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은 자신 안에 있어
法은 자신 안에 있어
  • 지안
  • 승인 2020.05.0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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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隨處作主 立處皆眞

임제가 대중에게 말했다.

“여러분, 불법 자체는 애써 공부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저 평소에 아무 일이 없으면 되는 것이다. 똥 누고 오줌 누며, 옷 입고 밥 먹으며, 피곤할 땐 쉬면 되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비웃겠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잘 알 것이니라. 옛사람이 이르기를 ‘밖으로 향하여 공부를 하는 사람은 모두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이라 하였느니라. 그대들이 어디를 가나 주인이 되면 자기가 있는 그곳이 진리가 있는 곳이다. 어떤 경계가 온다 해도 이것을 바꿔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비록 묵은 습기와 오무간지옥의 죄업이 있어도 저절로 해탈의 큰 바다가 될 것이니라.”

임제는 어느 날 또 특유의 법문을 계속한다. 부처님 법은 애써 공들여 하는 공부가 아니라 한다. 몸과 목숨까지 돌보지 않고 일로 정진해서 공부해야 하거늘 이 무슨 말인가. 깨달음 자체는 애써 노력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자기에게 그대로 있는 것이란 말이다. 평소에 아무 일거리가 없는 텅텅 비고 아무런 부담이 없고 구속이 없는 것 그것이 부처님 법이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법이 무엇인가 법 그 자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런 말은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 못하고 깨달은 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법성게의 ‘증득한 지혜라야 알 바요, 그렇지 못하면 알 수 없다(證智所知非餘境)’는 말과 같다. 화장실에 드나들며 밥 먹고 옷 입는 것이 부처님 법이니 결국 법이 나 자신 안에 있지 밖에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예로부터 가장 쉬운 말로 도인의 가풍(家風)을 나타낸 말에 ‘목마르면 물 마시고 피곤하면 잠잔다(渴卽飮水困卽睡)’라고 하였다. 이는 본래 있는 지극히 생리적 현상으로 마음 쓰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일이다.

이 장에 와서 또 중요한 법구(法句)가 나온다. ‘어디를 가든지 주인이 되라 그러면 그곳이 존재의 진실이다.(隨處作主 立處皆眞)’ 매우 매력 있는 말이다. 이것만 바로 알아 챙기면 설사 지옥에 가더라도 큰 해탈의 바다가 된다 하였다.

중국 당나라 때 나찬(懶瓚) 스님이 있었다. 어느 산중에 있을 적의 일화가 하나 전해진다. 나찬외우(懶瓚謚芋)라고 선가에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벽암록〉 34칙에 소개되어 있다. 덕종이 국사로 모실 스님을 찾고 있던 중 나찬 스님의 명성을 듣고 사신을 보내 스님을 궁중으로 모셔오게 했다. 왕명을 받은 사신이 형산에 있던 나찬 스님을 찾아갔다.

그들이 절 안으로 들어갔을 때 초라한 행색을 한 스님 한 분이 마당 가의 양지쪽에서 혼자 앉아 쇠똥불에 토란을 구워 먹고 있었다. 입가에 시커먼 검정이 묻어 있고 코를 훌쩍거리고 있었다. 사신들은 이 스님이 국사로 모셔오라는 스님일 줄은 알지 못하고 명찬 스님을 모시러 왔노라 말하면서 스님을 뵙게 해 달라 하였다. 나찬 스님이 어디 계시냐고 묻자 구운 토란을 먹던 스님이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자기가 나찬이라는 뜻이었다.

신하들은 찾아온 사유를 말하고 스님을 모시고 궁중으로 가야 하니 출발할 채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님은 들은 둥 만 둥 토란 먹는 데만 열중하였다. 천자의 명을 받드는 예를 갖추라는 데도 반응이 없었다. 입가가 시커멓고 코가 입술까지 흘러내리는 것을 본 신하가 입가를 좀 닦는 것이 좋겠다고 하자 “내가 공부한 게 뭐가 있다고 속인들을 위하여 콧물까지 닦겠는가?”하고 일어설 줄을 몰랐다. 사신은 자기들이 스님을 위해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다시 물었다. 궁중으로 가는 채비를 하는 데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물은 것이었다.

이 때 나찬이 한 말은 “조금 비켜 서주시오. 햇빛을 가리지 마시오.” 였다. 추운 날씨에 사신들이 햇빛을 막고 서 있었던 모양이다. 나찬은 끝내 국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덕종은 나찬을 더욱 흠모하였다 한다. ‘햇빛을 가리지 말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 ?~BC324)가 한 말과 우연히 일치되었다 하여 후세 사람이 나찬을 동양의 디오게네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듯 선은 경계를 의식하거나 끌려가지 않는 기백을 높이 산다. 이를 주체적 자아확립이라고 하고 임제도 수도인에게 이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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