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불성론의 기원 및 선종

부처님 당시 ‘佛性’ 관련 언급 없어
대신 無自性 自我 ‘諸法無我’ 설법
“누구나 수행하면 부처 될 수 있다”

 

인도에서 불성론의 기원과 발전의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현재에 남아 있는 자료를 살펴보면 대략적으로 AD 2~3세기에 대승 중기 불교가 흥기할 때 발전하기 시작했다. 중기 대승불교가 발전하기 전 부파불교 및 초기대승불교 교의(敎義)에서 초기불성에 관련된 문제를 다룬 흔적을 엿볼 수가 있다. 이것이 불성론 문제를 형성한 초기 단계라고 한다. 즉 불성론 문제는 부파불교와 초기대승불교시기에 형성되어서 중기대승불교에서 발전하고 흥기하였다. 원시불교 시기 즉 불타 재세 시에는 불성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

불타 재세 시는 불타 역시 제자들과 함께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함께 걸식하고, 함께 잠자고 정진하였다. 또 함께 토론하고 제자들이 묻고 불타는 대답해 주고, 인도해 주는 인도자이자 스승이었다. 때문에 불성에 관해서 설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다만 무아에 대해서 말했다. 무아는 무자성의 자아 즉 인연화합에 합성된 자아로서, 독립체가 아닌 상호 의존하는 관계인 인연에 의해서 생기고 멸하는 제법무아를 말한다. 특히 불타는 생존 시 한 분의 스승으로 충분히 존경 받고 있었다. 때문에 따로 불성을 굳이 논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다만 부처님께서는 분명하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비록 현재의 부처가 되었지만, 나의 제자들도 열심히 수행정진하면 반드시 불과를 이루고 성불해서 미래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단언하셨고, 이러한 대목은 경전 도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말씀을 굳이 추론해보자면 불성의 기본 모태가 되지 않을까 유추해 본다.

불타가 입멸한 후에 제자들은 불타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제자들은 불타의 육신은 없어졌지만 정신은 여전히 제자들 곁에 머문다고 생각했다. 또 불법은 불타의 정신을 대표한다고 생각했으며, 점점 더 시간이 흐르면서 제자들은 불타의 정신을 인격화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자들은 불타의 육신과 상대적인 법신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법신은 곧 영구불멸 한다는 개념으로, 불타의 정신을 체현하는 것이다. 즉 법신체는 시공을 초월하고 복덕지혜를 원만히 갖추고 있다고 보았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불타의 본질 혹은 본체론적인 개념으로, 즉 불타의 속성 내지 불타의 성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동시에 불성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은 대승불교 후기 〈화엄경〉에 자세하게 잘 나타나 있다. 즉 “불신은 법계에 항상 충만해서, 널리 일체중생 앞에 나타난다. 연에 따라 나아가며 감응해서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지만, 그러나 항상 보리 좌에 앉아 계신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부파불교에 이르러서 법신에 관한 문제는 좀 더 발전한다. 법신을 불타 정신의 본체라고 보았을 뿐만 아니라, 법신의 불멸은 곧 불타 수명과 연결지어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곧 불타의 수명이 무량하다는 관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어느새 인간 불타는 점점 더 초월성과 신격화의 방향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부파불교의 모든 부파가 이러한 관점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상좌부는 인간불타를 고수했다. 대중부의 의견은 달랐으며, 불성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불타관의 분기점이 시작되었고, 다시 상좌부와 대중부는 또 진보와 보수라는 관점으로 나누어지기 시작하면서, 많은 부파를 파생시키게 되었다.

결과론적으로 현재의 남방불교와 북방불교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상좌부의 전통 사상 및 교리체계는 고스란히 남방불교로 전해졌고, 북방불교는 상좌부 갈래를 중심으로, 보살도 정신 및 사상을 기본체계로 대승불교로 거듭나면서 북방으로 전해졌다. 이것이 대략적으로 현재의 북방불교와 남방불교를 가르는 불교의 지형이다.

대중부는 중생에게 불성의 유무(有無)에 대해서 세 가지로 나누어서 본다. 첫 번째는 어떤 중생의 선근이 끊어졌거나, 혹은 큰 잘못을(오역죄) 지은 사람은 불성 종자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영원히 성불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불성의 유무를 단정 지을 수 없는 사람들로서, 그 사람의 수행의 정도에 따라서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불성이 있는 자들로서 성문, 보살, 연각 등 삼승인(三乘人)을 말한다.

불성 문제는 사람의 생명본질 혹은 생명의 본체 속성 등에 관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본래 불타는 “제법무아”를 설했다. 즉 ‘人無我’설은 생명의 본체를 부정한 것으로, 연기법 상에서 무자성(無自性ㆍ자성은 독립적인 실체가 없다)을 설했다. 동시에 ‘法無我’를 설했다. 이러한 관점은 불타 재세 시인 원시불교에서는 이 견해를 유지하고 있었다. 부파불교시대에 이르러서 이 문제에 대해서 각 부파가 보는 관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상좌부는 ‘심성본정(心性本淨), 객진번뇌(客塵煩惱)’를 없애고, 본성을 회복하는 것을 주장했는데, 결국에 해탈의 주체를 심으로 귀납시켰다. 이 관점은 원시불교의 주장과 일치한다. 더욱이 후래에 선종이 깨달음의 주체로 삼았던 심(心)과도 완전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림, 강병호

 

그 가운데서도 상좌부 계통의 “부불법외도(附佛法外道ㆍ불법에 붙은 외도)”라고 했던 독자부(犢子部)는 ‘보특가라(補特伽羅)’를 제시하였다. “보특가라는 즉온이온(섦蘊離蘊ㆍ온에 즉한 것도 온을 여읜 것도 아닌)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보특가라는 온처계(蘊處界)를 의지해서 가설로 명자(名字)를 시설했기 때문에, 곧 제행이 잠시 주하는 것으로 또한 찰나명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속성이 있기 때문에 보특가라는 윤회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만약에 보특가라가 없으면, 중생이 전세로부터 후세에 전환해서 올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보특가라와 오온의 관계는 즉온이온(섦蘊離蘊)이 아니다. 보특가라는 비물질성이지만 물질성을 여의지 않기 때문에 육체가 존재한다.”라고 하는데, 일종의 물질과 정신현상을 초월해서 항상 하나의 ‘我’가 주재한다고 생각했다. 이 관점은 당시 외도들이 주장했던 ‘신아(神我)’설을 불교에 반영한 것이라고도 한다. 때문에 이 논리는 불타가 주장한 ‘제법무아’와 상반되는 논리이므로 독자부가 설한 ‘보특가라설’을 ‘부불법외도(附佛法外道)’라고 하기도 했다. 이외도 상좌부 계통에서 윤회의 주체로서 제시한 개념으로 ‘유분심(有分心)’설, “궁생사온(窮生死蘊)”설 등이 있지만, 지면상 줄이겠다. 비록 부파불교시대에 부처님의 관점에 위배되는 사상들이 출현하기는 했지만, 다만 원시불교와 부파불교에서 보았던 여러 가지의 관점 및 개념들이 축적되고 정비되면서, 이후 불성론을 형성하는데 이론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많은 사상적 개념을 제공하게 된다.

부파불교 후기에 심성론은 부파불교의 토론의 주제가 되었다. 특히 심성(心性)은 염(染)인가 정(淨)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각각의 부파불교의 관점이 달랐다. 이 가운데서 대중부(大衆部) 및 분별설부(分別說部)의 주장은 ‘심성본정(心性本淨), 객진소염(客塵所染)’의 관점으로, 중생의 심성은 본래 청정하지만, 다만 객진번뇌로 인해서 염오(染汚)되어서 본래 청정하던 心性이 변해서 부정(不淨)이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본래 청정한 중생들의 심성이 객진번뇌로 더렵혀졌다는 것이다. 마치 본래 깨끗했던 거울에 때가 묻은 것을 없애면, 본래 깨끗한 상태의 거울로 되돌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이 관점을 반대한 부파도 있었다. 특히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는 ‘심성본정설(心性本淨說)’을 극력하게 반대하였는데, 반대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분별설부(分別說部)에서 주장하는 ‘심성본정설(心性本淨說)’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위배하는 것으로 ‘비요의설(非了義說)’이라고 했다. 이외도 〈성실론〉에서는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심성본정(心性本淨)인데 객진번뇌로 부정(不淨)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즉 심성(心性)은 본정(本淨)한데 객진번뇌로 부정(不淨)한 것이 아닌 것은, 번뇌와 마음은 항상 상응하기 때문에 객상(客相)이 아니다. 또 心生이 이미 멸해서 생기(生起)하지도 않는다. 이런 연고로 心性이 本淨한데 객진번뇌로 인해서 不淨해 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부처님께서 중생을 위해서 心이 항상 있다고 하였고, 고로 객진에 더럽힌바가 되어서 심이 不淨하다고 하였으며, 또 부처님께서 게으른 중생을 위해서 심이 본래 不淨하다는 것을 듣고, 문득 그 性을 고치지도 않고, 淨心을 발하지도 않을 것 같아서 本淨이라고 설한 것이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성실론〉에서는 ‘심성본정설(心性本淨說)’을 부정하였다.

부파불교에서 논의 되었던 심성문제는 어떤 의미에서 불성론에 대해서 매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대승불교시기에 이르러서 중요한 관심사는 심성론을 바탕으로, 어떻게 수행해서 성불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였다. 즉 부파불교에서 ‘심성론’에 대한 이론과 개념을 정립했다면, 다음으로 실천수행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때 불성론은 이론과 실천의 양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즉 공성관에 입각한 반야공성 성공환유 등을 기본으로 하는 중관사상의 등장이고, 아뢰야식의 사상을 기본으로 하는 유식무경의 관점인 유가사상의 등장이다. 물론 이 두 가지의 사상적 관점이 동시에 출현한 것은 아니고, 전후로 발생되었다. 공성관은 제법본질(空)의 입장에서 심성 및 제법현실을 규명했다면, 아뢰야식을 기본 사상으로 한 유가사상은 심성 및 제법현상을 현상(有)의 관점에서 분석 탐구해 본질에 이르는 과정이다. 다시 정리 하면, 중관파는 바로 여과 없이 제법현상의 본질을 드러냈다면 유가행파는 제법현상을 현상에서부터 하나하나 분석해서 본질을 나타내는 수행법이다. 즉 비유를 들자면, 중관파는 현관(現觀)이라는 관법을 통해서 바로 불성을 드러내는 수행이라면, 유가행파는 요별식(了別識) 마나식(末那識) 아뢰야식 등의 단계적인 경계를 통해서 본질에 이르는 수행법이다.

상좌부와 대중부는 모두 ‘心性本淨’설을 주장했다. 다만 상좌부는 ‘心淨’이 고유하게 있어서 번뇌를 없애면 된다고 보았다면, 대중부는 ‘心淨’을 가능성으로 보았으며, 일단 淨心으로 돌아가면 퇴보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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