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미얀마 지도자들의 불심 1

신심깊은 지도자들의 통치
통합·독재 등에 불교 이용
우누, 불교를 국교로 제정
불자였던 네윈, 국교 폐지
테인세인 총리는 단기출가

사진 왼쪽부터 우 누 초대국무총리, 딴쉐 장군, 군부정권의 시작을 알린 네윈.

한반도에서 고려시대까지 융성했던 불교는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민중들과 함께했던 삶 속에서 벗어나 산으로 가야만 했다. 미얀마의 불국토인 바간(Bagan)을 바라볼 때 마다, ‘조선시대 이전 시대를 살았던 우리나라의 왕들의 불심이 이처럼 깊었겠지’라며 아쉬운 마음을 스스로에게 토로해 본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얀마는 과거 약 천년 전의 바간 시대때부터 현재까지 미얀마 지도자들의 불심은 매우 깊다. 미얀마 고대 왕들과 함께 했던 과거의 깊은 여행에서 잠시 벗어나 현대의 가까운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미얀마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그 중 하나가 ‘식민지 시기’를 겪은 점이다. 미얀마는 영국과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미얀마 사람들의 불심은 영국의 식민지 시기에도 꺼지지 않는 촛불과도 같았다. 미얀마 사람들과 식민지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소 깜짝 놀라는 부분이 있다. 미얀마 사람들의 대부분이 영국과 일본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없다는 점이었다. “두 나라를 미워하는 감정을 마음 속에 담아 두지 않는다”는 다수의 미얀마 사람들의 대답은 지금까지도 나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미얀마를 식민 지배를 했던 나라에 대해 미얀마 사람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은 불교 문화와 관련이 있다. 미얀마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Lobha(탐)’ ‘Dosa(진)’ ‘Moha(치)’인 삼독을 자신의 마음에 두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자각하고 수행한다. 그리고 특히 삼독이 많은 사람들을 미얀마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일상생활 속에서도 자신과 가까운 사람으로 두지 않으려고 한다. 이러한 불교 문화가 미얀마 사람들이 영국과 일본에 부정적인 감정을 현재 많이 갖고 있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우 누 초대국무총리의 불법사회주의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1948년에 초대 국무총리로 우 누(U Nu)가 임명되었다. 우 누는 늘 새벽 4시경에 일어나서 수행을 할 정도로 매우 불심이 깊은 불교 신자이자, 독립운동가 중의 한 명이었다. 우 누는 영국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혼란해진 사회를 ‘불교’를 구심점으로 삼아 통합하려고 노력했다.

우 누는 우 버쉐(U Baw Swe)에게 영향을 받았다. 우 버쉐는 불교를 민족주의 및 반식민지주의 운동과 동일시 여겼으며 불법사회주의라는 이름을 붙여 불법사회주의 경제관으로 발전시켰다. 우 버쉐는 미얀마어로 스탈린에 대한 글을 썼는데 이 글의 제목이 ‘Stalin-Builder of Lokka Nibban’이었다. 한국어로는 ‘스탈린- 세상(인간들의)의 열반을 만든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 누는 사회적인 통합을 위해 불교를 중심으로 잡았다. 135개가 넘는 소수민족과 다양한 계층, 그리고 사상적으로 나눠진 사람들을 통합할 수 있는 축이 불교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얀마의 사회적인 상황으로 불교와 민주주의 제도, 사회주의 경제를 혼합한 우 누의 불법사회주의(Lokka Nibban, 세상 열반)가 탄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불법사회주의에 대한 우 누의 사상이 명확하지 않아 이 정책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 했다.

우 누는 불심이 매우 대단했는데, 그의 임기 중 미얀마 정부기관으로 ‘종교부’가 만들어졌다. 또한 1954년~1956년에는 제 6차 결집을 양곤에서 개최했다. 우 누의 제 6차 결집은 전륜성왕이 되기를 희망했던 그의 소망을 절실히 보여주는 일이다.

우 누는 자신의 인생에서 출가를 7번을 했으며, 국립학교에는 학생들이 경전을 공부할 수 있도록 정책을 입안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불심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게 되었다. 자신이 전륜성왕으로 국민들에게 각인 되기를 원하던 그의 소망이 올바른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없게 했다. 결국 그는 미얀마의 암흑기를 선사한 군부정권의 시작을 알린 네윈(Ne Win)에게 자리를 뺏기고 말았다.

미얀마의 암흑기, 군부정권

미얀마에 암흑기를 선사한 군부정권의 마지막 총리 테인세인. 그는 퇴임한 뒤에 단기출가로 부처님 법에 귀의했다.

1962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네윈은 정권을 잡자 마자 군부정권의 독재를 위해 정치에서 종교의 힘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1961년 우 누가 불교를 국교로 지정한 것을 폐지했다. 또한 조금이라도 민주적인 기관들은 해체 했으며 자신을 중심으로 수직적인 권력구조를 형성했다. 1962년 4월 30일에 네윈은 ‘버마식 사회주의’라는 정책을 발표했다. 버마식 사회주의 이념 안에는 불교, 민족주의, 마르크스 사상이 섞여져 있었다. 이 사회주의 정책으로 인해 미얀마 경제는 최빈국의 상태로 떨어지게 되었다.

네윈은 자신의 독재정치를 위해 불교 국교를 폐지했지만, 신심이 깊은 불교 신자이자 미신을 믿는 자였다. 그는 불교와 더불어 미신을 굉장히 믿었는데, ‘마하 위자야(Maha Wizaya) 파고다 건립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80년에 쉐다곤 파고다에서 5분 정도 걸리는 위치에 마하 위자야 파고다를 건립했다. 원래 파고다를 세우려고 했던 곳의 위치가 좋지 않다는 점쟁이의 말 한마디에 그는 파고다의 위치를 옮겨 지었다.

바간 왕조 때부터 전륜성왕을 꿈꾼 미얀마의 왕들은 자신의 공덕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파고다를 건립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네윈은 과거 미얀마의 왕들의 행동을 따라하는 것에서 군사정권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찾으려 노력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미얀마 마지막 왕조인 꼰바웅(konbaung) 왕족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혈통이 깊은 지도자의 입지를 굳건히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미얀마의 과거 왕들은 승가로부터 인정을 받았으며 자연스럽게 스님들은 왕들의 왕사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네윈의 경우에는 올바르지 못 한 방법으로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승가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 했다. 승가의 인정을 받지 못 하면 미얀마 국민들에게 ‘진정한 지도자’로 인정과 지지를 받기가 힘들다.

미얀마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미얀마 사회와 문화를 자세히 인지하고 있던 네윈은 정치에서 직접적인 승가의 힘을 분리하기 위해 불교를 국교에서 폐지했다. 또한 자신의 정권을 정당해줄 어용 승가를 조직적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분위기를 조성했다.

미얀마 승가와 국민들에게 네윈의 이러한 정치적인 처세는 한 마디로 ‘눈 감고 아웅’ 하는 격이었다. 네윈은 불교개혁이라는 목적으로 총 3회에 걸쳐 승려 정화를 비롯하여 승려증이라는 제도를 만들어서 미얀마 승가와 국민들의 많은 반발을 샀다. 네윈은 자신의 입지가 나아지지 않자, 미얀마 고승들에게 물질적인 거액의 보시를 하며 자신의 편에 서주기를 바랬다.

미얀마 고승들이 네윈을 미얀마 지도자로 지지해주기 시작하면 미얀마 국민들이 자신에게 반발하는 명분을 찾는 것이 어려워 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얀마 승가는 잘못된 방법인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네윈을 비롯한 군부정권의 편에 서지 않았다.

정치적 변화에도 법향 이어져

미얀마 국민들의 군부정권에 대한 분노가 표출된 8888민주화 항쟁은 미얀마 국민들뿐만 아니라 승가도 큰 역할을 했다. 8888민주화 항쟁으로 물러나게 된 네윈은 자신의 측근인 쏘마웅(Saw Maung)장군에게 자리를 넘겨줬다.

쏘마웅 또한 미얀마 왕조와 관련된 불교 정통성을 이어 받으려는 집착이 굉장히 강했는데, 본인이 미얀마 바간 왕조의 짠싯타 왕의 화현(化現)이라고 주장했다. 딴쉐(Than Shwe)장군 또한 네윈처럼 네피도에 우빠다딴(Uppatasanti) 파고다를 건립하였고, 미얀마 군부정권의 마지막 총리인 테인세인(Thein Sein)은 퇴임한 뒤에 단기 출가를 하여 부처님 법에 귀의했다.

약 천 년 전 시작된 미얀마의 불교는 현재 전반적인 부분에 걸쳐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대와 정치의 형태만 부처님 법인 ‘무상’에 따라 변했을 뿐, 미얀마에서 부처님 법의 향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2020년을 살아가는 오늘도 미얀마에서 불교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며, 미얀마 사회와 문화 그리고 정치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미얀마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싶으면 그들의 마음 속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불교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양곤대 박사과정>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