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고난이 오더라도 콧방귀 탁 뀌고 그 뿌리에다가 놔 버려야 합니다

마음 중심 잘 잡고 갈 수 있게…

질문 : 요즘은 올바른 종교, 바른 믿음을 갖는다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마음의 중심이 없으니까 바이러스로 인한 이러한 전 세계적인 위기 사태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삿된 믿음에 빠져서 나와 남을 해롭게 하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런 경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전에 우리 선원에서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도 단계적으로 마음공부를 가르쳐 준다는 데 있다니까 혹해서 많이들 다녔다고 하거든요. 지금은 안 그런 것 같습니다만. 그런 주위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마음 중심 잘 잡고 물러섬 없이 정진할 수 있도록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 간략해서 말한다면 이 저승길이라는 게 그냥 우리가 생각하듯 꼬부랑꼬부랑하게 그냥 멀리 가는 게 아닙니다. 공부를 한 사람은 그냥 한 찰나고 공부를 못 한 사람은 뭐, 며칠 몇백 일이 걸리고 그렇게 해서 가죠. 그것도 붙잡아 가는 사람도 있고 말이에요. 그런데 모든 문제를 둘로 보지 않고, 그렇게 모든 걸 알아서 견성을 해서 성불을 하고, 또는 구정토에 이르러서, 즉 말하자면 아미타 국토를 간다거나 이러한 문제는 살아서 다 이렇게 화현이 돼야 그냥 되는 예요. 살아서도 모습을 여기 앉혀 놓고 몇 수십억 개로 모습 모습을 만들어서…. 일이 있으면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길잡이가 깨치지 못했다면, 남의 말로 그렇게 해 놓고선 한다면 이건 부득이 잘못되는 일이 아주 허영 많다는 얘기죠. 그런데 그렇게 놓고 한다면…. 모두 자신에게다가 그 집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지금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외부에다가 그렇게 그려 놓고 한다고 해도 그것은 자기한테다 넣지 않고는 될 수가 없고 또 그것이 인제 길지 못하다는 겁니다.

이게 다소 얼마씩을 이렇게 받아서 운영을 하지만요, 이 사람들한테는 해로움이 없는 게 아니라 해로움이 많을 때는 아주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은 여러분들이 길을 올바로 가지 못해서 그게 걱정이다 이거죠. 길을 올바로 가지 못하면 큰일이죠. “그럴 거 같으면 기복으로도 하는데 그까짓 거, 뭐.” 이렇게 하겠지만 그게 그만큼 길이 늦어지는 거죠.

만약에 여기 이 신도님들이 그렇게 가시는 분이 있다면 여기에 앙금이 자리를 잡지 못한 분들입니다. 자리를 잡지 못한 분들이 그러지, 자리를 완벽하게 저 나무뿌리처럼 딱 잡아 놨다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절대로 이 나무가 흔들리지 않죠. 일 년 동안 이렇게 사는 저 수숫대도 바람이 불면 쓰러질까 봐 미리 아주 뿌리를 잘 박아서 튼튼하게 해 놓고선 바람이 불어도, 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도 파이지 않고 잘 익어서 사람들한테 보시를 하는데요. 허허허 그래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자기 자신이 지금 모두 화두를 가지고, 몸을 화두로 삼아 가지고 사는데 이 몸, 화두가 공해서 이 모습 하나만 봐도 여기는 생명체들이 그 세포 하나하나에 모두 생명체들이 더불어 같이 살기 때문에 내가 이 물 한 컵을 먹어도 먹은 사이가 없다. 공해서 공식하고 돌아간다. 이 먹는 것만 공식하는 게 아니라 일체 모든 게 공식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하물며 그런 걸 해 놓고선 저거 할 때 그 신도들이 만약에 절반이 잘못된다, 또 절반은 그냥 하다가 만다, 이런 경우가 있을 때 그거는 나로서는, 내가 만약에 그 부모라면 진짜로 얼마나 안타까울까 그런 얘기죠. 그런데 가다가 빠질 듯하면 그래도 올려놔 주겠죠.

하여튼 우리가 살아나가는 데 참 지금은 옛날 같지 않지만, 옛날에도 진리는 그러했고 사람은 점점 늘어 가고 이 에너지는 급속도로 이렇게 줄고 있고 그러니깐, 사람들이 좀 이런 마음의 도리를 공부해서 에너지를 좀 꺼내 쓸 수 있는, 그런 도리를 우리가 연구해서 쓰고도 남을 수 있는 그런 이치가 됐으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지요.

그러니깐 여러분들이 하시고 가시는 일이 잘 돌아가질 않는다 이럴 때 거기다 정신계를 첨보해서 만들면 이게 잘 돌아가지 않을까. 조그만 거든 큰 거든 상관이 없죠. 쪼끄만 거 하나가 이 세상을 다 살리고도 남는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쪼끄만 거. 보이지도 않는 마음이 말입니다. 이 세상을 다 살리고도 남는데요. 그리고 영원히 먹고도 남게 한다는 얘기죠.

이 얘기가 이해가 되실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만날 이런 공부를 해서 전자에는 그렇게 대대로 내려오면서 그렇게 고생을 했으니 인젠 대대로 올라가면서, 절대로 올라가되 올라가는 것도 없고 내려가되 내려가는 것도 없이, 생사도 없이 그냥 그렇게 영원히 자유스럽게 살자 이런 뜻입니다.

등을 밝히는 마음

질문 : 이제 초파일이 다가오는데 올 초파일은 좀 우울하네요. 그렇지만 변함없이 우리는 등을 밝혀야겠죠. 그런데 등을 밝히는 마음은 어떠해야 하는지요.

답변 : 옛날에 이런 점이 있었죠. 모두 사월 팔일이 돼서 등을 그냥 쫙 모두 켜 놨습니다. 그냥 애를 못 낳으니까 애를 낳게 해 달라고 모두 젊은 보살들이 앨 썼습니다. 그럴 때 수천 명이 등을 달았습니다. 그건 내가 그 자리에서도 본 일이죠. 그런데 어느 스님께서 이런 말을 했죠. “등불은 등불이로되 등불이 하나도 없구나.” 이랬습니다.

그랬는데 가만히 보니까, 저 끄트머리에 그 가난한 어느 농부입니다. 가난한 농부에다가 아주 찢어지게 어려워서 남들은 눈에 빠진 버선을 벗고 양말을 새거를 신을 수가 있었는데, 그분은 어려워서 눈에 빠져서 젖은 거를, 그냥 그 시꺼먼 거를 신고, 그 젖은 거를 벗고는 맨발로 그냥 시뻘게 가지고, 그 등도 살 돈이 없어서 초 하나만 사 들고 온 거를 뭐, 이렇게 종잇장으로 둘러놓고는 글쎄, 거기다가 켜고 있더군요. 그래서 “허허, 아무리 뇌성벽력이 치고 아무리 눈보라가 치고 비바람이 친다 하더라도 저 불은, 그 초는 꺼지지 않았느니라.” 그랬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됐는 줄 아십니까? 지금 원주에서 갑부 부럽지 않아요. 그 사람은 그냥 정말 인등을 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촛불 켜는 게 불인 줄 아십니까? 내 마음의 인등을 켜야 됩니다. 인등이라는 것이 무슨 요만한 그릇에다가 꼬리표나 해서 붙이고 불 켜는 게 인등이 아니에요. 여러분의 마음의 불을 켜고 진실하게 자기 주인공을 믿음으로써 일체제불, 일체 보살이, 천백억 화신이 다 여기 한꺼번에 찰나에 들고 나신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을 떠나서는 절대 그것은 공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사업 부도 위기에 있어요

질문 : 제 큰아들이 친구랑 조그마한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 친구란 녀석이 글쎄, 돈을 갖고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 안 그래도 지금 자금이 안 돌아 겨우 유지하고 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일이 터졌으니 지금은 바로 부도 직전입니다. 돈이 들어와야 살릴 수 있는데 열심히 관하고는 있지만 상황이 너무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답변 : 처음부터 모든 것을 믿어야 내가 놓을 수도 있는데 믿지를 않으니까 놓을 수가 없거든요. 믿으면 그때는 그냥 누가 놓지 말래도, 거기다가 맡기지 말래도, 맡겨 놓지 말래도 탁 맡겨 놓고 자기가 떳떳하게 해 나가거든요. 믿지 못함으로써 바로 거기다가 맡겨 놓을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맡겨 놓을 때까지 내가 이거를 지금 리드해 나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체험을 해 보시라 이겁니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체험하면서, 체험을 함으로써 자기를 믿으면서, 믿는 반면에 물러서지 않고, 참 즐거움을 느끼고 삶의 보람을 느끼면서…. 진실히 믿기 때문에 거기다가 다 맡겨 놓을 수 있는 겁니다. 누가 곧장 죽는대도 그까짓 것 겁도 안 나요. 다 맡겨 버리니까! 맡겨 놓으니까! ‘내가 금방 죽는다 하더라도 걱정이 없다.’ 이만큼 돼야 된다 이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렇게 믿을 수가 없는거죠. 체험을 못 해 봤기 때문에. 자기 위력이 그렇게 광대무변하다는 걸 체험을 못 해봤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이 이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물건을 잔뜩 해 놨는데 아, 외국에서 괜히 트집을 잡고선 물건을 도로 빠꾸를 시켰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됐겠습니까? 자금은 달리는 데다가 그렇게 됐으니 큰 문제가 생겼죠. 그래서 딴 데다가 그것보다도 더 싸게 다 넘겼답니다. 그런데 돈을 못 받는다는 겁니다, 또. 그러니 진퇴양난이에요. 밑지고도 지금 넘겼는데.
그래서 인제 여기 와서 설법을 듣고 갔습니다. ‘예라, 당신이 계시다면 당신이 알아서 돈을 받게 하든지 우리 식구를 다 죽이든지 맘대로 해라.’ 하고 그냥 아예 인젠, 너무 이게 골치가 아프니까 다 놓고선 그냥 방에 그냥 뒈쓰고 덜컥 드러누웠답니다. 그랬는데 얼마쯤 자다가 보니까 꿈에 “일어나, 임마! 드러눠 있는다고만 해서 뭐, 다 맡기고 놓는 건 줄 알아? 일어서 다니는 것도 다 놓는 거야, 임마. 일어나!” 그러더랍니다. 그런데 쓱 꿈에 보니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발만 보이더랍니다. 발은 어떻게 보이느냐 하면은 그, 삼베 있죠? 삼베로다가 행전을 치고요, 
그냥 짚신으로 신은 저것만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깜짝 놀라 깨 가지곤 ‘이거 이러고 있을 게 아니로구나. 내가 맡겼으면 바로 내 몸뚱이도 움죽거려야 되는 거구나.’ 그러고선 슬슬 그냥 생각도, 받으려니 생각도 없이 그냥 갔답니다. 그랬더니 아, 반가워하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쌀쌀하고 돈 없다던 사람이 “아이고, 당신이 그걸 나를 믿고 그렇게 줬는데 참 고마웠소. 그러니 돈 가져가시오. 그러고선 조금 떨어지는 건 한 닷새 있다 드릴게요. 이렇게 좋은 분인데….” 아, 이러더랍니다. 그래 그 돈을 받아 가지고 말입니다, ‘야, 내가 생각하고 맡겨 놨으면 몸도 움죽거려야 되는구나.’ 또 그걸 배웠답니다. 
그래서 부지런한 거, 이 마음으로 믿는 것도 부지런하게 진실로 믿고, 몸도 또 부지런하게 뛰어야 하고, 같이. 뛰는 것도 거기서 뛰게 하는 거니까. 그러니 일체 사는 게 거기서 내고 들이고 하는 거죠. 그래 믿고 그렇게 한다면 모두가 일이 좀 순조롭게 풀리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자기 몸뚱이가 갔어도 마음에다 맡겨 놓으니까 말도 화가 안 나더랍니다. 
그전에는 그냥 가서 “그래, 이 도둑놈아! 왜 여직껏 돈을 안 주고 그래? 떼먹으려고 그러면 아주 떼먹어라, 이놈아!” 이러고 했는데 아, 그때는 그렇게 하니까 마음이 눅눅해지는게 아주 영 뭐, 상도 찌푸려지지 않고 그냥 싱글싱글, 참 마음을 편안하게, 온화하게 가니까 아이, 처음에는 그냥 놀라는 기색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아주 좋은 그 얼굴로 해 가지고 한번 다녀온 후로 또 가니까 그렇게 반가워하면서 그렇게 주더랍니다. 
그런 일도 있듯이 내 마음이 그렇게 넓고 슬기롭고 좋은데 왜 그 사람 마음이 좋지 않겠습니까? 내 마음이 오그라지고 참, 펴지 못하고 원망하고 이렇게 나가면 상대방도 그렇게 나오거든요. 그것은 왜 그러냐. 안 보이는 데의 그 향, 향기처럼 내 마음의 그 에너지가, 즉 말하자면 그쪽의 주인공과 내 주인공이 함께 그 공생, 공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가 악하게 쓰면 그쪽도 악하게 나옵니다. 그거는 내가 몸뚱이로 그렇게 악하게 안 해도 스스로서 벌써 악하게 되는데 어떡합니까? 그러면은 몸뚱이, 말 이것만 중요시하지 이 마음 씀씀이는 중요시하지 않거든요. 
저놈이 나를 가지고 욕하고, 한 대 쳤다고 그것만 중요시하지, 자기 마음 씀씀이를, 자기가 생각한 건 생각 안 해 보거든요.
그러니까 이 장사를 하든지 또 사원 노릇을 하든지 회장 노릇을 하든지 사장 노릇을 하든지, 하다못해 쪼그마한 무엇을 한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모든 것을 실험을 해 보세요.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듯이 안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아하, 나를 실험해 보기 위해서 안 되는구나.’ 하면은 금방 없어져요. 
또 이런 예가 있었어요. 옛날에 산에 올라가서 인제 항상 모든 거를 맡겨 놓고서 이렇게 살아나가는 사람이죠. 그랬는데 하루는 나도 속은 예가 있어요. 나는 묘지를 찾아서 묘지에다 기대고 잠을 잤거든요. 그냥 허청 뭐, 나무에다가 기대고 자고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하니까 침입을 했다 하면서 뭐 훔치러 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머리를 산발을 하고 그런 게 와락 나타났습니다. 어떻게나 놀랐는지 말입니다, 그냥 갑자기 생기는 일이라. 갑자기 생기는 일이라도, 적이 갑자기 생기지 그럼 뭐, 적이 갑자기 안 생깁니까? 

그런데 그때에도 대치할 수 있는 뭐가 완벽해야 되는데 완벽하지 못했단 말입니다. 거기서 놀라선 뒷걸음을 쳐서, 여기서 저 버스 종점 나가는 데까지 뛰었단 말입니다, 뒷걸음을 쳐서. 뛰다 보니까는 그냥 발뒤꿈치가 그냥 차이면서 그냥, 그냥 넘어졌죠. 펄떡 주저앉는다는 게 어디 가 앉았느냐 하면 그 이만한 풀 덩어리, 예전에 삘기풀이라고 있죠? 거기 그냥 어떻게 엉덩방아를 찧었는지 정말 눈에 불이 번쩍 났습니다. 그 순간 뭘 생각을 했느냐 하면 ‘옳지, 네가 그런 놈이지!’ 거기서 들어오는 게 아니다 이겁니다. 이 주인공, 이 공생 공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만약에 영 영 하면 영 영 영 영, 수만 개가 있어도 영 하나로 돌아가지 그것이 딴 데 따로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은 체가 없는데 아이구, 딴 데서 나온 게 없다. 저한테서 나오고 제가 놀라는구나! 제 방귀에 제가 놀랐어!’ 하면서 도로 그 자리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 떡 버티고 앉아서 생각을 한 것이 ‘흥, 나갈 것도 없고 들어올 것도 없는데, 네놈이 그래 놓고 네가 놀랐구나.’ 하고선 탁 틀고 앉아 있으니깐 웃음이 저절로 나오는 거예요. 그러곤 그거 간 곳이 없어진 거죠. 
그래 웃음이 저절로 나와서 척 기대고 웃으면서, 싱긋이 웃으면서 눈을 감고 있으려니까 야, 그렇게 사람이 참, 그 아무것도 없어도 그렇게 부자일 수가 없어요. 세상에, 묘지 하나를 가지고, 이 우주의 삼라만상의 전체라고도 볼 수 있거든요. ‘야, 참 가르쳐도 톡톡히 가르친다. 다짜고짜 그냥 칼이 들어오는구나!’ 이랬던 거죠. 그 은사가 무예를 가르칠 때 무예를 웬만큼 가르쳐 가지고선 자기하고 시합을 또 시키거든요. 그래서 자기를 능가할 수 있어야 “넌 나한테 더 배울 게 없다.” 하고 내놓을 수 있는 거거든요. 그렇듯이 바로 그런 시험이 오는 겁니다. 

웬만큼 체험을 하고 돌아갈 때는 바로 그런 시험이 옵니다. 급작하게, 자기로만 왔으면 좋겠는데 자기의 그 집안 식구들한테 오거나 그럽니다. 이거는 정말 죽을 노릇이죠. 그러니 그런 것에도 속지 마시라 이겁니다. 속으면 내 꼴이 되니까요. 나도 그때 한번 속아서 그렇게 뛰어 본 예가 있거든요. 그런데 나는 그때 식구도 없고 홀홀히 그렇게 다녔으니깐 아마 나한테 그렇게 됐지마는, 여러분들은 속가에서 살림하면서 제일 식구들을 위해서 사시는 분들 아닙니까? 그러니까 위한다는 식구들한테 그 시험이 오거나, 그렇지 않으면 제일 여러분들이 귀하게 생각하는 돈에 오거나 이럽니다. 그러니까 거기에도 속지 않는다면 금방 돌아섭니다. 그래, 그런 체험을 해 보시면 절대로 속지 않습니다. 그 속지 않는 자기 참마음이 바로 부처니깐요.

불쑥불쑥 거친 말이 튀어나와요

질문 : 저는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불쑥불쑥 거친 말이 튀어나와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곤 합니다. 그러곤 곧 후회를 하고 반성하지만 쉽게 고쳐지질 않습니다. 늘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고 싶은데 도움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 가끔 보면 여러분은 몽땅 버리지 않으시고…. 저 나무들도 그 뿌리에서만이 싹을 돕기 때문에 바람이 부나 비가 내리나 눈이 오나 뜨거우나, 하여간에 어떠한 뜨거운 고가 
닥쳐도 그냥 편안하게 거기에 안치하고, 한마음이 돼서 편안하게 지냅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자기 뿌리를 믿지 못해서 편안히 마음을 갖지 못하시는 거 같아요. 어떤 분은 편안하시고 어떤 분은 편안치 못하고 어떤 분은 더 편안치 못하고 어떤 분은 방방 바깥으로 뛰시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저 나무들이 말입니다, 모진 바람이 분다고 해서 싹이 아무리 방방 뛰어도 그것은 소용없는 일 아닙니까? 그 마음이 문젭니다. 아무리 바람에 휘날리고 폭풍이 불어도 끄떡없이 마음이 한마음이 돼서 뿌리를 지키는 마음! 그 뿌리가 성성하게, 그 뿌리를 깊이 박고 싹을 쪼끔도 흐트러지게 안 하는 그런 그 나무들의 이치를 생각해 보십시오. 나무 싹과 뿌리가 어떻게들 하고 있나. 바람이 분다고 온통 난리를 피웁디까? 아무리 흔들려도 그 뿌리에 매달려서 끄떡없이 갑니다. 어떠한 고난이 오더라도 콧방귀 탁 뀌고 그 뿌리에다가 모든 것을…. 우리가 진짜로 믿는다면 뿌리에다 맡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대로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거기다 맡기고 안 맡기고 간에 거기서 다 뿌리와 싹과 통신이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마음이 말입니다, 어떻게 마음입니까, 그게? 마음이라는 것이 그냥 불쑥불쑥 만나면 얘기하고, 불쑥불쑥 만나면 보고, 불쑥불쑥 만나면 듣고, 불쑥불쑥 그냥, 그냥 여여하게 말하고 듣고 행하시죠. 누구한테 내가 이렇게 행한다 하고 행하지 않으시죠. 누구한테 말한다고 하지 않으시고 말하시죠. 본다고 하지도 않죠. 듣는다고 하지도 않죠. 

그럭하고서 그대로 여여하게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여여함이 그대로, 여러분이 그대로, 그 마음이, 마음속에서 그렇게 나오는 그 여여함이 그대롭니다, 그대로! 
부처님이 왜 부처님이라고 그런 줄 아십니까? 악과 선을 다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악과 선을 갖추어서 그걸 둥글릴 줄 알기 때문에 부처님이에요. 그래서 32상에 80종호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라도 요만한 거 하나 빼놓지 않고 모가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항상 얘기했듯이 여러분들에게만 부처님이 계신 게 아니라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다 불성이 있는 겁니다. 그게 자불입니다. 

근데 지금 그 마음이 문젭니다. 마음이 때에 따라 화가 나면 욕도 하고 그러죠. 욕도 나오고 아이고, 그냥 좋은 말도 나오고 거친 말도 나오고 이러는 것이 정상이에요, 그냥. 그대로 정상이란 말입니다. 그대로 정상을 그대로 여여한 줄 알라 이겁니다. 만약에 거친 말이 안 나온다면, 선한 말만 나오고 좋은 말만 나온다면 그것은 부처가 아닙니다. 모두가 부처라는 것은 평등공법에서 나오는 여러분들의 마음의 그 법신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욕을 한다고 그래서 욕이 업보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폐가 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한번 뒤집어서 생각해 보십시오. 
겁나시죠? 항상 제가 그렇게 해 나왔으니까 좋은 말을 쓰시라고 하고, 언짢은 말은 쓰지 마시라고 하고 이렇게 한 것은 여러분들이 언짢은 걸 언짢게, 언짢다는 걸 알고 그렇게 하시기 때문에 그게 언짢아지는 겁니다, 그게. 

참 이해가 안 갈 소리죠. 이게 아니다 기다, 이건 있는 거다 없는 거다, 부처님은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양면은 다 본래 갖추어진 본연의 자리에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면 그 가운데서 그냥 여러분들이 마음 쓰고 밀고 나가는, 물러서지 않고 밀고 나가는 그 마음이 그냥 공법입니다. 공법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말하시고 행하시고 보시고…. 그런데 옛날에 “뜰 앞의 잣나무니라.” 한 거 말입니다. 왜 잣나무만 부처겠습니까? 우리가 전체 어느 거 하나 공안 아닌 게 없고, 법안 아닌 게 없고, 부처님 아닌 게 없고, 생명 없는 게 하나도 없으니깐 말입니다. 
그러니 모두가 우리의 스승이고, 그네들에 우리가 스승이고 서로서로의 스승이란 말입니다. 누가 더 높고 누가 더 얕고 이런 게 없습니다. 단 하나, 차원이 낮으면, 여러분들이 이 도리를 모르고 차원이 낮으면 낮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오니까 그건 낮은 중생이라고 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에서 모든 모습도 이 세상에 나오고, 모든 모습이 행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만나는 것도 전부 거기에서 그 빛이 풍기는 겁니다. 

이 장사를 하든지 사원 노릇을 하든지, 쪼그마한 무엇을 한다 하더라도거기에서 모든 것을 실험해 보세요. 안 되는 것도 ‘아하, 나를 실험해 보기 위해서 안 되는구나.’ 하면은금방 없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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