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광주, ‘不二정신’ 빛났다

김동수 거사·진각 스님 등
민중 아픔 함께 하다 희생돼

지장보살 서원·불이의 발현
갈등·대립 치유하는 원동력

그림=강병호

5.18 정신은 무엇인가
올해 5.18행사 때는 대통령을 비롯하여 여야 정치 지도자들이 대거 광주로 내려갔다. 코로나19 재난 속에서도 옛 전남도청 앞에서 행사를 치렀다. 5.18민주화운동이 공식명칭이다. 그러나 광주시민들이 단순히 민주화운동 차원에서 시위한 것이 아니라 목숨을 내놓고 계엄군의 야만적인 살상에 맞서 투쟁했으므로 5.18민중항쟁이라고 해야 옳다. 5.18민주화운동은 어정쩡하게 보수와 진보가 봉합한 이름일 뿐이다. 올해 같은 분위기라면 잃어버린 민중항쟁이란 이름도 머잖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해본다. 

광주 5.18민중항쟁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그래야 5.18정신을 이야기할 수 있을 터이다. 광주 5.18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민초들의 저항정신을 발현시키고 계승한 항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한국인의 DNA 속에는 국란 때마다 의병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던 것처럼 불의에 맞선 저항정신이 깊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5.18민중항쟁은 백성들이 나라를 구한 임진왜란이나 농민들이 들고 일어난 동학혁명, 학생들이 거리로 나선 4.19의거 등과 맥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 5.18민중항쟁을 민초들의 저항정신의 발현이라고 한다면 광주 5.18정신은 무엇일까. 그 본질 중에 하나는 바로 이것일 것이다. 인류 보편적인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운, 즉 ‘나도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다. 그러니 짓밟지 말라’고 외친 것이 광주 5.18정신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리라. 불가(佛家)의 화법으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다.

5.18항쟁에 가담한 불제자들
불교의 최고이념은 ‘자비(慈悲)’이다. <불교사전>(홍법원 발간)은 자(慈)란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비(悲)란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와 비를 바꾸어 풀이할 수 있다고도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비란 ‘발고여락(拔苦與樂)’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비(悲)를 독특하게 해석하는 분도 있다. 대학시절 문학평론 강의시간에 조연현 교수님으로부터 들었다. 비(悲)를 파자하면 아닐 비(非)자에 마음 심(心)자이다. 즉 ‘아니라고 하는 마음’이 비(悲)이다. 풀어서 말하자면 ‘아니라고 꾸짖거나 심판하는 마음’이 비(悲)의 정신이라는 주장이다.

비(悲)를 ‘심판하는 마음’이라고 본다면 불제자들이 부조리한 사회를 개혁하고 참여하는데 정당성을 갖는다.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 심판하는 마음을 작동하기 때문이다. 5.18민중항쟁 때 불제자들이 그런 마음으로 가담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필자가 살펴본 바로는 몇몇 불자는 시민군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 

필자가 실명(實名)과 실화(實話)로 집필한 다큐소설 <광주 아리랑>(전 2권)에 등장하는 나주 다보사 진각 스님. 광주 증심사 성연 스님. 광주 도심사찰인 원각사의 불일청년학생회 박행삼 지도교사와 대동고의 몇몇 제자가 그들이다. 분명, 이보다 더 많은 불제자들이 항쟁에 참여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여기서는 필자가 자료를 접한 범위 안에서만 소개해보겠다.

1980년 5월 21일은 부처님 오신날이었다. 전국에 계엄령이 내려진 상황이었으므로 조계종 총무원은 5월 17에 실시하기로 한 제등행렬을 취소했다. 광주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청 광장 앞에서 봉축의 탑 점등식만 가졌다. 이때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전남지부장이자 조선대 불교학생회 회장이었던 김동수 거사는 점등식 사회를 보았다. 그러나 5월 17일 밤에 주요정치인과 대학생간부 등을 무조건 연행하는 예비검속이 시작되자, 김동수 거사는 다음날 목포 정혜사로 내려가 피신했다. 그는 조선대 학원자율추진위원회와 민주투쟁위원회 위원이었으므로 예비검속 대상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김동수 거사는 며칠 뒤 목포까지 달려온 시민군 트럭을 타고 광주로 올라와 도청으로 들어간다. 도청에서 그가 맡은 일은 시신확인과 시신안치였다. 시민군 사이에서도 꺼려하는 궂은일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5월 27일 계엄군이 무력으로 도청을 점거하던 날 밤에 동국대 재학생 박병규와 함께 공수부대원의 총을 맞고 쓰러졌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도청을 끝까지 지키다가 죽었을까? 그들은 정말로 죽었을까? 살아도 죽은 사람이 있고, 죽어도 산 사람이 있다는 것이 선가(禪家)의 금언이다. 

두 번째 인물은 진각 스님이다. 진각 스님은 5월 19일 초파일 불단에 올릴 과일을 사러 시내에 나왔다가 계엄군의 만행을 목격하고는 시민군에 합류했다. 계엄군에 붙잡혀 끌려가다가 탈출해 나주 다보사로 내려갔지만 5월 21일 또다시 광주로 올라와 항쟁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무질서를 바로잡고자 시민군들을 모아 플래카드를 제작해서 나눠주었다. 그런 뒤 민간인 적십자 대원이 되어 지프차를 다고 다니면서 병원에서 필요한 피와 산소를 구해오고 부상당한 시민들을 실어 날랐다. 결국 진각스님은 죽어가는 부상자를 지프차에 실으려고 하다가 계엄군의 총에 맞아 반신불수가 됐다.

진각 스님의 도반인 증심사 총무 성연 스님은 5월 21일 불단에 올렸던 떡과 과일을 리어카에 싣고 시내까지 내려와 시민군들에게 나눠주었다. 증심사에서 시내까지는 30리 먼 길이었지만 시민군들에게 정성껏 보시했다. 5월 26일에는 시민궐기대회 연사로 도청 분수대에 올라서서 시민들을 향해 파사현정(破邪顯正)하자고 열변을 토했다. 도심 사찰의 보살들도 나섰다. 원각사와 관음사 신도들이 불단에 올린 공양물을 바구니에 이고 나와 배고픈 시민군들에게 나눠주었던 것이다.

지장신앙과 不二정신
지장보살은 지옥문 앞에서 지옥이 텅 빌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보살이다. 지옥중생을 다 구제하겠다는 것이 지장보살의 서원인 것이다. 그런데 지옥은 어디에 있을까? 지옥은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땅, 혹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지 않을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니 말이다. 

김동수 거사의 눈에는 1980년 5월의 광주가 바로 생지옥이었을 터이다. 그래서 그는 지장보살의 마음으로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시신처리와 안치를 기꺼이 담당했을 것이다. 진각 스님은 무슨 마음으로 적십자 완장을 차고 다니면서 부상자를 실어 나르다가 계엄군의 총에 맞아 반신불수가 되었을까.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행동이다. 유마거사는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라는 금언을 남겼다. 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한 몸이라는 불이(不二) 정신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정찬주/ 소설가

5.18민중항쟁 때 불제자들이 온몸으로 투쟁할 수 있었던 것은 지장신앙과 유마거사가 남긴 불이정신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는 항쟁에 가담했던 불제자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들 각자의 신심을 성숙시켜줄 수 있기에 그렇다.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는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운 5.18정신을 뛰어넘어 미래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사상적 대안을 치열하게 모색할 때라고 여겨진다. 

우리 모두가 지장보살이 되고자 하는 서원과 유마거사가 보여준 동체대비심의 불이정신이야말로 사람들 간의 갈등과 대립을 치유하는 수승한 삶의 지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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