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무위진인(無位眞人)

“여러분! 바로 지금 눈앞에서 홀로 밝아 뚜렷하게 듣고 있는 자, 이 사람이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시방을 관통하여 삼계에 자유자재해서 일체 차별된 경계에 들어가도 달리 바꿔지거나 변하지 않는 것이오. 한순간에 법계를 뚫고 들어가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말하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말하오.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말하고 아귀를 만나면 아귀를 말하며, 어느 곳이든지 가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국토를 다니면서 중생들을 교화한다오. 그러나 일찍이 한 생각도 떠나본 적이 없소. 가는 곳 어디서나 청정하고 빛이 시방세계를 비추니 만법이 한결 같소이다.”

이 장의 법문은 이른바 무위진인(無位眞人)에 대한 설명이라고 볼 수 있는 말들이다. 지금 눈앞에 홀로 밝아 뚜렷이 듣고 있는 자가 바로 무위진인이다. 임제의 법문을 듣고 있는 자, 임제를 보고 있는 자가 오음색신(五陰色身)으로 된 사람이 아닌 무위진인이라는 말이다. 무위진인은 임제가 특별히 내세운 말이다. 〈임제록〉은 무위진인을 설한 법문이다.

임제가 법을 설하면서 대중을 향하여 듣고 있는 것, 곧 마음을 ‘이 사람’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기 법신(法身)이다. 이 법신을 다른 장에서는 무위진인이라 했다. 이 무위진인은 찾으면 있는 곳이 없다. 그러면서도 언제 어디서나 시공을 다 차지하여 없는 데가 없다. 〈능엄경〉 ‘칠처징심장’ 이야기처럼 몸 안에도 있지 아니하고 몸 밖에도 있지 아니하여 있는 데가 없지만 오온, 십이처 등이 모두 여래장묘진여성(如來藏妙眞如性)이라 하였다. 나고 죽는 생사마저 벗으나 이미 물리적 공간이나 시간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초월적인 것이다. 이것이 시방을 관통하여 한순간에 법계에 들어가 자유자재하다 하였다. 하지만 횡변시방(橫뤝十方)이요 수궁삼제(竪窮三際)인 심체(心體)에서 볼 때는 들어가는 것도 없고 오고 가는 것도 없는 것이다. 마음이 시방법계를 모두 장악하고 있는데 들어가고 나오는 통로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교화의 방편상 무위진인이 세간법에 따라 작용을 할 때는 부처의 입장에서 부처를 설하고 조사의 입장에서 조사, 나한의 입장에서 나한, 나아가 아귀의 입장에서 아귀를 설하지만 심체의 광명이 한순간도 이탈함이 없이 어디서든지 청정하여 시방을 비춘다고 하였다.

부처의 근본이 광명으로 표현되는 것은 부처의 본체인 법신 비로자나가 바로 광명이기 때문이다. 비로자나(毘盧遮那ㆍVairocana)를 의역으로 바꾸면 광명변조(光明뤝照)이다. 〈화엄경〉에서는 주불 비로자나불이 10번을 방광(放光)하는 장면이 나온다. 빛을 놓은 이것이 곧 설법이다. 광명 속에 부처님 세계가 펼쳐지고 보살들이 나타난다. 비로자나불의 국토인 화장세계가 빛의 세계이며 이 빛의 세계 안에 불찰미진수의 세계가 중중무진으로 전개되면서 층층이 향수해(香水海)가 이어지는 장면들이 설해져 있다. 중생을 위한 보살행의 실천의 마음의 빛을 사용하는 것이라 하였다. 본래 중생의 마음이 지혜의 광명이고 자비의 광명이어서 이를 통해 자리이타의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라 하였다.

또 마음을 달에 비유해 설한 법어들도 많이 전해진다. 심월(心月)이라 하여 수행이 높아질수록 더욱 밝다는 것이다.

당나라 때 반산보적(盤山寶積) 선사가 있었다. 마조도일의 제자로 알려진 스님인데 일설에 생몰연대를 720~814로 보기도 하나 정확하지는 않다. 〈전등록〉에 보적의 송구가 전해진다.

心月孤圓 마음 달 둥글게 솟아
光呑萬像 그 빛이 삼라만상을 삼켜버리네
光非照境 빛이 경계를 비추지 않고
境亦非存 경계 또한 있는 것도 아니라
光境俱亡 빛과 경계가 모두 없어지면
復是何物 이건 또 무슨 물건인가?

부처의 세계나 중생의 세계가 모두 마음의 세계이고 마음의 세계는 바로 빛의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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