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설계도

 

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위의 할아버지

큰 할머니 유훈(遺訓) 따라
대대로 살아 온 집

출입구는 남쪽으로
안쪽에는 방 2칸
중앙에는 비워둬서 하늘빛을 들이고
성스럽게 기도하며 따뜻하게 난로 피고

하늘 기운 가득하고 자비가 넘치는 집
후손에게 물려줄 위대한 우리 집

 

<까잘만, 싸이말루이 따쉬>

집의 설계도를 그린 것 같다. 구조는 간단하다. 출입구가 표시되어 있고, 집의 중앙, 그리고 뒤쪽에 안방이 2개 그려져 있다. 집과 함께 그 옆에 산양과 큰 고리 지팡이를 2개씩 그렸다. 숫자로는 두 개씩이지만, 숫자를 넘어서는 다른 뜻이 있을 것 같다.

집의 내부를 그려놓지 않아도 다 알 것 같은데, 왜? 그렸을까? 바위에 새겨 놓을 만큼 중요한 이유가 있었을까? 꼭 지켜야 하는 원칙 같은 것이 있었을까? 예를 들어, 여름이나 겨울에 출입구의 위치도 중요하지만, 집 안에 난로를 놓는 위치, 어른과 아랫사람이 서로 배려하며 지낼 수 있는 공간, 각각의 움직이는 동선(動線) 또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런 몇 가지의 원칙을 하찮게 여겨 지키지 않고, 필요에 따라서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하다보면, 자칫 집이 복잡해지고 거기에 따른 삶이 복잡해질 수 있다. 그래서 기본 원칙은 반드시 지키고, 나머지 작은 부분은 융통성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서, 기본 설계도를 바위에 새겨 놓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꼭 지켜야 하는 몇 가지의 원칙도 단순하게 해야 지키기도 쉽고, 오래 지켜진다. 그래야 삶이 단순해지고 번뇌도 적다.

하늘 기운 가득하고 자비가 넘치는 집
후손에게 물려줄 위대한 우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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