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4·15총선과 불교

법정 스님이 생전에 입던 두루마기. 현대불교 자료사진

 

한 사람씩 내놓은 뜻이 이 사회를 이뤄

4·15 총선을 앞두고 있다. 이번 총선이 지난 총선들과 두드러지게 달라진 것이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18살로 낮아진 선거 나이’다.

민주주의 선거 중요성
불교 ‘칠불쇠법’서 전해
개체에서 전체로의 힘
대중 지혜 발현 이어져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에 국회 문턱이 낮아지며 다당제 문이 열려, 정치가 ‘대결’에서 ‘대화’로 갈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제1야당이 법이 지닌 허점을 파고들어 위성 정당을 만들고 여당도 따라 위성 정당을 만드는 바람에 무늬만 다당제가 되고 말 것이란 소리가 들린다.

개체에서 전체로 나아가려면
도두보며 저마다 뜻을 나눠야

핀란드에서는 지난해 말, 서른네 살 난 여성 산나 마린이 총리가 됐다. 사회민주당원인 마린 총리를 비롯해 부총리 겸 재무장관에 카트리 쿨무니(32) 중앙당 대표, 내무장관에 마리아 오히살로(34) 녹색당 대표, 교육장관에 리 안데르손(32) 좌파연합 대표, 법무장관에 안나 마야 헨리크손(55) 스웨덴인민당 대표가 입각해 다섯 개 정당을 대표하는 여성들이 내각에 들어가 눈길을 끌었다. 이 가운데 네 사람이 30대,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다.

법정 스님이 나랏일을 얘기하며 자주 나눈 말씀이 칠불쇠법이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 밧지가 날로 나라 살림이 넉넉해지고 힘이 세지는 데 위협을 느낀 마가다 임금 아자타삿투가 신하를 보내 부처님에게 밧지를 쳐들어가 무릎 꿇리고 싶은데 어떻겠냐고 여쭸다. 부처님은 나라가 무너지지 않는 일곱 가지 보기를 들면서 가장 먼저 “밧지 사람들은 자주 모임을 하고 저마다 지닌 뜻을 거리낌 없이 나누며 어울린다”라고 꼽는다.

늘 ‘나는 나이고 싶다’라고 말씀하던 스승은 틈이 날 때마다 석가모니가 두 사람이 있을 까닭이 없다, 제비꽃이 제비꽃다워서 아름답듯이 사람도 저마다 저다워야 한다, 저다움을 지닌 개체들이 어울리며 전체로 나아갈 때 맑고 향기롭다고 말씀했다. 저다움을 잃지 않으며 개체에서 전체로 나아간다는 건, 너를 살릴 때 비로소 내가 살 수 있다는 살림살이 바탕에서 이웃하는 이들이 서로 도두보며 모자라는 구석을 메워가는 것을 일컫는다. 민주주의란 저마다 다른 악기 소리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소리는 내는 오케스트라다.

‘연동형비례대표제’ 허점을 비집어 세를 불리려는 제1야당과 여당이 놓친 것이 있다. 철학자 존 롤스가 내세우는 ‘중첩 합의(overlapping consensus)’와 ‘최소 수혜자(Maximin) 배려 원칙’이다. 미국 현대 인권 개념은 남북전쟁에서 흑인과 백인을 가리지 않고 고르게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나선 브라운대학교 교육위원회 판결을 비롯해 민권운동에 이르는 숱한 입씨름에서 ‘중첩 합의’를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뜻을 모아가는 얘기 바람에서 ‘최소 수혜자 배려 원칙’이 큰 힘을 떨쳤다. 사회는 가장 힘이 달리는 사람마저 편안하도록 아우를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간다.

서정주가 읊은 ‘국화 옆에서’를 여는 구절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에 나오는 국화꽃은 한 송이가 아니다. 작은 꽃들이 꽃다발을 이루어 한 송이처럼 보일 뿐이다. 꽃송이 하나하나가 저마다 나팔꽃 같이 생겼다. 조그만 꽃들이 어울려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는 힘이 국화과 식물이 지구별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이다.

대승, 큰 탈 것이란 말도 항공모함처럼 커다란 것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작은 반딧불이 어울려 큰 빛을 내듯이, 작은 눈들이 어울려 두루 보고, 솜씨가 다른 작은 손들이 어우렁더우렁 서로 모자라는 구석을 메우며 이룬 ‘우리’를 가리킨다.

네가 있음은 절대이다
없어도 그만이 아니다

선거 나이를 18살로 낮추는 선거법 개정안을 국회가 인준한 것은 지난해 12월 27일이다. 같은 날 연합뉴스에 따르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를 비롯한 보수 성향 교육단체들은 “교실을 정치화하는 법으로 학생까지 정치판에 끌어들이는 시도”라고 드잡이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청소년이 시민으로 인정받는 첫걸음”이라며 반겼다. 선거법 개정으로 투표권을 갖게 된 한 학생은 “청소년이 주관 없이 교사나 정치인에게 선동당할 것이라는 우려는 폭력이며 권리 침해”라고 맞받으며 “주 52시간제로 지나친 노동을 막은 것처럼 지나친 학습 시간도 규제하는 공약이 나오면 좋겠다. 학교 독서실이나 심화 학습반을 성적에 따라 나누는 것과 같은 차별을 근절할 법안도 필요하다”라고 했다.

스승이 계셨다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도예가 김기철 선생 따님 사진작가 김미현이 프랑스 유학을 하겠다고 했을 때 식구들이 몹시 반대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어버이와 힘겨루기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바람직하다”란 스승 말씀에 따라 김기철 선생 내외 판정패로 끝난다. 스승은 그때를 이렇게 돌아봤다.

“내 산거에 오면 미현, 민호, 규호 세 자녀와 모처럼 자리를 같이하게 된 기회라 가족회의를 곁들여 재판받을 일(?)을 내놓게 된다. 어머니 조남숙 여사가 그동안 일어났던 일을 차근차근 나열하면 성미 급한 편인 김기철 님은 중요한 대목만 대충 이야기하라고 윽박지른다. 성미가 너그럽지 못한 재판관인 나도 들을 만큼 듣다가 알겠다면서 주관적인 판단을 내린다. 이런 논의 결과 미현이가 빠리에 가서 사진작가로서 서서히 인정을 받게 되었고, 민호는 중국 문학을 열심히 연구하고, 막내 규호도 제 개성을 마음껏 발휘하며 군복무를 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부처님 씨앗이 있다고 여기는 스승은 아이에겐 어른 못지않은 부처님 결이 있을 뿐 아니라, 말갛기까지 하여 세속에 찌든 어버이보다 훨씬 부처님답다고 말씀했다. 아이는 이미 부처님, 오는 세상을 아우를 부처님이기에 아이 일을 놓고 아이와 어버이 뜻이 다를 때면 스승은 어김없이 아이 손을 들어줬다. 아이, 여성, 노동자, 농부, 어부 마음을 그 사람들보다 더 잘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씀이다.

법정 스님 스승인 효봉 스님은 1949년 “높은 것은 높은 대로 두고 낮은 것은 낮은 대로 두며, 긴 것은 긴 대로 짧은 것은 짧은 대로 두어야 참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씀했다. 1958년 통도사 내원암 낙성식에서는 “사람들은 저마다 제 법당을 지어 걸림 없이 수용하고 있는데, 오늘 수옥 비구니가 법당을 신축했다. 그러면 이 법당은 주인이 있는 법당인가, 주인이 없는 법당인가. 만일 주인이 없는 법당이라면 이 집은 이제부터 썩는 길로 들어갈 것이고, 주인이 있는 법당이라면 날마다 새롭게 빛을 낼 것이다. 그러면 이 법당 주인은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여기서 ‘이 법당’을 ‘이 사회’로 바꿔도 뜻이 바뀌지 않는다. 이 사회는 주인 바로 이 시대를 함께 빚어가는 우리다.

슬기로움, 순수한 집중서 나와

“슬기로움은 우연히 얻어지는 게 아니야. 순수한 집중으로 제 안에 지닌 빛이 발하는 거지. 네가 있으므로 해서 네 이웃이 환해지고 맑아지며 향기로워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네 하루하루가 너를 이룬다. 그리고 멀지 않아 한 가정을, 지붕 아래 온도를 이루고, 그 온도는 이웃으로 번져 한 사회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네가 있음은 절대이다. 없어도 그만이 아니란 말이다.” 스승이 1971년에 10대에게 남긴 말씀을 간추렸다.

“네가 있음이 절대”라던 스승은 “행여 깨달음을 얻으려고 수행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깨달음은, 굳이 말을 하자면 보름달처럼 드러나고 꽃향기처럼 풍겨오는 것”이라고 하면서 “수행을 하는 까닭은 (갖춰진) 깨달음을 드러내려는 데 있다”라고도 말씀했다. 수행이란 이미 내 안에 있는 맑음을 드러내어 이웃을 나와 다름없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일컫는다는 말씀이다.

젊은 사회로 바꾸는 새 단초 기대

핀란드 총리 산나 마린은 1985년 11월 수도 헬싱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보육원에서 보낸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와 결혼했으나 이혼한 뒤 동성 결혼을 한다. 그 바람에 엄마가 둘인 가정에서 자란 산나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15살 때부터 빵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식구들 가운데 처음으로 대학교에 들어갔으나 돈벌이를 하며 다녀야 했다. 남편과 사이에 딸을 둔 워킹맘이기도 한 산나 마린이 서른네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총리에 오른 비결이 어디에 있을까.

“청소년에게 반드시 지역사회 청소년 동아리에 들어 정책을 다루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란 말을 청소년기본법 8조에 담을 만큼, 핀란드는 16살이면 선거권을 주며 18살이면 피선거권도 준다. 이처럼 핀란드 청소년은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니만큼 나이는 어려도 경력이 풍부한 정치인이 수두룩하다.

국회의원 피선거권은 25살, 대통령 피선거권은 40살이 되어야 가질 수 있는 우리나라는 정당원 자격도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이”로 꼽는다. 그러나 영국 보수당은 당원이 되는데 나이 제한이 없고, 노동당도 15살부터 들어갈 수 있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14살부터, 프랑스 사회당도 15살부터다. 아이에게도 차별 없이 보장해야 한다며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짚은 것이 ‘결사할 자유’와 ‘참정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정당 가입 나이 제한을 없애고 정당 자율로 운영하도록 한다”라고 내놓았다. 우리 젊은이들이 날마다 새로운 빛을 내어 주인 노릇 제대로 하려면 핀란드 젊은이들처럼 머뭇거림 없이 정치에 뛰어들어 스스로 벼릴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청소년이 정당원이 될 때 비로소 당내 경선을 하는 대통령 후보들이 청소년을 아우를 정책을 내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투표권을 받은 18살 유권자가 53만 남짓하다니 적지 않은 젊은이가 제 뜻을 밝힐 수 있다. 투표는 내 뜻을 드러내 개체에서 전체로 나가는 큰 힘 가운데 하나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내놓은 뜻과 몸짓이 모여 이 사회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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