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법정 스님 가정관

 법정 스님의 유골이 묻힌 곳. 현대불교 자료사진.

들과 뫼가 파르라니 물드는 오월이다. 자연의 달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오월에, 사람들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부부의날을 들어앉히고는 가정의 달이라 한다.

우리에게 가정은 무엇인가? 법정 스님은 “가정이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 이해와 사랑으로 엮인 영원한 공동체다. 가정은 우리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곳, 우리가 없으면 우리를 기다리며 그리워하는 곳,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될 수 있고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아늑하고 따뜻한 보금자리(1995)”라고 말씀했다.

부처님 공양 마음가짐
주변인 대함과 같아야
부부·가족 연결 핵심

그런데 도시 사람들은 어째서 바깥으로만 돌까? 스승은 2005년 길상사 봄 법석에서 말씀한다.

“흔히 집은 있어도 집안은 없다고 한다. 식구끼리 대화도 단절되고 있다. 대화가 끊어지게 되면 가정은 삭막해진다. 요즘 이혼하기를 식은 죽 떠먹듯 한다고 들었다. 이혼한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다. 왜 하필이면 내가 그런 여자, 이런 남자를 만나서 고생을 하느냐고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선을 잘못 봐서, 순간 잘못 선택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왜 그 사람을 만나서 그렇게 사는 걸까? ‘업’으로 얽힌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업을 고치지 않고는 매듭이 풀리지 않는다. <화엄경>에 ‘마음과 부처와 중생은 결코 차별이 없다’라고 나와 있다. 표현만 다르지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니 부처와 보살을 밖에서 만나려 말고 집안으로 불러들일 수도 있어야 한다. 식사 준비를 할 때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다는 마음으로 하고, 차를 내릴 때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다는 마음가짐으로 해 보라. 퇴근해 집에 돌아오는 이를 부처님이 돌아오신다고 반겨 보라. 그러면 썰렁한 가옥이 정이 넘치는 가정으로 바뀔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이는 집에 있는 이를 부처님으로 여기고, 월급을 내놓으면서 부처님께 공양 올린다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가정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고
거절당할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아늑하고 따뜻한 보금자리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부부가 서로를 부를 때 내 아내, 내 남편이라 하지 않고 우리 아내, 우리 남편이라고 부른다. 또 외동이도 어버이에게 우리 엄마, 우리 아빠라 부르며 어버이도 우리 아이라고 한다. 알만한 이들도 곧잘 “틀렸다!”라 하는데, 아니다. 우리가 우리 남편, 우리 아내라고 하는 것은 나와 남편 또는 나와 아내가 ‘둘이지만 서로 떨어질 수 없이 깊이 사랑하여’ 도두보며 우러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아내 내 남편이라고 하다 보면 내 것이라는 생각에 함부로 하려는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외동이가 내 엄마라 하지 않고 우리 엄마라고 하거나 어버이가 내 아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 아이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랑이란 너와 내가 어깨동무하며 우리를 이뤄 서로 도두보며 우러를 때 비로소 깊어진다.

요즘 들어 단식구 가정이 부쩍 늘어나고 있지만, 대부분 가정은 두 사람이 혼인하면서 꾸민다. 스승은 딱 한 번 선 혼인 주례에서 다음 말씀을 남겼다.

“① 짝을 이루는 두 사람은 제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② 같은 공간, 같은 시간대에서 부부로서 만난 인연을 늘 고맙게 생각하라. ③ 서로 대등한 인격체로 맞아야 한다. ④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막말하지 말라. 말이 씨가 되어 그와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⑤ 공통된 지적 관심사가 없으면 대화가 끊어진다. 대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한 달에 산문집 두 권과 시집 한 권을 빌리지 않고 사서 읽는다. 산문집은 신랑 신부가 따로 한 권씩 골라서 바꿔 가며 읽고, 시집은 두 사람이 함께 골라 하루 한 차례씩 번갈아 가며 낭송한다. ⑥ 쓰레기를 덜 만들도록 하라. 사는 데 없어선 안 될 것 말고는 아예 집 안에 들여놓지 말라. 이 숙제를 하고 말고는 삶을 마치는 종점에서 내신성적으로 반영될 것이다.”

결혼하고 살아가는 데 대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괴테도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참으로 이 여성과 또는 이 남성과 일생을 함께 대화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결혼생활에서 그것 말고는 다 무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좋은 대화 나누는데 시를 함께 읽기보다 좋은 것이 없다는 스승은 “좋은 시 한 편이 우리 마음에 낀 녹을 닦아내고 맑은 눈을 열게 한다.”라면서 “정치인과 경제인 입에서 시가 외워지고 공무원과 사무직원 수첩에 시 몇 줄이 적히며, 밭 가는 농부와 노동자 작업복 주머니에 시집이 들어있고 주부들 장바구니에도 싱그러운 봄나물과 함께 산뜻한 시집이 들어있다면, 그래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라도 그걸 펼쳐 들고 낮은 목소리로 읽는다면, 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훨씬 물기가 돌고 아름답고 정다워질 것(1983)”이라고도 말씀했다.

좋은 시 한 편이 우리 마음에 낀
녹을 닦아내고 맑은 눈을 열게 한다

아울러 1995년에는 “부부와 부모 자식 사이에 ‘~해라, ~하지 말라’ ‘~해 달라, 싫다’와 같은 명령이나 요구와 불만 표시만 있지, 이해와 사랑으로 주고받는 대화가 없어서 딱딱하고 무표정한 집만 버티고 있을 뿐”이라고 안타까워하면서 “저마다 하는 일이 달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기회가 별로 없다. 식사 시간도 제각각이고 밖에서 돌아오면 저마다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나 TV 아니면 전화에 매달려 지낸다. 가정에 활기를 되찾게 하려면 어머니나 아버지 쪽이 나서서 대화 나눌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일러 준다.

“첫째, 대화할 때 중요한 것은 말하기보다 상대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는 일이다. 아내나 남편, 자식이 서로 같은 인격체로서 맞아야만 대화를 오롯이 나눌 수 있다. 타이름은 결코 대화가 아니다. 상대방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말하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듣는가이다.

둘째, 선입관을 버려야 한다. 한집안에서 살아온 식구들이므로 오래전부터 가까이서 지켜보아 온 관념 때문에 새로운 면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세월 무게에 짓눌려 생각이나 몸이 굳어 있지만, 아이들은 꽃처럼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고 있으므로 낡은 잣대로 재려고 해서는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영혼에는 나이가 붙지 않으므로 나이가 어리다고 지레짐작으로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 더 따질 것도 없이, 우리가 어렸을 때, 완고한 부모님들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속내를 털어놓는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일을 되돌아보라. 대화에는 서로 눈높이를 맞추도록 해야 한다.

셋째, 상대 생각을 바꾸려고 말다툼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이기려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 우리가 대화를 갖는 것은 우리 마음과 느낌을 서로 나누려는 데 있다. 나눔으로써 이해가 열리고 풍요로워진다. 우리 느낌을 상대방에게 드러내고 상대방 느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우리는 자기 느낌이 받아들여질 때 바로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자기 느낌이 거절당할 때는 자신이 거절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와 같은 느낌을 거쳐 사이가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식구들과 친지들에게서 듣는 칭찬과 격려가 우리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갖게 한다.”

나는 이 말씀 가운데 둘째 항목에 나오는 “영혼에는 나이가 붙지 않기”에 가슴을 열고 아이들과 뜻을 나누라는 말씀이 깊이 와닿는다.

자식은 부모를 거쳐 이 세상에 나왔지만
부모 관념으로 옭아매려고 해서는 안 돼

우리는 흔히 부부 사이는 데면데면해도 아이는 끔찍이 사랑한다고 여긴다. 그런데 그토록 사랑하는 아이 마음을 우리가 제대로 헤아리고 있을까? 다음은 내가 몸담은 ‘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이 가려 뽑은 2020년 상반기 평화 책 가운데 하나인 <어른들이 모르는 아이 세계>에 나오는 아이들 속내이다.

“손 씻는 세면대 말고 대걸레 빠는 세면대가 불편해서 문제다. 내 키하고 약간 비슷해서 걸레를 올려놓으면 걸레 손잡이가 위로 올라가서 내가 팔을 뻗어서 위로 들었다가 놨다가 해야 한다. 그래서 팔이 막 아프다.”

“학교 공부를 마치자마자 바로 컴퓨터를 하러 간다. 그리고 3시 30분에서 4시 30분 한 시간 동안 태권도를 한다. 4시 40분에서 5시 10분까지 탁구를 치러 간다. 5시 15분에서 6시 30분까지 영어를 하고 집에서 30분 동안 밥을 먹는다. 약 7시에서 8시까지 공부방을 갔다가 8시에서 10시까지 역사 논술을 하러 간다. …엄마는 내내 공부다. 쪼금 놀려고 하면 공부해라. 뭐 해라 해서 나는 세상 사는 게 힘들다.”

마치 이 책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이 스승은 “자식에게 거는 지나친 기대는 도리어 아이들에게 말할 수 없는 부담을 안겨준다는 사실도 헤아려봐야 할 것이다. 학교며 전공까지도 부모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우길 때 아이는 독립된 인간으로서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는 힘을 잃고 만다. 모든 일에 부모 눈치만 보면서 의존하려는 나약한 무골충이 되고 만다. 자식은 부모를 거쳐 이 세상에 나오긴 했지만, 부모의 것이 아니다. 부모 생각이나 관념으로 옭아매려고 해서는 안 된다(1984).”라고 힘주어 말씀한다.

영혼에는 나이가 없고, 사람은 본디 깨달아 있기에 아이는 어떤 어른에게 견줘도 뒤지지 않는 해말간 부처님이라고 틈날 때마다 말씀하는 스승은 아이 앞날을 두고 어버이와 아이가 뜻이 갈릴 때는 언제나 아이 손을 들어줬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