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제거, ‘상실’ 인정서 시작
두려움 제거, ‘상실’ 인정서 시작
  • 최훈동/ 한별정신건강병원장
  • 승인 2020.05.15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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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마음과 두려움

10-1 명상을 하면 제일 먼저 만나는 현상 가운데 소란한 마음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마음이지요. 생각들은 끊임없이 떠올랐다 사라져갑니다. 어느 한 생각이 고정되어 머무르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대체로 명상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집착하지 않는 현재를 온전히 경험하는 것으로 ‘지금 여기’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여기 바로 이 순간만 강조할 때 위험이 따릅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는 시공간적으로 고정된 찰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정된 결과로서 또는 상황으로서 보는 시각은 창조론적 관점입니다. 명상의 바라봄은 연기관입니다. 연기론적 관점은 찰라를 보는 게 아니라 찰나의 흐름, 즉 일련의 역동적 흐름 보는 것을 말합니다.

상처 대한 방어적 반응이
두려움으로 전개·확대돼
실패와 상실에 대한 우려
떨치면 새로운 자유 나와

10-2 산란한 마음은 두려움에 떠는 마음, 환상이나 백일몽같은 망상하는 마음, 과거를 후회하는 마음,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 등등 여러 잡다한 생각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남을 원망하고 탓하는 마음과 자신을 책망하고 비하하는 마음도 포함되고 자신을 합리화하고 상대를 벌하는 마음도 있군요. 이 모두의 뿌리를 한번 찾아보실까요? 무엇이 소란한 마음 배경에 도사리고 있나요? 삶을,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경험할 수 없게 뒤덮어버리는 소음의 원천은 무엇인가요?(잠시 눈을 감고 숙고해봅니다. 1-2분)
이러한 잡다한 생각들의 배경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도사리고 있군요. 무언가를 잃을까봐, 실패할까봐, 상처 받을까봐, 버림 받을까봐 두려움에 떤 나머지 반응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소음의 정체이군요. 인정받지 못하고 비난 받은 데 대한 아픔이 너무 컸기 때문에 이러한 반응을 하고 있음을 봅니다.

10-3 이렇게 마음은 상처에 대해 방어적으로 반응하는데 익숙해진지 오래여서 인류 시작부터 수많은 위험(물리적)과 위협(정신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방어 기제를  사용합니다. 명상은 이것을 잘 들여다 보아 이 방어체제를 해체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해체 작업은 현재 불편한 감정 상태 또는 감각을 바라보고 경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정신적 또는 신체적 고통을 없애려고 버둥대거나 도망치기 급급하기가 아니라 자애롭게 받아들이고 자애롭게 바라보고 자애롭게 안아주기입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절망의 낭떠러지로 몰고 가는 감정상태입니다. 살아오면서 느꼈던 또는 느끼고 있는 두려움을 대면해보겠습니다. 눈을 감고 호흡을 바라보고 천천히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면서 온몸의 긴장을 풉니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대로 감각을 느껴봅니다. 이제 삶을 돌아봅니다. 나에게 극심한 두려움을 일으킨 상황을 떠올려 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났으며 내면에서는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되도록이면 슬로우 비디오 틀듯이 과정 과정을 봅니다. 어디까지가 외부 상황이고 어디서부터 내면의 작용인지 알아차려 봅니다. 처음엔 구분해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잠시 호흡을 바라본 후 다시 두려움 상황으로 돌아갑니다. 어떤 이는 건강에서, 어떤 이는 경제적 문제로, 어떤 이는 관계의 파탄으로, 어떤 이는 중요한 시험으로, 어떤 이는 법적 문제로, 어떤 이는 특정 대상 또는 공간에서 느끼는 공포로, 죽음의 위협 등등으로...
이런 외적 상황은 다양하지만 마음이 일으키는 내면의 반응은 동일합니다. 어떤 과정들이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지 깊이 바라봅니다.

10-4 우선 두려움의 실제 모습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군요. 어려서는 실패해도 두렵거나 수치스럽지 않았지요. 언제부턴가 우리는 실패에 대해 그렇게 길들여졌습니다. 그 상황을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걸음마를 배울 때 아무리 넘어져도 부끄럽거나 실망하지 않았지요. 줄기차게 다시 일어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호기심과 끈기가 자연스레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위축되고 실패해서는 안 되고 실패하면 바보 멍청이가 되고 만다고 결론 내렸지요. 아마도 식탁에서 식사 훈련부터 그리고 배변 훈련 무렵부터 수치심을 느끼기 시작하였지요. 부모로부터 시작된 길들이기가 가혹하면 할 수록 이 수치와 길들어짐은 강화됩니다. 가정 다음엔 학교가 그것을 강화시키고 친구들이 그리하고 조직이나 사회가 그리하지요.

10-5 이 상처를 마음 속에 갖고 있으면 고통스럽기 때문에 이를 무의식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어버리고 망각해버립니다. 표면 의식에는 길들임(조건화 기제)만 남게 되지요. 실패가 예견되는 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그 아픈 상처를 다시 받고 싶지 않기에 두려움이라는 공포반응으로 처리합니다. 상황을 외면하는 방법은 대체로 혼비백산하는 형태로 상황을 돌파하는 대신 피해버리기 모드를 작동합니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작동되기거나 남을 탓하고 비난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 또한 공포 반응이란 것을 깨닫기 어렵습니다. 무의식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지 않으려 해도 통제 불가능합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렇습니다, 상처받은 상황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상황을 무의식에서 떠올려 그 때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는지 안아주어야 합니다. 충분히 경험되지 않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계속해서 현재를 망가뜨리고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억압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대면하는 길, 이 길만이 조건화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입니다. 자신에게 의지하라는 말의 진정한 뜻이기도 합니다. 혼자서는 힘들어 스승 또는 전문 지도자로부터 안내를 받아야 합니다.

10-6 두려움의 또 다른 실상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지요. 건강을 잃을까 봐 재산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정신적 물질적 신체적 지배권(통제력)을 상실하게 될 것을 겁낸 나머지 미리 죽음을 결행하는 경우까지 발생합니다.
이것을 더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그런데 이 두려움은 사실이 아니군요. 내가 만든 가정입니다. 실제 상황이 아니라 마음이 결과를 상상하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음을 봅니다.
결국 자기가 지어낸 환상을 실제로 믿으면서 연출된 일련의 과정임을 보아야 이 두려움이 실제가 아닌 내가 만든 허구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떤 소년이 어둠이 찾아온 저녁 늘 다니던 골목길 저 앞에서 뱀을 봅니다. 무서움에 떤 나머지 그 길을 가지 못하고 되돌아섭니다. 이튿날 아침 어제 그 뱀이 있을까봐 확인해 봅니다. 뱀 비슷한 게 있는데 한참 동안 지켜봐도 움직이지 않아서 조금씩 가까이 가 봅니다. 마침내 뱀이 아니라 새끼줄임을 알게 되자 그 새끼줄을 오히려 밟으며 지나갑니다. 

이 소년의 가정법은 우리의 자화상이군요. 실상을 자각하면 어린 아이의 때 묻지 않은 상태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넘어져도 곧장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넘어지는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세요. 새끼줄을 뱀으로 가정했음을 바라볼 수 있으면 여유가 생기고 또 넘어져도 그닥 고통스럽지 않게 되어 어떤 상황도 직면할 용기가 생깁니다.

10-7 연전에 동경대 출신 스님의 〈생각버리기〉가 베스트셀러였던 적이 있습니다. 생각 버리기나 생각 없애기 또는 생각 안하기 등은 생각에 대해 부정적 견해에 입각한 발상입니다. 선가에서도 생각은 없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생각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예, 생각 바라보기입니다. 생각에는 부정적 생각도 있지만 긍정적 생각도 있습니다. 양자를 다 바라보고 관조하면 부정적 생각은 힘을 잃고 사라지고 긍정적 생각은 힘을 얻어 통찰로 발전합니다. 문제는 부정적 생각입니다. 삶을 암울하게 만들기 때문이지요. 부정적 생각의 배경에는 현실에 대한 불만족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은 과거로 치달립니다. 과거의 상처, 불행, 원망과 후회 등. 잊어버리고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들은 힘이 강력하여 없애려하면 할수록 더욱 힘을 얻습니다. 좀체로 떨쳐내기 어렵습니다. 미래에 대한 설계까지 합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 실패하지 않으려는 조바심이지요. 미래에 대한 환상적 기대 역시 현실에 대한 보상 방어입니다. 이렇게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주름잡으며 우리 마음을 호령합니다. 부풀려지고 뒤틀리고 채색하고… 나의 의지와 통제를 벗어나 망상 수준에 이르기도 하지요.
반면 긍정적 생각들은 능동적이고 자신의 통제하에 있고 창조적이고 성찰적이며 직관적입니다. 이들은 학문적 발견이나 발명, 학문적 예술적 작품의 결실을 가져오기도 하지요. 예지로운 생각은 삶의 나침반이 되고 빛이 되기도 합니다. 

10-8 명상은 이러한 생각들, 부정적 긍정적 생각 모두 그대로 놔두고 바라보라 합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윽히 관조하면 부정적 생각들은 처음엔 따라잡기 어렵지만 서서히 힘을 잃습니다. 무질서에서 질서가 잡히고 안개같이 몽상적이던 것들이 형태와 윤곽이 분명해지면서 그 연원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대체로 과거의 아픔과 관련되어 기억이 떠오르고 그 장면에서 감정이 되살아나고 그 감정을 재경험하면서 당시의 아픔을 추스리게 되면 사건을 임의로 부풀린 전개과정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채색되고 어떻게 비틀어서 변형시킨 것인지를 확연히 알게 되면 부정적인 생각들은 나를 깨우치기 위한 천사임을 알게 됩니다. 생각은 버릴 것이 아니고 없앨 것도 아니군요. 저절로 사라지도록 지켜보아야 할 명상 대상입니다.
 좋은 생각만 하고 나쁜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하면 나쁜 생각들이 억눌려 숨게 되고 그리되면 무의식에 갇히어 몸부림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부정적 에너지들이 무의식에 자리하면 마음은 자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주고 바라보면 에너지 수위가 점점 낮아집니다. 에너지가 소진되면 더 이상 준동하지 않게 되어 마음이 비워지지요. 이것이 진정한 마음비우기입니다.

생각에 차별을 두지 말고 
현재 일어나는 생각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고 관조하라.
호흡과 함께 관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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