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여 따르라”… 불자들 5.18 기리다

지역 NGO들 매년 추모법회
12년 전부터 주먹밥 나누며
‘5.18공동체 정신’ 기리기도
태고종 스님들 영산재 봉행

‘5.18항쟁 추모’ 사경 발표도
783명 희생자 金사경 ‘눈길’
2m에 달하는 ‘초대형’ 작품
정향자 원장 2년 간 제작해

(사)광주영산재보존회가 5월 18일 국립 5.18묘역에서 봉행한 영산대재. 보존회는 항쟁 이듬해인 1981년부터 지금까지 39년동안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영산대재를 봉행하고 있다.

5월 18일 국립 5.18묘역. 석가모니 부처님의 영산회상을 재현하는 영산대재가 펼쳐졌다.
대령-관욕-상단권공-추모재로 진행된 영산재는 5.18광주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영령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열렸다.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영산재를 봉행한 단체는 광주 무형문화재 제23호 (사)광주영산재보존회(회장 월인)로, 항쟁 이듬해인 1981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39년 간 이어왔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봉행된 영산재에서 보존회원 스님 40여 명은 故 김동수 열사 묘역을 비롯한 항쟁 희생자들의 묘역을 돌며 천도의식을 봉행했다.

보존회 회원으로 영산재에 참여하고 있는 광주 운천사 주지 법진 스님은 “39년 전 광주불교연합회에서 시작됐던 추모 영산재는 현재 (사)광주영산재보존회에서 맡아 봉행하고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영령을 종교를 떠나 추모하는 마음으로 매년 영산재를 열고 있다”면서 “올해에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는 해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다. 보존회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추모 영산재는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12회를 맞는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의 주먹밥나누기 행사.

이처럼 광주 지역 불교계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법회와 행사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는 올해에도 추모의 물결은 이어졌다.  

광주불교연합회(회장 동현)와 광주전남불교NGO연대(대표 도제)는 매년 5월 18일 광주 원각사 대웅전에서 ‘5.18민중항쟁 추모법회’를 봉행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봉행하고 있는 추모법회는 희생자 추모와 함께 5.18정신을 현 시대에 맞게 구현하기 위해 매년 주제를 선정해 열린다. 올해에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환경’을 주제로 개최됐으며,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이 ‘무엇이 지금 이 시대에 희망일 수 있을까’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상임대표 시각)이 민족민주열사묘역(구 망월동 묘역)에서 개최하고 있는 주먹밥나누기 행사도 의미가 크다. 

주먹밥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공동체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역사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주먹밥에 얽힌 사연은 이렇다.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이 도로를 통제하며 광주를 고립시키자 시민군은 당장 먹을 것이 떨어졌다. 그러자, 금남로 주변 재래 상인과 주부들이 나섰다. 이들은 가게와 가정에 있는 쌀을 들고 나와 골목에 커다란 솥을 걸고 밥을 지었다. 

상인과 주부들은 흰 쌀밥에 소금 간을 하고 손으로 꾹꾹 눌러 정성을 다해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들에게 전달했다. 계엄군의 봉쇄로 광주는 고립됐고, 5월 27일까지 도시의 치안과 행정이 모두 마비됐지만, 범죄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40여 곳에 달하는 금융기관도 멀쩡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나눔과 연대가 만들어 낸 결과였다.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공동체 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개최하는 ‘주먹밥 나누기 행사’는 12회를 맞이했으며, 올해에는 5월 17일 개최됐다. 

이해모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은 “1980년 5월 항쟁 당시 대인·양동시장 상인과 주민들이 보여준 주먹밥 나눔과 자발적 시민 헌혈운동은 5.18 공동체 정신을 그대로 보여준다”면서 “나눔과 연대의 공동체 정신은 오늘 날에도 우리가 지켜야 할 5.18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정향자 원장이 항쟁 40주년을 맞아 공개한 금니 사경 작품. 738명의 희생자 명단을 순금으로 쓰고 변상도를 그렸다. 2m에 달하는 초대형 작품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그날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그들의 이름을 써 내려간 금니사경 작품을 발표한 작가도 있다. 

전통 금니사경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향자 난원사경연구원장은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자신이 2년동안 제작한 초대형 감지금니 사경을 대중에 공개했다.  

크기만 가로와 세로 2m에 달하는 이 작품은 738명의 희생자 명단을 순금으로 쓰고 변상도를 그려 넣었다. 변상도는 현재 일본 지은원에 소장된 고려불화 ‘관경십육관변상도’를 모본으로 했다. 16관법을 통해 희생자들이 아미타불이 상주하는 서방 극락정토로 가길 바라는 작가의 기원이 담겼다. 

희생자들을 기리는 만큼 순금분·은분·진주분·석채 등 사경 재로도 최고급으로 사용했다. 사용한 물도 증류수를 사용했다. 2m에 달하는 작품을 제대로 작업하기 위해 연구원을 새로 개원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그가 이 같은 작품을 조성하게 된 이유는 작가 자신도 5.18의 참상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정향자 원장은 “당시 4살 난 아들을 데리고 도청 앞 소아과를 가던 중 젊은 학생들과 청년들이 계엄군의 곤봉에 무참히 두들겨 맞고 끌려가는 것을 목도했다. 아이들 데리고 달리고 달려서 겨우 집에 왔다”면서 “피투성이가 된 시체들을 군인들이 트럭에 실어 어디론가 가는 광경을 보며 서러움이 복받쳤다. 나에게 5월 광주는 부채의식이었고, 2006년 석사학위를 받으며 작품을 구상해 2017년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어 “민주주의를 꽃 피우려다가 안타깝게 돌아가신 영령들의 이름이 영원히 잊지 않고 후손들에게 전하고자 2년에 걸쳐 조성했다. 이들이 극락정토로 왕생하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항쟁 40주년을 맞아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도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서울에서도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이들의 숭구한 정신을 기리는 기도회가 열리기도 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위원장 혜찬)는 5월 18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광장에서 5.18 민중항쟁 희생 영령을 위한 추모기도회를 봉행했다. 5.18민주화운동 서울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이날 기도회는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를 비롯한 5대 종교단체에서 추모 기도를 릴레이로 진행했다.

갑작스러운 폭우와 돌풍에도 조계종 사회노동위원장 혜찬 스님과 사회노동위원 스님들은 반야심경 봉독과 정근을 하며 5.18 민중항쟁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혜찬 스님은 추모사를 통해 5.18 민중항쟁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그간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나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했다. 이는 지금도 부채의식으로 남았다”면서 “앞서 간 이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며 이를 계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이 완전히 밝혀지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앞으로도 광주 영령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활동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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