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보성 스님

 

“초심 가야산인 보성(初心 伽倻山人 菩成)” 1967. 11. 18

 

1967년 11월 18일 부산 대각사 청년회 수련대회 때 스님을 처음 뵈었다. 그때 스님이 우리 담당 스님이었다. 스님은 우리에게 절에서 지켜야 할 예법과 2박 3일 동안의 수련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저녁예불과 법문 후 스님은 잣을 가지고 우리가 묵고 있던 홍제암으로 오셨다. 스님께서는 잣을 하나하나 일일이 까주셨고, 우리는 서로 잣을 주워 먹겠다고 용을 썼다. 잣 하나에 그렇게 즐겁고 행복했었다. 스님은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시면서 “그래도 밤 9시에는 무조건 취침에 들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그런데 스님께서 오히려 당신이 말씀하신 그 사실을 잊으시고 계속 잣을 까주시다가 11시가 다 되어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서는 크게 놀라며 부리나케 처소로 돌아가셨다. 스님이 처소로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오래도록 이 얘기 저 얘기 하느라 첫날부터 청규를 어기고 말았다. 이후로 스님을 종종 뵈었는데 스님께서는 인자하신 얼굴로 반기시며 그때의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스님과 주고받은 서신은 없다. 어느 날 스님께서 유묵 한 점을 주셨는데 늘 가르침으로 품고 산다. ‘초심’이라는 두 글자가 바쁘고 부산한 일상을 정리해 줄 때가 많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삶에 이끌려 살다보면 경전에서 배우고 법당에서 들었던 법문들이 무색하게 ‘나’를 잃어버릴 때가 많다. 절에 가는 일도 그저 가야하니까 가고, 법회 갔으니 법문 들어야지 하면서 귀로만 듣고, 귀로만 들었으니 마음에 쌓인 것은 하나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갈 때 스님의 유묵 ‘초심’이 떠오른다. 스님께서는 왜 많고 많은 글 중에서 ‘초심’이라는 두 글자를 주셨을까. 두 글자가 본래 품고 있는 뜻도 귀한 것이지만 스님의 의중도 또한 귀한 것이라 생각된다. 무언가 하나를 주더라도 꼭 필요한 것을 주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 이거 하나면 다 되는, 그런 걸 주시고 싶었던 것 같다. ‘초심’이라고 읽고, ‘처음 먹었던 마음’이라고 마음으로 그 뜻을 떠올리면 복잡하고 산란했던 마음이 ‘리셋’ 되는 느낌이다. 그럴 때면 ‘초심’이라는 두 글자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무릇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고자 처음으로 마음먹은 이(초발심자)는 모름지기 나쁜 벗(계율을 지키지 않고 세속적 욕망을 즐기는 이)을 멀리하여야 한다. 반면 계행이 청정하고 지혜가 밝은 벗을 가까이 해야 한다.”

출가자가 출가하여 처음으로 보는 <초발심자경문>이다. 스님들을 위한 경문이지만 가슴에 와 닿는 문장들이 많다.

“병든 이가 있거든 모름지기 자비심으로 돌보아 주고, 손님을 보거든 모름지기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고, 웃어른을 만나거든 지극히 공경하는 마음으로 비켜서야 한다.

음식을 받는 것은 다만 이 몸뚱이 말라 시드는 것을 다스려 도업을 성취하기 위한 것인 줄 잘 알아야 하며, 모름지기 <반야심경>을 호념하되 무주상 보시의 청정함을 생각하여 도에 어긋남이 없도록 할 것이다.”

산문에서 지녀야 할 문장들이지만 산문 밖에 사는 나와 같은 불자들에게도 필요하고 해야 할 일들을 적고 있어 읽을 때마다 삶의 좌표를 다시 잡을 수 있게 된다.

절에 가고, 스님들 뵙고, 경전 보고 하는 일들이 하나하나 공부 아닌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스님의 의중이 무엇이었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산다. 모든 것이 공부 아닌 게 없다.

1987. 여름에 보성 스님(왼쪽)과 함께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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