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자기 하는 걸 보고 있는데 남이 안 본다고 함부로 해서 되나요?

… 퍼뜩퍼뜩 자기가 작용하는 데서 그 물리가 터져야 하니까요. 이 세상 살아나가는 게 전부야. 전부 자기 마음으로써 작용하는 데에, 그 속에 다 있다니까, 일체 만법이.

그리고 애들한테도 가르치면서, 내가 항상 얘기하지만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지 말고 내 자식이라는 게 영원하다는 것도 생각하지 말고, 잘못된 게 있으면 항상 인의롭게 부드럽게, 말할 때는 그렇게 하고, 모든 것은 거기에다 맡겨 놓고….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은 뿌리를 길러 주는 것이 사랑이지, 그냥 겉으로 말하고 야단치고 온통 분란을 일으키고 그렇게 해서 가출하게 만들고 이탈하게 만들고, 몸뚱이는 안 나가도 마음이 벌써 바깥으로 나가게 만들고 이러면 부모의 자격이 없어요. 자기네들이 잘못해 놓고 정신 분열을 일으키게 하고 더욱더 가난을 가져오게 만들고, 병고를 가져오게 만들고….

우리가 살면 백 년을 사오. 천 년을 사오?
이 몸 떨어지기 전에 열심히 해서
이 세상을 다 건질 수 있는 마음의 에너지, 능력이 생겨서
요다음에 훨훨 벗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인이 돼야죠.

사사로운 조그마한 말이지마는, 어디 가다 보면 커피를 마시고도 잔을 저런 데다가 그냥, 조금만 가면 쓰레기통에 넣을 수 있는데 그것도 하기 싫어서 어느 귀퉁이에다 끼워 놓고, 차 타고 가다가도 담배 피다가 그냥 후컥후컥 버리고, 다 마시고 깡통을 그냥 휙 던지고 가고 그러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

마음공부라는 것이 질서를 문란하게 하지 않아야 하고 도의와 의리, 시간을 지키고, 부드러워야 하고 부드러운 행을 해야 하고, 말 앞세우는 것보다도 행동이 더 진실해야 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남을 위해서 거짓말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이익이고 거짓말이 아닌 거고, 사기성의 마음을 가지고 만날 남을 이익하게 안 하고 해롭게 한다면 자기 앞에 떨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난 어떤 때는 이상스러운 점이, 테레비에 나올 때 보면 골골이 그냥 쓰레기를 버려서…, 아, 사람이 돼 가지고 그거 자기가 먹고 난 쓰레기 담아 가지고 쓰레기통에 넣으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나?

그러니 그 오물 속에서 독충이 얼마나 일어나겠느냐고. 그 독충이 일어나면 보이지 않게 안개처럼 날아다닌다고. 그러면 그게 누구한테로 오느냐. 버린 사람들한테, 사람들한테 도로 온다고. 그러면 버린 사람만 그렇게 되느냐. 버리지 않은 사람들도 그렇게 받는 거지. 그러니까 한 사람으로 인해서 백 사람, 천 사람이 죽게 돼 있어. 고통을 받게 돼 있고. 만약에 열 사람이 그렇게 버리고, 아니 세 사람만 그렇게 버리고 그랬다면 백 사람, 즉 말하자면 백을 채운다고. 97명은 어떻게 되지? 글쎄, 그러니까 거기 세 명을 포함해서 백 사람이 병을 가지고 올 수도 있어.

우리가 이런 공부를 튼튼하게 하질 못한 관계상 그런 행도 하고 저런 행도 하는 거죠. 또 보이지 않는 안개 같은 세균이 모두 그게 독충인데 나한테 달려들면 내가 그것을 아나? 털구멍을 통하고 귓구멍 눈구멍 콧구멍 입으로도 들어가고 그렇게 해서 병이 들리고, 요새 얼마나 병이 많으냐고. 그럭하는 사람이 좀 더 줄고 그럭하는 사람이 없어야만이 우리 병이 덜 들지 않느냐.

또 그렇게 해 놓는다면 나무에는 어떻고. 나무에도 곤충들이 생겨 가지고는 그냥 전부 뿌리가 상하게 되고, 우리 사람 하나 잘못해 가지고 얼마나 해가 가는지 몰라요. 그뿐인가. 식물 심어 놓으면 독충이 그냥 전부 달려들어서 먹는 것도, 그것도 다 그렇게 해서 생기는 거지. 그러니 한 번 잘못에, 예를 들어 말하자면 거짓말을 한 번 해 놓고 그걸 감추기 위해서 열 번을 거짓말을 해야 한다. 그러면 열 번 거짓말을 했는데 이게 자꾸자꾸 번지면 그것을 막기 위해서 사람의 행동이 나오는 게 아니라 그때는 아주 거짓말로다가 그냥 왕창 싸 버리고 말지. 조그마한 거짓말 하나에 그렇게 왕창 커진다는 겁니다. 우리가 조그마한 걸 버려도 독충이 생겨서 우리 국민을 전부 그냥 나쁘게 만든다는 겁니다.

이게 한국에서만의 문제가 아니거든. 날아다니면서 그냥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기 때문에 세계를 덮치는 거야. 그게 조그마한 일이 아니라고요. 그렇게 모두 하면서, 테레비에 보니까 엄청난 문제가 있어요. 물통 속에 그냥그냥, 아이구 참! 세상에, 사람들의 머리로 그럴 수가 있느냐고, 응? 누구라도 서둘러서, 아무리 저거 해도 석 달에 한 번씩은 치워야, 일 년에 세 번은 치워야 돼. 아무리 못 치워도. 아무리 깨끗한 물이 들어가도 앙금이며 수도 파이프에서 나오는 쇳물이며 그런 게 들어가면 모두 나쁘다는데 뭐, 엉망이더군.

그러니 이 공부를 했다면 사람들의 머리 쓰는 것이 좀 더 그걸 느껴. 물을 먹을 때도 물을 따르면 벌써 ‘이 물 느낌이 좀 안됐다’ 하면 그런 거를 건의해서 부시게끔 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문제에서 다 이익하게 가져와요. 이 마음공부라는 게 모두 자녀들과 더불어 위로는 부모 조상들, 아래로는 자녀들 또 나아가서는 친구들, 형제들, 부부지간의 문제들을 다 가져올 때 다 커버할 수 있는 둘이 아닌 도리를 안다면 그때에 가서는 모두 전체, 외부의 전부가 둘이 아닌 줄 알게 돼서 여러분이 모든 물리가 다 터지게 되고, 들으면 듣는 대로 그게 법이 되고, 보면 보는 대로 법이 되고, 말하면 말하는 대로 법이 돼요, 한데 떨어지지 않고.

그런데 모두 전화 오는 걸 봐도 그렇고, 글쎄, 어린애 못 낳는 거를 스님한테 가서 참, 근근덕신 이렇게 해서 지금 하나 생겼는데 건강하답니다. 그런데 의사가요, 태반에 무슨 물이 적어서 뭐가 잘못된다고 그랬대요. 그러니 그것이 그냥 걱정이 돼서 잠을 못 잔다니 세상에, 그럴 수가 있어? 여기 와서 공부를 하지 말지, 그러려면!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고 긁어서 걱정 근심을 하고. 세상에 돈이 없고 그래도 진정으로 찾아들 데가 여기야, 음? 돈이 있다고만, 권세가 있다고만 여기 오는 것도 아니고 공부하는 것도 아니거든.

우리 스님네들은 돈 많이 준다고 좋아하지 않아. 그걸 알아야 돼. 돈 많이 주는 것도 돈 있는 사람, 또는 전자에 복은 지었으나 인과응보로 많은 죄를 지었다거나 이런다면 그것은 시주도 해야 하고 정성도 지극하게 해야지. 그건 자신이 살아나가다 보면 자신에 의해서 ‘아, 이런 거는 이렇게 됐으니까 그 값어치를 하고 나는 그거보다 무주상 보시를 받아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다 하는 거야, 있으면. 없는 거를 굳이 빚을 내서 가져오라는 말은 안 하잖아? 빚을 내지 않아도, 당장 먹을 거를 가져와도 가슴이 아픈데…. 그런 게 불교가 아니라니까.

그래 저분이 저기 앉아 있지만 그 동생 남편도 병이 들어서 그렇게 애를 쓰고 그렇게 했지. 병이 나았다고 해서가 아니라 정말 가상하지. 자기의 그 공부하는 마음으로 믿지 않는 사람도 고칠 수 있었으니 말이야. 여기 뭐, 줄창 오는 사람도 아니고 시골 사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이런 사람도 다 인권해서 고치고 그러는데…. 그래서 살아나가는 데도 또 자신이 그걸 알고 그렇게 나가면 가정이 그렇게 유하잖아. 나쁘게 돌아가지는 않는다고. 거기서 더 나쁘게 돌아가지는 않는다고. 이익하면 이익했지, 자식들한테라도.

여러분에게 이익하라고 공부시키는데 어떤 때 엉뚱하게 그렇게 나올 때는…. 내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지. 그 말을 하거나 그렇게 못하거나 나한테 무슨 상관이 있겠나? 하지만 내가 잘 입고 잘 먹고 부자가 되고 돈 벌려고 이렇게 앉아 있는 사람 같으면 아픈 그 눈물이 안 나와. 사랑하니까, 내 아픔과 같이 생각하고 내 몸과 같이 생각하니까 그런 생각도 하고 “이 멍청아! 왜 이렇게,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해?” 하고선 큰소리도 나오지, 사랑 안 한다면, 내 몸과 같이 생각 안 한다면 무엇 때문에 내가 그래야 돼? 그럭하고 살아야 되느냐고, 목 아프게. 바깥으로 믿지 말고 안으로 하나하나 믿음으로써, 나를 끌고 다니는 나의 주인공이 바로 나를 위해서 유(有)의 법이나 무(無)의 법으로 모든 걸 조절하고 나간다고 그렇게 해도 그것을 믿지 않고 그런다면 난들 어떡하느냐 이거야. (중략)

내려올 때는 한마디 할 게 없었는데 여러분하고 같이 앉으면 또 말이 되고 말이 되고 이러거든요. 하, 참 내!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 그러니 여러분이, 날마다 얘기해 드리는 거지만 내 몸속에 있는 중생들 그거부터 제도하기 위해서, 또 살아 있는 내 몸뚱이와 내 가정을 제도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거기다가, 둘로 보지 말고 거기 맡기고 한마음 속에서 나온 거니까 한마음 속에서 해결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진실하게 갖고 거기 다 맡겨라 이거야.

또 타의에서 왔든 자의에서 나왔든 하여튼 한번 발현이 된 사람은 어떠한 그림자가 보이든지, 어떠한 걸 그 안에서 시키든지, 어떠한 것이 들리든지 모든 것을, 거기에서 나오는 거니까 거기다 되놔라 이거야, 또! 이차적으로 또! 거기다 맡기고 살아라 이거야, 거기서 나오는 거니까. ‘응, 들리는 것도 거기서 들리게 하는 거고 보이게 하는 것도 거기서 보이게 하는 거고 시키는 것도 거기서 시키는 거니까.’ 하고 거기다가 다시 맡겨라 이거야. 그걸 그대로 그냥, 바깥으로 보인다고 끄달리고, 들린다고 끄달리고, 시킨다고 끄달리고 이런다면 그건 노예밖엔 더 돼? 응? 항상 이런 말을 하지만 자기 중심으로 기둥을 삼아 하늘을 받칠 수 있는, 땅을 디딜 수 있는 그런 목표를 세우고 가는 거지 아니, 그렇게 들어서 만날 귀신 장난 하다가 말 작정이냐고.

엊그저께 설법할 때는 이 인간이 공부를 하면 인간 이외의 참 광대무변한 에너지가 자기한테 있고 재료가 있으니, 우주 천지가, 이 세상이 다 가설되고 직결돼 있으니까 거기에까지 다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거라고 그렇게 알려 드렸습니다. 그렇게 말 안 하면 요 생활 속에서만 있는 줄 아니까, 여러분 공부하는 목표가 어떤 건지 좀 더 알고나 해야지 아무리 이론이 좋고 학식이 좋다 하더라도, 권세가 좋다 하더라도 이 마음법은 광대무변하기 때문에 따라설 수가 없어. 천체 물리가 터질 수 있고, 천체를 감응할 수가 있고, 천체를 돌아가면서 서로가 서로를 알게 될 수 있고 보게 될 수 있고 듣게 될 수 있고…. (중략)

그러니 여러분이 지금 몸이 떨어지기 전에, 우리가 살면 백 년을 사오, 천 년을 사오? 몸 떨어지기 전에 열심히 해서 이 세상을 다 건질 수 있는 그 마음의 에너지가, 그 능력이 생겨서 요다음에 훨훨 벗고 말이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여건을 가지신다면 어딘들 못 가고 어딘들 보지 못하고 어딘들 듣지 못하겠소. 듣지 못하는 과학자들한테 그런 소리가 들린다고 하면 그, 미쳤다고 하겠지. 그러나 미쳤다곤 하지만 아, 그럴 수 있겠다는 느낌은 느낄 거라고. 지금 얼마나 정신계로 바짝 들어서는 판국인데. 왜 마음으로, 이심전심으로 수억겁이라도 보낼 수 있는, 빛보다 더 빠르게 보낼 수 있는 마음이 있는데 괜히 이거를 눌러서 전파를 보내겠소? 허허허…. 생각을 해도 참 우습지.

그러니까 여러분이 오늘도 생활 속에서 걸음을 걸으면서, 일을 부지런히 하면서, 하면서도 생각하고 생각하면서도 뛰면서 우리는 그렇게 옷 벗기 전에, 이 몸이 쇠약하기 전에 다시 좀 더, 내가 사는 동안까지는 아픈 것도 낫게 하고, 가정에서 불상사 있는 것도 화합을 시키고, 자녀들도 잘못 나가는 거를 올바로 세워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기르라는 거지. 그 능력을 길러 놓으면 하나하나 외축되는 게 없어.

쓰레기 하나를 버리더라도 ‘아, 이래서는 안 되지.’ 하고 그것을 냄새 안 나게 싸서 다 이렇게 해서 똘똘 말아서 꼭 매서 그냥 넣고, 마른 건 마른 것대로 이렇게 버리는 그런 마음이 스스로 생겨. 그래서 남한테 해를 주지 않는 거지. 비록 가난해서 쓰레기는 치우나 냄새 좀 덜 나면 그 치우는 사람도 좋을 거고 병 안 들고, 얼마나 좋은가? 우리네가 조금만 조심한다면….

내가 무슨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느냐고 하겠지만, 그 마음공부라는 게 어느 조그만 거 하나 빠지는 게 있나? 그저 남이 안 본다고 함부로 해서 되나? 자기가 자기 하는 걸 보고 있는데, 허허허…. 안 그렇소? 아, 자기가 병원에 가서 누워서 수술을 하는데 자기가 내려다보고 있더래. 그래서 ‘아, 인젠 살았구나.’ 그랬대. 허허허…. 자기가 자기 몸뚱이를 내려다보고 있더라는 거지. 그러곤 잘못 저거 하면 손을 탁 쳐서 손을 옮겨 주고 그러더라는 거야.

그런 것이 눈에 현상히 보이더라는 거지. 그러니까 ‘살았다, 인제는. 아이, 한마음 주인공 당신이, 바로 이 몸 끌고 다니는 당신이 자기 몸을 이렇게, 이렇게 소중히 생각하는구나.’ 그러면서 수술을 하고 나서 울었다는 거야. 이렇게 소중하게 나를 사랑하고 이렇게 자비를 베푸는 당신이 있는 거를 미처 몰랐다고 하면서 울었다는 거지.

그거는 남편도 되고 내 전 조상도 되고 아버지도 되고 부처도 되고 여러 가지, 엄마도 되고 그런 거야, 그게 본래. 자기 몸 자기가 죽이는 법 없어! 자기 주인공을 믿는데 어찌 자기, 즉 말하자면 아버지나 어머니를 믿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 죽일까, 자식을? 몸뚱이는 자식과 같은 거지. 진짜로 믿고 거기다가 맡기고 그런다면 육신의 모든 이 생명들, 의식들이 전부 한마음이 돼 주면서 아이구 세상에, 요리로 가면 자식이 되고 저리로 가면 아비가 되고 그러니 이게 연방 하나로 돌아가는 거야, 하나로.

이리로 가면 이리로 되는 대로 하나로 돌고 저리로 가면 저리로 가는 대로 하나로 돌고, 일을 할 때는 자식으로서 하나로 돌고 일을 안 하고 있을 때는 아버지로 하나로 돌고 야, 글쎄, 뭐가 부족해서 여기 끄달리고 저기 끄달리고, 들리는 거에 끄달리고 보이는 거에 끄달리고, 온통 야단법석을 해 가지고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냐 이거지.

열 명, 스무 명, 천 명, 만 명, 일억 명, 십억의 귀신이 보인다 하더라도 자기 분신이야, 자기 분신. 자기 분신이지 딴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이 소리야. 그러니까 겁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고, 그것을 전부 합류화시켜서 전부 항복을 받는다는 그러한 뜻도 있잖아? 모든 게 전부 하나로, 자기니까 자기한테 넣는 거야. 거기에 놓는 거야. 그렇게 넣어서 나중에는 다 이게 제도가 돼서 보살이 된다면 그때는 “넣어도 넣어도 두드러지지 않더니 인제는 꺼내도 꺼내도 줄지 않더라.” 이런 게 나오지. 이런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소홀히 해서 되나?

어떤 스님네들은 그러지. 스님은 신도들을 왜 그렇게 열심히 자상하게 가르치려고 애를 쓰시느냐고. 스님네들이나 가르치시라고. 아, 이러는 스님네들이 있지, 저 다른 데. 그런데 스님네들이 따로 있는 게 아니거든. 여러분이 만약에 이다음에 큰 회사를 차려서 중생을 제도하면서, 이런 공부를 가르치면서 해 나가도 중의 행이요, 보살행이요, 또 머리 깎고 중이 돼 가지고 그렇게 해도 행이라 이거야.

어떤 두 형제가 중이 돼 가지고 있으니까 사형 사제가 되지. 이 만법을 깨친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이. 그런데 나라에서 태자가 생기질 않으니까 가서 빌고 빌었어. 빌고 빌고 천일기도를 하고 온통 야단법석을 하니까 “얘, 중생들을 위해서 어떡하니?” 사형과 사제가 둘이 앉아서 “아유, 난 나가기 싫은데, 틀어서 망건 쓰고 갓 쓰고 아유, 버선 신고 이러기 싫은데…. 그 얼마나 고통스럽고 그게 지옥이 아닌가.” 이러고선 둘이 서로 싫다고 싫다고 하니까 구지비끼리를 해서 뽑았단 말이야.

근데 아우가 걸렸거든. “아이구, 이거 할 수 없지, 뭐, 형님.” 그러면서 그냥 들어가서 옷을 벗고 망건 쓰는 데로 갔대요. 허허, 나라로. 그래서 태자가 없으니까 대신 자기가 그렇게 나가 주는 그런 자비도 있어. 그렇게 그 고통 속으로, 지옥 속으로 들어가는 거지, 지금. 그렇게 편안하고 참, 싱그럽고 도도하게 흘러 돌던, 정말 자유스러운 산 부처가 그거를 다 벗어 버리고 지옥고로 들어간 거야, 원하니까. 부처님 법이 이런 거라고.

그런데 남을 해치는 줄도 모르게 해치는 일들을 서슴지 않고 하니 우리가 어떻게 사람이라고 하며 불제자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이거지. 조심해서 우리가 조금만, 신경을 조금만 쓰면 남한테 좋은 일을 하고 나한테 그런 병도 안 오고 남한테 그런 병도 안 가고, 뿌리를 길러 줄 수 있는 그 여건이 그냥 스스로 와, 벌써.

요 한마디만 하고요. 어떤 분은 척 보니까 처음 왔는데도 그 마음이 그렇게 그럴 수가 없어. 나한테 자주 왔다고 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되는 수가 있거든. 척 보면 하나가 돼 버리니까 그렇게 하나가 될 때에는 그쪽이 부족하면, 광력이 부족하면 광력이 갈 것이요, 자력이 부족하면 자력이 갈 것이요, 통신이 안 되면 통할 것이요, 모두가, 불 켜는 데 전력이 부족하면, 마음을 밝히는 데 전력이 부족하면 전력이 갈 것이다 이거야.

그런데 용건만 얘기하지 그냥 웬걸 다 늘어놓으려고 애를 쓰십니까? 왜 자기 자신들의 등불이 밝다는 거를 모르고 그렇게 못 믿고 컴컴하게만 생각합니까? 여러분 모두가 등이 있어서, 자연적인 등이 있어서, 인등이 있어서 항상 밝게 그렇게 켜져 있는데 그거를 못 믿고 남의 등이 더 크고 남의 등이 더 밝고 그런 줄 알고 왜 그렇게 그럽니까. 전력이 부족해서 저거 한다면 전력을 더 넣으면 되고, 그러게 한마음으로 “아이, 스님. 제가 모자라서 이렇습니다.” 용건만 ‘이러합니다’ 하고 그냥 대답하거나 말거나 뿡하니 달아나가면 될 거를, 왜 그것을 대답을 들으려고 하고 온통 야단법석이냐고. 귀가 먹었나, 내가? 말만 하고 돌아서서 나가면 되는 거야, 용건만 그냥 간단히. 그래야 나도 일을 하지! 자꾸 날 붙들고 그런다면 자기가 말해 놓고 내가 어떻게 해? 여유가 있어? 그런 여유가 없는 건 아니지마는 자꾸 붙들고 그러면 외려 그게 무효가 되는 수가 있어요.

내가 소금 팔던 사람을 자꾸 얘기하지만, 그 사람은 돈도 없고 가난해서 당장 소금 한 그릇 이고 나가서 팔아야만 죽이라도 쒀 먹어. 남편은 정신분열증을 앓지, 응? 자식들은 많지. 그러니까 소금 장수를 하다가 너무 무거운 것만 이고 다녀서 자기는 자궁암을 앓지. 이러니 그런 생각이 들겠어요? 여러분이 극단에 처해져 있으면 자기 병이 뭐 어떻고 어떻고 이런 생각 할 겨를이 없다고. 지금 막 남편은 방에다 가둬 놓고 텐트를 치고서 거기다가 자식들을 넣고 이러고 다니는 판국에, 자기가 조금이라도 안 팔고 가면 벌써 애들이 굶을 지경인데 자기 병이고 뭐고 자기 남편이 그렇다 뭐, 이런 생각 할 여지가 없어. 오면 소금 한 공기 탁 퍼 놓고 “스님! 아범이 이렇고 저렇고 그런데 나는 또 자궁암이랍니다.” 그러곤 그냥 뭐, 이유를 불문에 부치고 “글쎄, 그렇답니다.” 그러고 남의 말 하듯 하곤 그냥 달아나가.

허, 얼마나 갸륵하오. 세상에, 갸륵한 거보다도 너무나 극단적이고 너무나 기가 막혀서 나 역시 멍멍히 그냥 쳐다보고, 멍멍히 그냥 바라보고 있는 거지, 뭐. 어처구니가 없어서. 인생이라는 것이 엿가락같이, 고무줄같이 저렇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사는 사람, 그렇게 사는 사람…, 천차만별의 도깨비장난 같은 이런 세월 속에서 아이구 참, 기가 막혀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고.

그런데 삼 일이 지난 뒤에 또 소금을 한 다라를 이고 와서는 또 공기에다 하나 놓고 껄껄껄껄 웃으며 “스님, 아비도 많이 나았고요, 저도 자궁암이, 글쎄, 오진을 했다나요? 나았어요.” 그러고서는 또 가는 거야. 세상에, 이렇게 사람이 급하게 돌아가는 거라고.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탁 치받치면 그렇게 여러분처럼 여유 있게 아이구, 이런 게 이렇게 속 썩이고 이런 게 이렇고, 뭐, 이런 게 없습니다, 네?

그렇게 급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렇게 급하면 그럴 여지가 없죠. 그 뭐, 얘기하고 앉아 있을 사이가 있나요? 외려 그게 그분들한테는, 너무도 내가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고 있는 순간, 아까 얘기했듯 그렇게 한마음이 되고 모두가 한데 뭉쳐지니, 그것이 속에서 그대로 광력으로 그대로 그냥 병을 낫게 하고 그러는 문제들도 있지 않습니까? 이건 불가사의한 문제지만 불가사의한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다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지셨다 이 소립니다.

그럼 인제 그렇게들…, 요새 내리내리 이렇게 말하는데 좀 그렇게 해 보세요. 그렇게 해 보시고 실험하고 체험하고, 우리 열심히 해 봅시다, 어디. (중략)

※위 법문은 대행 스님께서 1991년 8월 20일 일반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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