법어는 참으로 명법문이다.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부처님들, 넓고 넓은 들판에서 흙을 파는 부처님들, 우렁찬 공장에서 땀 흘리는 부처님들, 자욱한 먼지 속을 오고 가는 부처님들, 고요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부처님들, 눈을 떠도 부처님, 눈을 감아도 부처님.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주경 스님/ 수덕사 부주지

부처님오신날, 온 세상에 중생들을 위한 보배 꽃비가 내린다. 부처님의 보배 꽃비가 어찌 높고 낮음과 승속과 빈부와 미추와 귀천을 가리겠는가. 교도소와 들판에서나 공장과 먼지 속에서나 교실에서나 어디에서거나 스스로 마련한 자기의 그릇에 꽃비를 채우는 것이다. 

스스로 부족하고 모자람에 절망하고 좌절할 때가 있다면, 주리반특가의 청소를 생각해 보자. 그저 쓸고 닦는 일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얻은 분이 아니던가. 그보다 못하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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