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마음이 법

임제가 대중에게 말했다.

“여러분, 참되고 바른 견해를 갖추고, 천하를 마음대로 다니며 도깨비처럼 사람을 어지럽히는 일에 현혹당하지 말아야 한다. 일 없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다. 조작된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다만 평상의 마음 그대로이면 된다. 그대들이 밖으로 나가 바른길이 아닌 엉뚱한 옆길로 들어가면 벌써 틀려먹은 것이다. 부처를 찾으려고 하지만 부처는 이름뿐이다. 그대들이 밖에서 부처를 찾겠다며 찾고 있는, 그가 누구인지 아는가? 삼세와 시방의 부처님과 조사들이 세상에 나온 것은 불법을 구하기 위해서다. 지금 선을 참구(參究)하는 여러분들도 단지 법을 구하기 위해서다. 법을 얻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요, 얻지 못하면 예전처럼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의 다섯 곳을 윤회할 뿐이다.

법이란 무엇인가? 법이란 바로 마음의 법이다. 마음의 법은 형상이 없으면서도 시방을 관통하고, 눈앞에 버젓이 작용하고 있다. 사람들이 이것을 믿지 못하고 문득 이름과 글귀를 분별하면서 문자 가운데서 찾으려 하고 불법을 헤아리고 있으니 하늘과 땅만큼 어긋나버린다.”

불교의 범어 어원은 붇다 다르마(Buddha Darma)이다. 정확하게 번역하면 불법이라고 해야 맞다. 붇다는 ‘불(佛)’이고 다르마는 ‘법(法)’이다. 법(法)이 교(敎)로 바뀌어져 불교라 하게 되었다. 법을 알아야 부처가 된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법을 구하는 것이 수행이다.

어느 날 임제가 대중에게 법문을 하면서 부처를 구한답시고 사방으로 돌아다니지 말고 자기 마음 안에서 법을 구하라는 일침을 가한다. 법이란 바로 마음이니 마음을 어디 가서 찾느냐는 말이다. 온 시방을 관통하면서 눈앞에 버젓이 작용하고 있는 이 마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공부가 되는 것이지 남을 찾아가 이런 말 저런 말을 듣고 거기에 현혹되지 말라고 하였다.

‘마음이 법’이라는 것은 일찍이 마명(馬鳴ㆍAsvaghosa)이 〈대승기신론〉에서도 선언해 놓은 말이다. 마음이 법이고 부처인데 마음 밖에 부처가 있고 법이 있는 양 객관을 의식하는 분별심을 일으키면 엉뚱한 길로 가고 만다는 것이다. 바다나 호수의 물이 본래는 파도가 일어나지 않는 고요한 수면 그대로 있는 것인데 바람에 의해 파도가 일어나듯이 분별이란 본래의 마음에는 없었다, 선(禪)의 목적인 견성(見性)이란 번뇌가 일어나기 이전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승찬대사 〈신심명〉 첫 구절에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오직 간택(揀擇)을 꺼릴 뿐이다.(至道無難 唯嫌揀擇)”고 하였다. 간택이 곧 분별심이다.

이 대목의 또 하나 중요한 말은 ‘일 없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참으로 묘한 말이다. 일이 없다는 것은 조작하는 마음이 없는 순수한 본래 마음, 번뇌에 의해 욕심이 생기거나, 근심이 생기거나, 의심이 생기지 않는 평상심을 두고 한 말이다. 헐떡거리는 마음 곧 치구심이 가라앉으면 일 없는 사람이 된다. 영가의 〈증도가(證道歌)〉에도 ‘절학무위한도인(絶學無爲閑道人)은 부제망산불구진(不除妄想不求眞)’이라는 말이 나온다. “배움을 멈추고 할 일이 없는 한가로운 도인은 망상을 제거할 것도 없고 참된 것을 구할 것도 없다.”고 했다. 논리적으로 말한다면 완성된 경지에 이르면 더 할 일이 없는 것이다. 할 일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완성된 경지가 아니다. 그러나 완성된 경지가 무엇을 시작해서 끝을 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본래 아무것도 하지 않던 무위(無爲)의 상태로 돌아간 복귀(復歸)의 자리다. 불교의 수행이란 진심(眞心)에 복귀하는 일이다.

달마의 사행론(四行論)에서 말하는 무소구행(無所求行)이 ‘일 없는 것’이다.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르러야 생멸심(生滅心)이 없어지는 것이다. 임제도 이 무소구행을 강조했다. 도를 닦는다 하고 닦는 사람은 온갖 번뇌만 다투어 일어날 뿐이라 했다. 잠속에서 꿈을 꾸는 사람은 잠에서 깨어나야 할 일이 있지만 이미 깨어난 사람에게는 잠 깰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공부가 성취된 분상에서는 일이 없지만 수행 도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열심히 정진할 일이 남아 있는 것이다. 선의 세계를 달리 표현해 보자면 일 있는 데서 출발하여 일 없는 데로 가는 것이고 말 있는 데서 출발하여 말 없는 데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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