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性, 성불의 근원·근거·가능성
佛性, 성불의 근원·근거·가능성
  • 현불뉴스
  • 승인 2020.05.1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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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대승불교시기 불성론 발전과정

‘죽음’의 공포 극복 ‘불성론’ 부상
무량한 번뇌가 여래성 덮어 있어
초기 대승의 중요 의제 ‘반야사상’
“여래장은 허공의 새 발자국 같아”

 

불성은 성불의 원인 근거 가능성의 문제이다. 불성에서 ‘性’의 원문은 ‘界’이며, ‘因’이라는 뜻도 있다. 불성의 근원은 ‘심성본정(心性本淨)’, 즉 ‘성정지심(性淨之心)’의 사상이다. 이러한 것은 일체중생이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불의 가능과 근거가 된다.

불성론은 불교의 인성론이다. 인성론의 탐구는 인간의 본질과 속성이 무엇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인성은 선인가? 아니면 악인가? 아니면 무기(無記ㆍ不惡不善)인가 등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 불성론의 관심은 무엇이 불성인지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이후 이러한 문제의식은 사상적으로 성불의 가능성을 지닌 이론으로 발전되었다. 불교는 일체중생이 불성을 모두 지니고 있으며, 불성은 성불의 가능성 및 종자, 근원이 된다고 가르친다. 불성은 또한 여래성, 각성, 여래장 등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불성의 본뜻은 깨달음을 이룬 ‘불타’가 구비하고 있는 본질이자 속성이기도 하다.

인생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생로병사’를 거친다는 것은 조금만 사유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두렵다. 특히 원하던 원하지 않던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이 죽음은 생명과 함께 항상 같은 묶음이다. 즉 빛과 그림자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사람은 누구나 아프거나 늙거나 죽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프고 늙고 죽는 것을 원치 않고, 그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해탈 성불하라고 불교는 가리킨다. 그러면 영원히 태어남을 반복하지도 아프지도 늙지도 않으며, 죽음이 없는 세계에 정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영원한 이 세계에 정착하기 위해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곧 성불하는 길이며 곧 불성을 깨닫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의 과정에서 탄생된 것이 바로 불성론이다. 때문에 ‘일체중생개유불성’이라는 개념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봉건제도하의 계급사회에서 피지배계급자들에게 더욱더 희망적인 메시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림, 강병호
그림, 강병호

 

부처는 다겁생의 수행정진을 통해서 정각을 이루었다. 〈화엄경〉에 보면 ‘심불급중생시삼무차멸(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이라는 말이 있다. 심과 부처와 중생은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본질적인 입장의 이야기이다. 또 불성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생각해보면 조금은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부처나 중생이나 동일한 불성을 가지고 있는데, 왜 나는 중생이고 부처는 왜 부처일까? 라는 의구심을 가져 볼 수 있다. 이 해답으로 경전에서는 부처는 과불성(果佛性·佛)이고, 중생은 인불성(因佛性·중생)의 상태라고 한다. 사실 여래장과 불성은 또 다른 의미의 이명(異名)이다. 따라서 여래장을 논할 때도 역시 염(染)의 각도에서 여래장은 중생이요. 정(淨)의 각도에서 여래장은 부처라고 한다. 그러면 이러한 사상적인 논리들이 수립되기까지는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 개괄적으로 살펴보겠다.

먼저 본연부 경전에 속하는 〈앙굴마라경〉에서 정의된 불성의 개념을 살펴보면 “不生이 불성이다, 진실성이 불성이다. 상성(常性)이 불성이다. 항성(恒性)이 불성이다. 불변역성(不變易性)이 불성이다. 적정성(寂靜性)이 불성이다. 불괴성(不壞性), 불파성(不破性)이 불성이다. 무병성(無病性), 불로사성(不老死性) 불성이다”고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불성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다만 이러한 불성이 우리 모두에게 구비되어 있지만 작용을 못하는 것은 바로 “무량한 번뇌가 여래성(如來性)을 덮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불성은 번뇌 가운데에 주한다. 마치 병 가운데의 등과 같아서 병이 깨지면 나타나는 것과 같다. 여기서 병은 번뇌이고, 등은 여래장이다 …. 비유하자면, 일월이 빽빽한 구름에 덥혀서 광명이 드러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가린 구름을 제거하면 광명이 나타나서 비춘다. 여래장도 이와 같다”고 〈앙굴마라경〉에서 설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불성과 여래장은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기 대승불교의 중요한 사상적 의제는 반야사상 즉 중관사상이다. 중관사상을 대승반야학 혹은 중관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포괄적으로 볼 때 중관사상의 핵심적 개념으로 연기성공(緣起性空), 반야성공(般若空性), 성공환유(性空幻有), 무자성(無自性), 성공(性空), 중도실상(中道實相), 제법실상(諸法實相) 등을 꼽을 수가 있다. 먼저 공하기 때문에 일체만법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중관파의 견해이다. 즉 “일체제법이 곧 불법이다. 이 법은 법도 아니고 비법도 아니며, 자성이 空한 연고이다(一切法섦是佛法,此法非法非非法,自性空故)”고 했는데, “반야부는 일체가 공하기 때문에 제법현상을 설할 수 있다고 했다. 곧 〈중관론〉에서 보면 “공의 뜻이 있는 연고로, 일체법을 이룰 수 있으며, 만약에 공의 뜻이 없으면 일체를 곧 이룰 수가 없다(以有空義故, 一切法得成. 若無空義者, 一切則不成)”고 했다. 즉 인간을 포함한 일체사물 및 현상은 무자성으로 실체가 없고 단지 인연과 조건이 모여 일시적인 가립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연기성공(緣起性空)이라고 했다. 때문에 〈중아함경〉에서는 “만약에 연기를 보면 곧 법을 보는 것이고, 만약에 법을 보면 곧 연기를 보는 것이다”고 하기도 했다.

또 공한 성품은 환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성공환유(性空幻有)’라고 부른다. 비록 가립으로 형성된 세계이지만 가립으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유상즉(空有相卽)이 되어야 하지만 비로소 제법현상이 이루어진다. 즉 인간이 형성된 것은 수많은 업연 및 여러 가지의 인연조건이 합성이 되어서(사대오온의 가합체) 이루어진 집합체라면, 모든 사물들 역시 많은 요소들이 모여서 구성된 형상들이다.

따라서 인간이 존재하게 된 구성요소 및 본질과 사물이 형성 되어진 제법현상의 근원을 확실하게 깨닫는 상태가 바로 반야성공(般若空性)의 경계이다. 이 반야성공(般若空性)의 상태를 제법실상, 중도실상(中道實相), 반야실상(般若實相). 무소득(無所得)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종경록〉에서 보면 “성공(性空)은 제법의 실상이다. 실상을 보면 고로 정관(正觀)이 된다”고 했으며, 또 “곧 알라! 제법의 실상 가운데 들어가면, (일체가)불생불멸이다”고도 했다. 그래서 공을 표현할 때 ‘비공비유(非空非有)’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개념들은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한 언어명자의 방편적인 개념일 뿐이다.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추론해서 얻어지는 경계가 아니다. 즉 체험의 과정을 통해서 수립되어진 경험론적 언어개념들이다.

다시 연기성공(緣起性空)이기 때문에 비공비유(非空非有)가 된다고 한다. 이 비공비유의 또 다른 표현으로 진공묘유(眞空妙有)를 말한다. 진공묘유에서 진공이 제법현상의 본질이 된다면, 묘유는 곧 제법에서 현상 및 작용을 가리킨다. 즉 진공한 상태인 깨달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묘유를 통해서 현상의 작용을 설명한다. 이 묘유한 작용이 곧 심의 작동이며, 이 심을 다른 말로 심성(心性), 불성(佛性) 혹은 여래장(如來藏)이라고도 한다. 〈앙굴마라경〉에서 말하기를 “일체 천인(天人)을 위해서 설하기를 여래장은 마치 허공의 새의 발자취와 같다. 불성으로 하여금 현현(顯現)하게 한다. (그러나)生은 있지만 몸(형상)은 볼 수 없다”고 하였는데, 곧 이 의미는 여래의 성품을 굳이 불성으로 나타내 보이지만, 실제로 불성이 형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금강경〉에서 “무릇 있는바 형상은 모두 허망하다. 만약에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본다면, 곧 여래를 본다(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고 하는 구절과 일맥상통하고 있으며, 이 표현은 최고의 정점을 찍은 표현이기도 하다. 여기서도 강조하는 것은 “불성은 각자 깨달음의 경계이며, 각자의 체험의 세계라는 것”이다. 반야부의 이러한 공성체계의 논리 역시 불성론이 형성되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이러한 상태를 선종은 “신령스러운 한 물건” 혹은 “소소영영한 자리”라고 하면서, “명자로도 얻을 수 없고, 모양이나 형상으로도 얻을 수 없다(名不得 相不得)”고 표현하고 있다. 역시 이러한 표현은 개념과 논리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체험 즉 경험에서 얻어진 개념들로서, 모두 체험의 경계를 말하는 것이다. 특히 선종에서 무수이수(無修而修), 무념이념(無念而念), 무상이상(無相而相) 등의 표현을 자주 쓴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곧 반야부 계통의 논리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많은 반야부경전이 대부분 초기 대승불교시기에 성립되었다. 따라서 반야중관사상은 사변적 논리를 토대로, 본성의 개념을 분석하는 것이 주된 핵심이라면 반대로 유가유식은 인명논리를 토대로, 본성의 개념을 추리하는 형식을 골자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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